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우리 언어문화 현실

한자어 사용의 급감과 신조어 사용의 급증에 관하여

by 혜윰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세상이 급변함에 따라 우리가 늘 쓰는 말도 예측할 수 없으리만큼 급속히 변하고 있다. 수 천년간 사용되어왔던 한자어와 사자성어 사용은 급감하는 대신, '깜놀', '노답' 과 같은 비속어나 신조어 사용이 우리세대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말의 지위와 위상은 나날이 추락하고 있다.

같은 젊은이인 나로서도 정말 경악을 금치 못 할 노릇이다. 매년 국립국어원에 등록되는 신조어 개수는 300개~500개에 달한다. 그러나 그 수두룩한 신조어 중 대개 1년 내에 그 신조어 사용이 시들시들해진다. 즉, 매력을 금방 잃어버린다는 특징이 있다. 신조어는 우리민족의 풍토와 전통을 해친다. 인격적, 인지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이 다양한 어휘를 학습할 시기에 신조어를 먼저 학습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문해력 문제와 직결된다. 그동안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신 덕에 문해력이 높은 민족으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났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으로 인해 추풍낙엽과 같이 우리의 문해력은 쇠퇴하고 있다. 이런 가상의 공간은 가히 폐쇄적이어서 인터넷 사용자끼리 삼삼오오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득권이 못 알아듣는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비속어와 신조어의 태동이다. 그들이 신조어를 만드는 방식은 형형색색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 중에서 모음을 떼고 만든는 형식, 긴 어휘의 경우 그 어휘의 앞, 뒷글자만 떼와서 이를 이어 붙이는 방식 등등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만들어진 비속어와 신조어를 심심치 않게 양산하다 보니 청소년의 또래 세대에서 그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게 되며, 무리에서 도태되는 이상한 일이 수십년 째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런 문화가 싫다 못해 혐오한다. (싫다고 하기에는 그냥 어린애가 어리광을 피운다는 느낌이 든다고 할까.)

그저 우리말을 파괴하고, 품격과 우리글의 위상이 낮아질까봐? 아니다. 나는 물론 그런 이유가 있겠으나, 이들이 쓰는 언어 자체의 어감을 쓰는 것이 나로써, 수준 떨어져 보이고, 문인으로써의 품격을 해치는 행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소외되면 어떠랴. 어차피 저런 천한 문화를 형성한 무리들 자체가 가치가 없다고 본다. 사면초가에 놓인 우리말과 글을 되도록이면 지키고, 문인으로서의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고자 한다. 주시경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한 나라가 잘 되고 못 되는 열쇠는 그 나라의 국어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있다" 이런 말씀이 나의 울림이 되고 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망하게 하려면, 순우리말을 멸시하고, 신조어 및 비속어를 많이 쓰느냐에 달려 있다가 된다." 문인으로써, 다독자로써, 대한의 시민으로써, 대한의 청년으로써 진심으로 우리 말과 글의 운명을 걱정하고 있다. 학교에 나와 최소한 서당개처럼 "하늘 천, 따 지"만 할 것이 아니라, 풍전등화에 놓여 있는 우리 말과 글이 현재 놓여 있는 현실을 파악하고, 그 현실을 파악하고 제대로 이해해야만 비속어와 신조어 사용이 감소하고, 순우리말과 고사성어, 한자어등 우리말이 중흥할 수 있다.

그것과는 별개로, 한자어 사용은 급감하고 있다. 최소한 20~30년전 국한혼용문체를 쓰던 시기만 하더라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한자를 배우게 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한자어 사용을 꽤 했었다. 또한 그때에는 한자를 널리 썼으니, '동음이의어'라는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한자가 공문서에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한자가 다르지만, 음이 같은 어휘를 햇갈리기 시작했다. 에컨데 '대변초등학교'의 경우 1970년대에는 '大邊國民學敎'(70년대 당시에는 초등학교가 국민학교였음) 로 쓰였기 때문에 생물의 배설물을 뜻하는 '大便'과 한자 모양이 달라 단번에 '대변리에 있는 국민학교구나'하고 단번에 이해 했다. 요즘은 무분별하게 '대변'이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한자 모양이 다른데 음이 단지 같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표현까지 쓴다. 이 사례를 접하면서 사서삼경을 통달했던 배달의 민족이 이렇게 타락했나 하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 했다. 한자어와 한자어는 겉보기에는 어려워 보여도 깊숙이 들여다 보면, 한글 만큼 그 뜻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문자 체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자를 읽을 수만 있어도 동음이의어로 인한 혼란 사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다시 한자를 부활하면 심각한 문해력 문제를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겠으나, 우리세대와 그 밑 세대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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