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by 혜윰

2003년 현충일 9시 29분 범일동 문화벙원에서 한 사내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피투성이인 갓난아기가 탯줄을 막 끊고 처음으로 엄마의 품에 안겼다. 며칠 후 그의 이름은 '동혁'으로 지어진다. 그게 나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태어났을 때 어른들이 여자아기가 왜 이렇게 예쁘냐고 칭찬을 해댔다고 하셨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닌데요? 사내아이에요!"이러면 그 어른들이 화들짝 놀라셨다고 한다.


나는 5살 이전 기억은 나지 않는다.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다. 어머니의 증언도 아닌 나의 진짜 첫 기억은 5살 때 여름 날 밀양에 있는 둘째 큰 이모댁에 놀러간 기억부터다. 그날 우리 가족은 밀양역에 도착해서 검은 모범 택시를 타고 밀양이모댁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인근 계곡에서 물놀이를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이모집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기차 타고 헤어졌다. 그 이후 또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은 밥 먹듯이 엄마손 잡고 매일 같이 이마트 간 것과,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간 일, 이사간 윗집 여자아이들의 집으로 놀러간 일, 그리고 6년동안 정든 문현동을 떠나 지금 동네로 이사온 것 까지가 나의 어린시절이다.


나는 제일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다면 바로 5~6살때이다. 이때가 가장 행복했다. 넘치는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친구 같은 나의 형과 다정했던 윗집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의 전부였던 할아버지도 내 삶의 낙이었다.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은 나의 첫번째 책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를 참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침에 눈 떠 재잘거리며 어린이집 버스를 기다니고 해가 중천일 때 친구들과 정답게 간식을 먹고 해 질 때 또다시 어린이집 버스 타고돌아와 풀장에 다이빙 하는 것이 내 삶의 낙이었다. 빈곤가정 청소년들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이사오기 전까지 호강을 누렸다. 너무 그리운 나날이다. 물론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부르주아같이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린시절이 마냥 좋았던건 아니다. 부모님은 그시절이 고통스러웠다고 하셨다. 바퀴벌레 드글대는 월셋방에서 사고만 치던 두 아들을 케어하신 두분이 나와 형 만큼 편한 날은 커녕 고생만 하셨다. 과연 나만 편하다고 해서 행복한 어린시절이라 할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의 어린시절은 어떠했는가? 가슴에 손을 얹어 보라.만약 불행했다고 여겨진다 해도 걱정 마시라. 어린 날들이 불행했다는건 그 훗날이 편하게 될 것이란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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