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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위의 권력은 없다

- 군의 정치적 중립은 민주주의의 기둥

2024년 12월 3일, 한국 현대사에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될 순간이 지나갔다. 국방부 일부 부서에서 비상계엄에 준하는 위기 대응 계획을 검토한 정황이 드러났고, 이는 즉시 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로 번졌다. 당시 국방차관이었던 김선호는 이 문제를 미연에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임사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군의 존재 이유를 묻는 단 한 문장을 남겼다. "군이 군이기 위해 가장 지켜야 할 원칙은 정치적 중립이다. “


이 발언은 단순한 회한이 아니라, 헌정질서의 경계에서 되풀이된 상흔을 소환한다. 군은 국가 안보와 국민 생명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조직이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는 순간, 헌법을 수호해야 할 군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헌법 제5조 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며, 정치적 중립성을 준수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이상이 아니라 뼈아픈 역사에서 비롯된 사회적 약속이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군은 그 약속을 어기고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군세력은 “국가 재건”을 내세워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장악했다. 이 정변은 민주주의의 일시적 후퇴가 아니라, 18년간의 군사정권으로 이어졌다. 이후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계엄군 발포, 민간인의 무차별적 희생은 정치에 개입한 군이 국민을 향해 총을 들 수 있음을 보여준 비극이었다.


그 비극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았다. 2018년,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이 공개되며, 군 내부에서 여전히 위수령·계엄령 선포가 검토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문건은 탄핵 이후 정국 불안을 군사력으로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자 정치개입 위험이 구조적으로 남아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궤적은 군이 왜 정치와 철저히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중립을 잃은 군은 지휘체계에 혼란을 일으키고, 부대의 응집력과 사기를 약화시킬 뿐 아니라, 장병 개인의 신념과 임무 사이에 갈등을 유발한다. 이는 전시 작전의 효율성뿐 아니라, 평시의 군 신뢰도마저 훼손한다. 특히 정치권 분열과 이념 대립이 심화되는 오늘날, 군의 정치적 중립은 더욱 중대한 헌법적 책무다.


국방부는 단순한 지휘·관리 행정조직이 아니라, 군을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최후의 방파제다. 김선호 차관은 이임사에서 “군인의 명예는 말보다 자세에서 나온다”라고 언급했다.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장병들을 위해, 정책 결정자들은 감수성과 책임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정치적 중립은 선언이 아닌 구조의 문제다. 입법적으로는 군인의 정치 활동 금지 조항을 명확히 정비하고, 행정적으로는 권력 간 균형과 감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위기 대응 문건이나 작전 계획 수립에는 국회와 민간 통제 기제가 작동되어야 한다. 검찰과 경찰도 같은 오류를 반복해 왔다. 검찰이 정치에 가까워지면 기소권이 남용되고, 경찰은 수사의 공정성을 잃는다. 결국 제도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정치적 사건마다 선택적 대응 의혹이 반복되면서, 이미 무너진 신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제 군뿐 아니라 모든 권력기관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야 한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누구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군주에게 충성하는 군대는 폭정의 도구일 뿐이며, 국민에게 충성하는 군대만이 자유를 지킨다”라고 강조했다. 군은 권력의 수단이 아니라, 국민과 헌법을 지키는 헌법기관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오늘의 반성은 내일의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 김선호 차관의 자성은 단순한 고위 관료의 고백이 아닌, 제도 개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군은 말이 아니라 자세로 증명해야 하며, 정치적 중립은 헌법 조문에 머물지 않고 구조와 일상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길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개인메일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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