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손님 백년종년
종연은 그와 자주 앉아서 꽁냥 댔던 메르디앙 아파트 벤치에 홀로 앉아 그녀 앞의 쓰레기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호한 표정을 지은 채 손에 든 꾸러미를 힘껏 쓰레기통에 던진 뒤 돌아섰다.
순간 종연의 발 밑 공간이 푹 꺼진 것처럼 휘청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고 의연하게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이후 단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았다.
“아니 헤어진 건 헤어진 거고 그 비싼 걸 왜 버려 아깝게… 그거 언니 주려고 뉴욕 티파니에서 맞춘 거라고 하지 않았어??? 나나 주지! "
종연은 가슴을 치며 내뱉는 여동생 핀잔에 나지막이 대꾸했다.
“속물!”
종연은 마치 그의 영혼이 기생하는 듯 그가 생각날 만한 모든 것을 다 내다 버렸다.
그것은 그와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장례식과 같은 의식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의 마음속에 그의 잔재가 똬리를 틀고 눌러앉을 것 같았다.
이별을 마주하고 돌아섰지만 종연의 일상은 변한 게 없다.
종연은 여전히 유치원에 가서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노래를 불러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수업을 준비한 뒤 가르친다.
망가진 연애 퍼즐은 쿵! 소리와 함께 종연 주변의 이목을 끌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종연이 고치고 맞춰야 할 그녀만의 퍼즐이다.
그녀는 변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내고 하나씩 하나씩 숨을 돌려가며 다시 자신의 삶을 복구해 가기 시작했다.
삡삡~ 삡삡~ 소용없는 알람 소리가 작은방에 속절없이 울렸다.
새벽 어스름.. 동이 터 오르고 있다.
종연은 뜬눈으로 새운 밤을 뒤로하고 간단히 얼굴을 부비적거린 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종연은 집을 나서서 집 앞에 있는 이름 모를 교회 맨 끝자리에 고개를 파묻고 앉았다.
잔잔하게 울리는 찬송가…
종연은 무슨 기도를 할까..
뻥 뚫린 마음은 당최 채워지지 않고 음식은 목구멍에서 거부하는 바람에 위장도 비어 있고 혁명적으로 몰아치는 두서없는 생각은 잠도 거부해서 눈도 퀭한 상태이다
주님… 종연은 그저 주님만 불렀다
2달 동안 주님을 애타게 부르고 나니 종연은 깨달았다.
시간이 약이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구나.
1년 뒤..
약속 시간 20분이 지났다.
종연은 발을 까딱거리면서 핸드폰 한번, 100미터 전방, 한 번씩을 응시하며 소개팅 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종연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7번째로 눈앞에서 보낸 뒤 다짐했다.
‘다음버스 타고 집에 가자.’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가 왔다
‘도착했어요.’
그래 한번 봐주자.
종연은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소개팅 남을 보자마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개팅 남은 촘촘한 체크무늬의 회색정장을 휘날리며 살짝 광이 나는 클래식한 갈색구두를 신고 성큼성큼 종연에게 걸어왔다
연보라 넥타이에 캐주얼한 서류가방이 뒤늦게 눈에 띄었다.
“많이 늦었죠?”
종연은 그의 뒤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노란색 후광 때문에 기다리며 속 시끄러웠던 마음이 대번에 조용해졌다.
딱 종연의 이상형이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종연은 서른 살이 넘어서도 이성을 만나서 첫눈에 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손임 입니다.”
종연과 손임은 나이가 같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기 때문에 종연은 손임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손임은 멀끔한 외모만큼 매너가 좋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뚜렷한 건실한 남성이었다.
손임 또한 종연의 검소함과 몸에 밴 배려를 지켜보며 결혼 결심을 굳혀 나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양가에선 적지 않은 나이에 만났으니 지체하지 않고 결혼하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