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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준 Sep 22. 2022

영웅의 도상, 그리고 우리들

<글레디에이터> -리들리 스콧

 <글레디에이터>는 ‘로마의 장군 막시무스가 황제 코모두스에 의해 아내와 딸을 잃고 파멸하지만, 검투시합을 통해 자신의 복수를 완성하고 로마 시민에게 권력을 돌려주는’서사시다. 글레디에이터는 영웅 서사시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남은 영화다. 영화가 어떻게 주인공을 영웅으로 만들고,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지는지 생각해보았다.


 여타 영화들도 오프닝 시퀀스가 있지만, 이 영화만큼 중요한 기능을 하는 영화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글레디에이터>의 오프닝 시퀀스는 주인공을 관객에게 영웅으로 인지시키는 역할을 해낸다. 영화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보이는 장면은 ‘평화로운 밀밭에서 밀을 쓰는 ’손’ 클로즈업이다. 이 클로즈업은 영화 중간 중간 몇 번 반복되고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복선으로서의 역할을 해내지만,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 클로즈업은 ‘평화로움’을 보여준다. 그 다음 나오는 장면은 주인공의 얼굴이다. 전쟁터에 홀로 서있는 주인공의 근엄한 표정과 모습은 그 전 장면과 결부되어서 암시적으로 관객에게 주인공을 평화를 지키는 수호자로 인식하게 한다. 그다음 이어지는 장면은 몹샷이다. 영화 내내 일 대 다수의 대비는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때마다 주인공은 1이며 다수와 대비되어 다수보다 더한 존재감을 가진다. 줄지어 있는 많은 병사들 가운데로 지나가는 주인공은 바로 이런 효과를 가져와 그의 위엄을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주인공은 전투를 준비하러 병사들 사이로 움직이고 카메라는 주인공을 팔로잉한다. 멈춰있는 병사들 사이로 움직이는 주인공은 움직임으로써 극적 대비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움직임의 본질적인 의미인 능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곧 주인공(막시무스)가 능력있는 사령관임을 나타낸다. 오프닝 시퀀스에는 뜬금없이 강아지가 등장한다. 이 강아지는 주인공을 따르고 전투상황에서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한다. 시나리오 작법서 <Save the cat!>을 보면 주인공을 관객에게 이입시키려면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즉, 주인공에게 정을 주게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강아지가 그 역할이다. 이 귀여운 강아지가 막시무스를 따르는 것은 관객이 막시무스에게 어쩔 수 없이 정을 주게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쳐들어오는 야만인들, 이 야만인들은 정리되지 않고 난잡한 반면 막시무스의 군대는 정렬되어있다. 이 정렬된 막시무스의 군대가 야만인들을 무찌르는 장면은 관객에게 막시무스는 영웅이라고 단정짓게 만들고 주인공의 서사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만든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에는 전쟁터로 황제를 모시러 오는 코모두스와 그 누나를 보여준다. 코모두스는 주인공의 명확한 적대자다. 영화 전반에 걸쳐서 코모두스와 막시무스는 대비되는 장면이 많은데, 이 코모두스의 첫 등장부터 그렇다. 코모두스와 누나는 마차에 타서 누워서 가고 있는데, 전쟁터에서 뛰어다니며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막시무스와 대비되어 코모두스가 능력이 없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쟁이 끝나고 축하파티장에서 막시무스는 로마를 공화제로 만들라는 중대한 임무를 받는다. 이때 막시무스는 집에 돌아가고 싶은 개인적 욕구와 사회적 욕구가 갈등하는 딜레마 상황에 빠지는데, 이 때 막시무스는 전경의 장애물들에 의해 갇힌 듯해 보인다. 관객은 막시무스에게 찾아오는 시련들에 답답함을 느끼며 앞으로 나타날 카타르시스를 느낄 준비를 해나간다.

