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은 작년 가을..
인연이 닿지 않은 아이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느릿하게 살았다.
자신을 묶고 있는 스트레스와 조급함, 착한 아이 증후군을 내려놓았고 슬픔, 분노, 불안, 상실감. 아픔, 그리움 등의 감정들이 올라올 때마다 묵히지 않고 표현했다.
손임은 종연의 모든 부정적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주고 힘이 되려고 애썼다.
종연은 생존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일어났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은 종연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아이들이 채워준 것이다.
자신의 아이들이 모든 순간 사랑스럽진 않았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순간에도 사랑하는 것이리라.
종연에겐 아이들이 그런 존재였다.
지금 종연은 손임과 종연의 도장이 모두 찍힌 이혼서류를 가지고 있다.
종연은 손임에게 뼈에 새겨질 만큼 큰 상처를 받고 중절 약물을 복용 후 회복할 때쯤 합의 이혼서류에 본인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손임에게 서류를 보여 주었었다.
손임은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깊이 후회하고 있었고 종연의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중에 이혼서류를 받고 황당했다.
종연도 안다.
손임과 이혼할 수 없음을..
이들에겐 행복, 기쁨, 사랑이라는 강력한 연결 고리가 있기에 종연의 상처를 ‘이혼’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분담하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다.
“나의 미래를 당신이랑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들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음소거하는 남편과 본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를 못 본 척 피하는 남편 중에 누가 더 최악일까?
고를 필요 없어. 둘 다 당신이니까.”
지금 손임은 구석으로 몰려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손임은 입이 10개여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혼이라니…
“내가 잘못했지. 정말 미안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할게. 지켜봐 줘.”
종연은 계속해서 담담히 말했다.
“합의 이혼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어.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와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야.
우린 미성년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절차도 복잡하고 파생되는 상처들이 어마어마해..”
손임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아.. 상처가 많고 절차도 복잡한데 이혼을 왜 해. 애들도 있는데..
잘 생각해 봐. 이혼이라니.. 우리가 이혼이라니.. 그건 안 돼. 난 못해.”
물론 지금 손임은 종연이 아프고 힘들 때 곁을 지키고 있고 주도적으로 가정을 돌보고 있다.
하지만 종연에겐 때 늦은 행동일 뿐이다.
유산의 상처가 없었다면 손임이 이렇게 했을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종연은 각서가 필요했다.
“알아. 우린 이혼할 수 없어.
하지만 난 자기의 다짐을 뒷받침할 증서가 있어야겠어.
저번에도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얘기했잖아.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약속을 가볍게 무시해 버렸어.
도장 찍어. 난 이 서류를 가지고 있어야겠어.”
합의된 이혼서류는 손임에게 앞으로 책임감 있는 남편이 될 것이고 숨거나 도망가지 않겠다는 각서인 것이다.
말 뿐인 손임에게 종연은 꼭 가시적인 서류를 받고 싶었고 종연은 손임의 도장을 받아낸 후 잘 보관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