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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성과는 죄가 아니다

: 공직사회, 조용한 헌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실패는 눈에 띄지만, 막아낸 성과는 드러나지 않는다.”
▲김한준 박사【평생교육,Life-Plan전문가】

2025년 6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이 한마디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 우리 행정 철학의 방향을 다시 묻는 선언처럼 들렸다. 눈앞에 보이는 실적에만 집중하던 공직사회가, 이제는 보이지 않는 헌신에도 빛을 비출 수 있을까. 재난이 없었던 하루, 민원이 발생하지 않았던 한 달, 갈등이 불거지지 않았던 어느 행정 결정 뒤에도 누군가의 조용한 판단과 무명의 수고가 있었다. 그러나 이 성과는 수치화되지 않고, 보상받지도 못한 채 묻혀간다.


그간 공직사회는 숫자와 표로 환산되는 단기 실적에 매달려 왔다. 정책 보고서의 분량, 언론에 노출된 횟수, SNS 호응도 같은 외형적 지표가 일 잘하는 공직자의 증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처럼, "조용히 걸어온 길에도 기적은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조직, 사소한 위기를 사전에 차단한 담당자, 갈등을 조율해 평온을 지킨 관리자. 이들은 실패가 없었던 결과를 만들었으나, 보상도 기록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조용한 성과’는 우리 공직 시스템 안에서 아직도 이름조차 갖지 못한 개념이다.


행정안전부가 2024년에 발표한 『정부 조직문화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공직자의 58.3%가 “성과를 드러내지 않으면 중요한 인물로 인식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다. 문제를 예방하는 사람보다, 일이 터졌을 때 해결하는 사람이 더 주목받는다. 예컨대 Y 공기업의 기관장 연임 사례처럼, 내부평가위원회만으로 우수 등급을 부여하고 절차를 비공개한 채 연임을 결정한 구조는, 실적의 진정성과 평가의 투명성을 의심받게 한다.


공직사회 내부에서는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일종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선제적 대응은 실패 위험이 있어 기피되고, 혁신적 시도는 오히려 리스크로 전가된다. 노한동 전 문체부 공무원이 쓴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에서 말하듯, “개인은 유능해도 조직은 무능해진다.” 이는 공무원이 탓이 아니라, 공무원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량지표 위주의 평가는 창의성과 주도성을 억누르고, 소극 행정을 만연 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제는 새로운 성과 인식 체계가 필요하다. 예방적 성과와 숨은 기여도 성과로 인정하고, 정성적 평가 항목을 포함한 다층적 인사제도가 필요하다. 공직자 개인의 자발성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능 성과기록부(Silent Performance Ledger)'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 침묵 속의 기여를 가시화해야 한다. 관리자 중심의 보상구조에서 벗어나, 실무자와 현장 공무원에게 명확한 보상과 인센티브가 제공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외부 시민 평가단과 동료 추천제를 연계한 ‘수평적 포상 시스템’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은 개인의 공을 넘어선다”라고 했다. 행정의 본질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조용한 오늘’에도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 장면처럼, “세상은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조용한 리더십이 진짜 리더십이며, 이것이야말로 공직사회가 회복해야 할 신뢰의 본질이다.

더 늦기 전에, 공직사회는 성과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한다. 숫자가 아닌 의미로, 실적이 아닌 과정으로, 리더십이 아닌 책임으로. 지금이야말로 그 침묵의 기록을 국가가 먼저 인정해야 할 때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는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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