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에 따르면 모세는 기원전 1391년부터 1271년까지 살았단다. 그런데 트로이 전쟁이 기원전 13세기에 일어났다고 하니, 이게 뭐냐면... 아킬레우스랑 모세가 거의 친구 먹을 수 있었단 얘기. 둘 다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이라 만나지는 않았겠지만, 상상해 보면 참 웃긴다. 모세가 손에 든 건 지팡이, 아킬레우스는 창과 방패를 들고 서로 만나, "야, 너도 신이랑 친하냐?" 이런 식으로 말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겠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수백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야 했다. 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세상 어느 왕이 자국의 수백만 명, 그것도 노동력 넘치는 백성을 기꺼이 풀어주겠는가? 파라오가 모세에게 "그래, 데려가! 행복하게 살아!" 할 리가 없다.
하지만 모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야훼가 백업을 해주었다. 그래서 재앙을 한 번씩 꺼내 들기 시작한다. 처음엔 간단하게, 물을 피로 변하게 만드는 거였다. 파라오가 "에이, 그거쯤이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굴자, 개구리 군단이 등장하고, 그것에도 콧방귀를 뀌자 재앙이 점점 더 세진다. 파리, 이, 메뚜기... 온갖 곤충들이 몰려온다. 그다음엔 흑암이 온 세상을 덮고, 파라오는 여전히 "안 돼, 마음대로 해 봐!"라고 외친다.
마침내 열 번째 재앙! 이집트의 모든 장자들, 심지어 짐승의 장자들까지도 모두 사망하게 된다. 이쯤 되자 파라오도 "아, 내가 졌어! 이제 그만 나가!" 하고 항복했다는 이야기.
근데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꼭 이렇게까지 사람을 죽여야 했을까? 파라오가 "나 야훼님 몰라!"라고 했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말로 설득하거나, 다른 재앙으로 끝낼 순 없었을까? 하지만 이것은 야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파라오가 유일신을 무시했으니, 벌을 받아야 했던 거다. 결론적으로, 파라오의 고집과 야훼의 자존심이 만나 벌어진 대결, 사람을 죽이지 않는 더 나은 방법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우리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겠다.
한 가지 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여, 장자를 멸하는 자가 그 피를 보고 그 문을 넘어가, 이스라엘 백성은 장자의 죽음을 면한다. 여기에서 유월절이란 절기가 생겨났다. 유월절이란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집을 건너뛰었다는 말.
트로이 전쟁은 엉뚱한 이유로 시작됐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에리스는 "그래? 날 무시해?" 하며, 황금사과 하나를 던지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사과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고. 자, 여기서부터 난리가 난다! 결혼식에 온 세 여신이 이 사과를 차지하려고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 아니, 사과 하나에 여신들이 싸우다니, 이건 뭐… 쇼핑몰 세일날의 난리도 아니다!
어쨌든 이 세 여신은 누가 제일 예쁜지 판결을 내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 중 가장 잘생긴 남자,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선택된다. 파리스가 우물쭈물하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각각 "날 선택해 주면 좋은 거 줄게!"라며 뇌물을 제안한다.
헤라: "나를 고르면 최고의 부와 권력을 줄게!" 아테나: "지혜와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지!" 아프로디테: "나를 선택하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거야."
이 상황에서 나 같으면 주저 없이 헤라를 선택했을 거다. 부와 권력이면 다 된 거 아닌가? 하지만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을 덥석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니, 솔직히 고민될 법도 했겠다. 아프로디테는 파리스에게 헬레네를 주겠다고 호언장담. 그런데 이게 웬걸? 그 아름다운 여인이 하필이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 파리스가 "이건 내 아내야!"라고 데려가 버리자, 메넬라오스는 당연히 "내 아내 돌려줘!"라며 분노 폭발.
아내를 뺏기고 가만히 있을 왕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메넬라오스의 형이 바로 그리스의 아가멤논 왕이었다. 아가멤논은 동생이 "형, 나 지금 큰일 났어!"라고 하자, 바로 "좋아, 왕들 다 불러! 전쟁이다!" 외쳤다. 그래서 그리스의 왕들이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트로이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과 하나 잘못 던져서 시작된 전쟁이다. 불화의 여신이 열받아서 던진 사과가 결국 트로이와 그리스를 전쟁으로 몰아넣었으니, 어쩌면 역사상 가장 비싼 사과가 아니었을까?
