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지시해야만 돌아가는 나라
“도대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됐느냐”는 말이 거리마다 울려 퍼진다. 계란 한 판 값이 금값이 되었다는 농담은, 이제 더는 농담이 아니다. 문제는 물가가 오르는 것보다, 그 상황에 정부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느냐이다. 마치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져야만 움직이는 시스템처럼 보인다면, 이미 시스템은 기능을 잃었다. 정부는 슈퍼맨이 아니다. 슈퍼맨은 어디선가 긴급한 신호가 들려와야 하늘을 날아 등장하지만, 공직사회는 평소부터 감지하고 움직이는 ‘무명의 영웅’이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직후, 국민 10명 중 6명이 “제발 물가 좀 잡아달라”고 외쳤다. 그 요구는 정책적 의제를 넘어선 절박한 생존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탄핵 정국 이후 무정부 상태가 반년 가까이 지속되는 동안, 고물가 고통은 서민층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오르는 것은 계란과 식료품 가격만이 아니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대응해야 했을 관료 조직이 침묵했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 산업부, 농식품부 등 주무 부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대통령 지시가 없으면 물가를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관료가 아니라 행정 방관자에 불과하다. 오랜 공직 생활 동안 위기 대응 경험과 예측 시스템을 축적했음에도, 탄핵과 계엄의 정국이라는 이유로 정책 준비조차 하지 않은 이들에게 세금으로 급여를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1995년 고베대지진 이후 일본은 위기대응 매뉴얼을 대폭 손질하고, 각 부처별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했다. 그 결과, 동일본 대지진 때 피해는 컸지만 초기 대응은 체계적으로 작동했다. 독일의 경우도 연방 재난관리청(Techniches Hilfswerk: THW)과 각 주 정부가 분산된 위기관리 권한을 갖고 평시부터 정밀히 대비하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선진국은 국가 수장의 등장이 아니라, 행정부처 자체가 ‘사전기동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떠한가. 부처 장관은 기자 앞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겠다”고만 반복한다. 실무진은 정책을 미루고 상황만 관망하며, 한편으로는 정권 교체 이후의 진로만 계산한다. 전문성을 담보로 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해야 할 고위 공무원들이 성과를 내세우며 정치권에 뛰어드는 순간, 국정은 ‘정치인 양성소’로 전락하게 된다.
물가문제는 단순한 수요공급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심리, 정책의 신뢰, 행정의 기동성이 맞물리는 복합적 구조다. 현재 우리 정부는 고물가, 고환율, 고유가의 3중고 속에서 2022년 수준 이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25년 6월 현재, OECD 국가 중 2위에 해당하는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서민 물가는 체감적으로 IMF 이후 가장 큰 압박이라 평가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이 왜 지시를 안 하느냐”가 아니라, “왜 미리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보다 일선에서 움직이는 정책의 실행력을 본다. 따라서 정부는 다음의 세 가지를 최우선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첫째, 고위 공무원 인사체계에 ‘위기 예측 책임 평가’를 도입하자. 위기 감지 실패나 무대응 사례는 실질적인 문책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대통령 직속 위기관리 매뉴얼보다, 각 부처 자체 대응 매뉴얼의 실행력을 의무화해야 한다. 보고로 끝나는 시스템은 실효성이 없다.
셋째, 정책 평가기준에 ‘선제적 감지와 예방’ 항목을 신설하여 보이지 않는 성과도 성과로 인정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정치는 종종 ‘보이는 것’을 원하지만, 행정은 ‘보이지 않는 것’을 책임져야 한다. 고요히 움직이는 시스템이 강한 나라다. “정책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은 단지 구호가 아니다. 예방과 대응은 특별한 능력이 아닌, 준비된 공직자의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정책은 ‘지시’가 아닌 ‘책임’으로 움직여야 한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물가, #위기관리, #이재명정부, #물가정책, #고위공무원, #김한준,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