코모두스와 황제의 대화 장면에서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황제는 왕위를 코모두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단언하고 코모두스는 그런 황제에게 그 동안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대화 장면에서 코모두스의 뒤에는 황제(아우렐리우스)의 젊을적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은 계속해서 코모두스와 황제의 대화 속에 껴있다. 이 근엄한 표정의 조각상은 현재의 노쇠한 황제와 달리 정복전쟁을 한창 하던 시기의 젊은 황제다. 코모두스 뒤에 살짝 포커스 아웃되어 잡히는 이 조각상은 코모두스가 황제의 젊은 시절처럼 야망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그의 대사에 힘을 불어넣는다. 결국 대화속에서 황제가 무릎을 꿇고 자연스럽게 로우앵글로 코모두스가 잡히게 되었을 때, 황제는 코모두스에 의해 사살된다.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는 그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적을 격파하는 모습을 통해 내용상으로 나타내기도 하지만 화면 속 다른 요소들도 그를 영웅으로 만든다. 먼저 막시무스는 절대 하이앵글로 잡히지 않는다. 검투장 아래에 있지만 그는 항상 로우앵글로 잡히고 이런 구도는 그가 절대 약하지 않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성공적으로 적을 무찌르고 검투사들에게 추앙받을 때 막시무스는 앞 오프닝 시퀀스 때처럼 일 대 다수로서 존재한다. 막시무스의 존재감은 장군 시절 막시무스로 돌아온다. 검투장에서 전투를 할 때 막시무스가 상대의 말을 뺏어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막시무스가 타는 말은 백마로, 말그대로 백마탄 영웅이 되어 검투장을 휩쓴다. 관객은 그에게 완전히 빠진다. 그리고 그가 헬멧을 벗고 황제를 마주할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앞서 말했듯 막시무스와 그의 적대자 코모두스는 계속해서 대비되는 장면이 많다. 먼저 그 장면의 톤이 다르다. 막시무스는 좀 더 낮은 색온도로 따뜻하고 생기있는 빛깔의 장면 속에 존재하는 반면에, 코모두스는 높은 색온도에 삭막한 장면 속에 존재한다. 이 대비를 통해 관객은 코모두스가 가진 권력의 허망함과 막시무스의 생동감을 느낀다. 또한 흑과 백의 대비를 통해 나타내기도 하는데, 영화 중반부 막시무스를 마주할 때 코모두스의 갑옷은 점점 검은색으로 변화한다. 갑옷이 어두워지면 어두워질수록 코모두스는 더 잔인하게 변화하는데, 이것이 뒤집어지는 장면이 마지막 결투장면이다. 이때 코모두스는 백색의 갑옷을 입고 있고, 막시무스는 흑색의 갑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막시무스가 시련을 극복하고 코모두스를 처치했을 때, 관중은 환호성을 멈춘다. 그렇다. 관중들은 막시무스에게 로마의 영웅이라 칭호를 주고 열광했지만 결국은 그들이 응원하던 것은 황제였다. 관중들은 코모두스가 쓰러졌을 때, 무엇보다 자신의 생계를 걱정했을 것이다. 막시무스는 관중들-로마의 시민들에게 권력을 돌려주려고 그 투혼을 해냈지만 시민들은 그런 막시무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그를 환호하지 않는다. 결국은 막시무스는 그들에게 한낱 광대에 불과했고 권력은 곧 선으로 존재했던 것이다. 우리의 현실세계는 어떠한가. 우리도 영웅들을 이 로마의 시민들처럼 바라보고 있지 않나?      


 영화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생각이 든 인물은 이국종 교수였다.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한 환경을 고치고 국민들이 최선의 의료환경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국종 교수가 처음 미디어에 노출되었을 때 권력에 맞서 외상센터 예산을 올리고 인식을 개선하려는 그를 우리들은 처음엔 격렬히 응원했다. 그리고 실제로 어느정도 개선되기도 하였지만, 이 때 이국종 교수가 한 말이 있다. ‘몇 년 지나면 식을 관심 아닌가요?’ 그렇다. 결국 이교수의 말대로 되었다. 현 시점 그 관심은 식어버렸고 늘어난 예산은 병원이 챙겨가고 외상센터는 적자라며 예산을 더 받아내려고 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국종 교수를 응원하며 자신이 도덕적인 인물이라는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영웅을 어떻게 보고있나. 로마시민들처럼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광대로 취급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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