아킬레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로서 전장을 휘젓고 다녔다. 하지만 성격은 다소 까칠했나 보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한바탕 다툰 후 "나, 전쟁 안 할래!"라고 선언해 버린다. 그가 빠지자 그리스 군은 트로이의 헥토르에게 매번 깨지고, 장수들은 "제발 돌아와 줘!"라고 애원하지만, 아킬레우스는 이불을 끌어안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그의 절친이자 ‘솔메이트’ 파트로클로스가 등장한다. 파트로클로스는 "친구야, 내가 대신 출전할 테니 갑옷 좀 빌려줘!"라고 말하고, 아킬레우스는 "그래, 근데 트로이 성벽까진 절대 가지 마! 큰일 난다."라고 신신당부하며 갑옷과 무기들을 넘겨준다.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나타나자, 트로이 군은 겁에 질려 "헉, 아킬레우스가 왔어!" 하고 도망친다. 파트로클로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트로이 장수들을 무찌르며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그만 아킬레우스의 당부를 까맣게 잊고 트로이 성벽까지 쳐들어간다. 게다가 이때 아폴론 신까지 등장해 그의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들고, 결국 헥토르에게 허무하게 죽고 만다.
아킬레우스가 이 소식을 듣고 어땠을까? 당연히 화났다.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에 격분한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전장으로 돌아온다. 트로이 성문까지 돌진한 그는 "헥토르 나와!"라고 외치고, 헥토르는 겁에 질려 도망치려다 아테나 여신의 용기를 얻고 겨우 맞선다. 그러나 결국 아킬레우스의 창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성벽을 빙글빙글 돌며 분풀이를 한다. 복수의 화려한 피날레!
이때 트로이의 왕이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등장한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온 그는 울먹이며 말한다. "제발… 나도 자식 잃은 아버지요…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해 나를 동정해 주시오." 아킬레우스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갑자기 눈물이 폭발. "내 아버지도 나를 잃으면 이렇게 슬퍼하겠지…" 하며 엉엉 울고, 프리아모스도 아들 헥토르를 생각하며 통곡한다. 이 감정적인 순간에 아킬레우스는 마음을 돌려, 프리아모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그리고 12일간의 휴전 선포. 그동안 헥토르의 장례를 지내라는 것. 여기서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한 영웅은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며 심지어 사랑할 수 있는 자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에 몰래 갔다가, 그곳에서 헥토르의 여동생 폴릭세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다. "헉, 저 여자는 누군가?" 하며 완전히 넋을 놓고 청혼까지 한다. 하지만 폴릭세네는 자신의 오빠를 죽인 원수를 마주하자, 복수를 결심한다. 그녀는 아킬레우스에게 "우리 아폴론 신전에서 맹세해요!"라고 유혹하고, 아킬레우스는 이에 홀랑 넘어간다.
이 소식을 들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좋아, 기회가 왔다!"며 아폴론 신에게 복수의 기도를 올린다. 아폴론 신은 파리스에게 "그의 발뒤꿈치를 쏘라!"는 신탁을 내려준다. 그리하여, 아킬레우스는 아폴론 신전에서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허망하게 죽고 만다. 이로써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탄생. 결국, 영웅의 마지막은 발뒤꿈치 때문이라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운명이라는 건 참 기묘하고 웃긴 것 같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바로 신부인 데티스 여신과 신랑인 제우스의 손자, 인간 펠레우스였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건, 이 두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아킬레우스라는 것! 근데, 그가 결국은 그 결혼식에서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파리스한테 죽임을 당했다니, 뭐 이런 뭐 같은 경우가 있나?
아무튼 파리스가 죽자, 헬레네는 곧바로 파리스의 형제랑 결혼했단다. 이거는 거의 드라마급 반전 아닌가?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그리스가 이기고 나서 헬레네는 다시 원래 남편 메넬라오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다 결국 살해당하고, 죽어서 '복된 자들의 섬'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또 아킬레우스랑 결혼해서 자식도 낳고 잘 살았다는 것. 전쟁 중이라도 에로스는 식을 줄 모른다? 이 열정, 참 대단하다!
자, 이제 모세와 아킬레우스를 비교해 보자.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을 <모세 5경>이라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일리어드>의 주인공이니까 둘 다 서사 속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차이점이 재미있다. 모세는 말로 떠들고 모든 일은 전능한 야훼가 해 준다. 반면에 트로이 전쟁에서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신들의 도움을 받아서 직접 몸을 던져 싸운다. 모세는 '입만 살았다'는 말이 딱이다. 열 가지 재앙은 야훼가 다 했고, 모세는 그냥 파라오 왕궁을 들락날락 만 했으니까.
그러나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는 뭔가 인간미가 있다. 신들이 인간들과 뒤섞여 싸우고, 때로는 말다툼까지 하고. 이런 게 바로 서양의 두 가지 큰 사상,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차이. 헤브라이즘은 구약성경의 차가운 세계관이고, 헬레니즘은 그리스와 로마의 좀 더 인간적인 정신이다. 한쪽은 천둥번개 치듯 무시무시하고, 다른 쪽은 "그래, 싸워보자!" 하며 장난처럼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인간의 운명! 참 말도 안 되게 사납고 복잡하고, 한편으론 코믹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