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라는 것

by 혜윰

무엇이든 시작 하게 된다면 반드시 끝을 보게 되거나, 끝이 나기 마련이다. 당연하지만 누구나 이 푸른 별에서 숨을 붙이며 살고 있다면 반드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끝이 나기 마련이다. 무엇이든지, 끝이 임박하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 중 대표되는 감정이 '아쉬움'이다. 누구는 아쉬워 하면 한숨을 푹 내쉬고, 누구는 아쉬워 하면 시무룩해진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한다. "끝이라는 것이 도대체 왜 있을까?" 이런 생각은 순리에 맞지 않다. 나도 한때 '끝'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기차가 마지막 종착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면 기차와 헤이지기 싫어서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리고, 자원봉사 활동이 끝나거나, 독서클럽 마지막 회기가 끝났을 때 정이 든 사람들을 이재는 못 본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 일쑤였다. 나는 바람에 떠다니는 낙엽처럼 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처음에는 여러 방면에서 끝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무수한 생각을 해봤다. 모임에 끝이 나면 뒤풀이를 해서라도 더 보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도져오면, 미래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집어들어 미래를 대비했다. 그런데 어느날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었다.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맞는 말이다. 이때까지 내가 해왔던 '발악'들은 하늘 위의 북극성을 맨 손으로 따려는 것과 같이 무모한 생각들이었다. (물론, 실제로 뒷풀이를 제안하거나 죽음을 없애는 기구를 만들어 본 적은 옆 집 개가 웃겠지만 말이다….) 교양 있는 시민으로 살려면, 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뒤로, 누군가와 헤어지거나, 어떤 일이 완전히 끝 났을 때 내 감정은 오히려 설레는 감정이 앞섰다. 지금은 끝은 언제나 날 설레게 한다. 우리가 죽지않는 이상, 소소한 끝에는 언제나 다음이 있다. 그 다음을 손꼽아 기다려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 보았더니, 시무룩해지지 않았고, 아쉽지 않았다. '끝'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이다.


지금 껏 우리는 끝을 맞이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은 끝을 맞이하는 방법 보다 끝을 내는 법이 더 중요하다. 결코 끝을 낼줄 모르는 사람은 '떠돌이 나그네'에 불과하다. 결단력 있고, 웅장하게 시작하였지만, 결국은 중단하는 일이 잦다. 나는 '중단'이라는 말이 너무 싫다. '중단'이라는 어감도 안 좋고, 실제로 어떤 일을 중단하는 사람이나 기업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는 처음 시작할 때 '책임'을 담보했으나, 끝을 맺지 못 하여 그 책임을 제 3자에게 전가하거나,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지 않다. 반면 끝이나 '종료'는 어감이 너무 아름답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마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어떤 왈츠의 끝 부분에서 모든 악기가 등장하여 팡파레를 울리고 음악이 끝이 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마치 사람들이 금의환향한 사람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기가 맡은 일을 기꺼이 끝을 낸 사람은 칭송을 받는다. 물론 실수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관계를 건강하게 끝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끝은 축복 그자체다. 삶도 비유하자면, 사고사나 병사는 삶을 '중단'한 것이지만, '자연사'는 호상이므로 축복된 '삶의 종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자의 경우 장례식장 분위기가 어둡지만, 후자는 장례식임에도 밝고 활기찬 분위기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기업, 그리고 단체들이 한번 시작한 일을 끝을 맺고, 모두에게 축복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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