: 광교커피마을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변화
아파트 단지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광교커피마을이라는 이름의 작은 골목길이 펼쳐진다. 수원 광교신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이곳은 인근 도시에 사는 젊은 청춘들, 직장인들, 그리고 주변 아파트 단지의 학부모와 주부들이 주말과 저녁시간을 즐기러 모여드는 공간이다. 그날따라 무심히 지나치던 골목 끝에 ‘달빛이 머무는 곳’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띄었다.
카페 입구에는 손글씨로 써 붙인 안내문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이곳의 음악과 그림은 창작자의 소중한 작품입니다. 존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순간, 마음 한켠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나는 45세의 워킹맘, 광교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 회사 일과 가사, 두 아이의 학교 준비까지 하루를 바쁘게 보내며 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나만의 세상을 꿈꾸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창작은 잊혀진 먼지 쌓인 공책 속 한 페이지처럼 사라졌다. 숫자와 마감, 일정에 쫓기며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날, 커피 향이 감도는 카페 문을 열자 은은한 피아노 선율과 벽에 걸린 동네 작가의 그림엽서들이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카페 내부는 나무로 된 책장과 작은 화분, 은은한 전등 불빛 아래 놓인 테이블과 빈티지 찻잔들로 채워져 있었다. 주인은 다정히 다가와 말했다.
“이 음악은 광교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한 곡이에요. 그림도 우리 마을 작가님 작품이고요.”
평범한 카페 한켠에 숨은 창작의 세계. 그림 옆에는 작가의 이름과 손글씨 인사말이 적혀 있었다.
“이 그림은 저의 작은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담아 감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엽서를 손에 들었다. 거칠지만 정겨운 붓자국, 사람의 온기가 스며든 듯한 글귀. 순간, 마음 깊은 곳이 따스하게 물들었다. 그동안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일상의 작은 예술이 이제야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며칠 후 다시 찾은 카페에서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몇몇 손님이 그림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누군가는 피아노 연주를 몰래 녹음하고 있었다. 주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최근에 무단 촬영과 녹음으로 연주자가 상처를 받으셨어요. 그림도 표절 문제로 전시를 중단하려 하세요.”
돌아오는 길, 나는 광교호수공원 산책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나도 창작물을 무심히 소비하고, 그 가치를 잊은 채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저작권이라는 단어조차 멀게만 느껴졌던 내게, 작은 카페가 그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창작은 누군가의 시간과 열정, 마음의 결실이었다. 그 작은 작품들은 그들의 이야기였고, 지켜야 할 이유가 분명했다.
며칠 뒤, 나는 집에서 아이가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색연필로 대충 그려진 듯 보였지만, 그 속에는 아이의 상상력과 웃음이 담겨 있었다. 무심히 종이를 찢으려다 손끝이 멈췄다. 그 순간 카페 주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 그림은 제 딸이 병상에서 그린 거예요. 그림은 그 아이의 마음을 버티게 한 숨구멍 같은 거였어요.”
머릿속을 스치는 그 말에 가슴이 울컥했다. 나는 종이를 다시 펴고 아이의 그림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저 지저분한 낙서가 아니라, 아이의 세계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작은 실천을 결심했다. ‘이곳의 음악과 그림은 창작자의 소중한 작품입니다. 무단 촬영과 녹음을 삼가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손글씨로 정성껏 적어 카페 주인에게 건네며, 창작의 가치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은 미소를 지으며 내 글씨를 카페 벽에 걸었다.
“정말 고마워요. 이 작은 공간을 지켜주셔서요.”
이후 나는 SNS에 카페 이야기를 올리고, 광교커피마을의 다른 카페와 가게들도 ‘작은 창작을 지키자’는 캠페인에 동참했다. 직장인들과 젊은 커플들이 주말마다 카페를 찾아 그림을 감상하고 음악을 즐겼다. 아이의 학교에서도 “창작은 누군가의 꿈과 노력이 담긴 거란다. 함부로 가져가면 안 돼”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엄마, 나도 친구들 그림은 허락받고 보고 싶어.”
어느 날, 카페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피아니스트는 섬세한 손길로 피아노를 연주했고, 손님들은 스마트폰 대신 박수를 보냈다. 그림 앞에서는 작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따뜻한 장면이 연출됐다. 카페 주인은 내게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음악도, 그림도 다시 살아났어요.”
나는 깨달았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힘이 아니라, 작은 존중과 창작을 지켜내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소리 없는 영웅이었다. 내 아이도, 내 친구도, 카페의 작은 음악회도 그 영웅이었다.
카페 구석에는 내가 만든 손글씨 안내문과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남긴 메시지들이 모였다.
“창작자의 마음을 존중합니다.”
“당신의 음악과 그림 덕분에 오늘 하루가 따뜻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작은 물결이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광교커피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변화는 내 마음에도 깊이 스며들어 나를 다시 쓰고 있었다. 이 변화는 나와 내 가족, 친구들, 이웃들까지 이어지며, 창작과 존중의 작은 물결이 큰 바다를 이루어가는 여정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창작은 거대한 폭포가 아니라, 하루하루 모이는 빗방울이다. 저작권은 그 빗방울을 지켜주는 투명한 우산이다. 그리고 그 우산은 우리의 작은 행동과 존중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