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우크라이나 소녀 이야기

소녀, 히틀러에게 이름을 빼앗기다

by 올리브나무




우크라이나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핵 위협 카드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우크라이나 소녀 이야기가 떠올라 글 남겨 본다.

<소녀, 히틀러에게 이름을 빼앗기다>

제목도 독특하고, 글 구성 역시 평범하지 않다. 이야기는 주인공 소녀 나디아의 현재와 과거의 기억 사이를 오간다. 나디아의 기억은 조각조각 흩어져 하나로 꿰어지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히틀러와의 만남, 나치당원이었던 아빠, 살갑지 않았던 엄마와 같이 자란 자매. 때때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또 다른 가족.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양부모.

5년 간 난민 캠프를 전전하던 나디아는 신분을 숨긴 채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지만, 본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그런 나디아에게 나치 같이 생겼다고 놀리는 동급생의 말은 비수가 되어 나디아를 더욱 괴롭힌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울먹이는 나디아에게 양부모는 끝내 침묵한다.



히틀러와 나치의 반인류적인 범죄는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대량 학살에만 초점이 맞춰져, 그 이외의 만행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계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히틀러와 나치는 정통 아리아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게르만이 가장 우수한 민족이며, 따라서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유대인을 대량 학살하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는 동시에 아리안의 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가히 충격적인 일을 꾸민다. 이른바 '레벤스보른' 프로젝트. '생명의 샘'이라는 뜻의 이 계획은 인종 교배 실험이다. 금발, 파란눈으로 대표되는 아리안의 외모를 갖춘 폴란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납치해 나치 독일을 세뇌시켜 철저히 아리안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납치된 어린이들은 80여 가지의 검사를 통해 걸려냈는데, 검사에 통과하면 독일 가정으로 입양시키고 그렇지 못한 어린이들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아리안끼리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혈통을 지키고 부흥시키기에 너무 오래 걸렸던 것이다. 이 끔찍한 레벤스보른 프로젝트는 안타깝게도 상당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패전 후 납치된 가짜 아리안들에게 본래의 가족과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지만, 상당수는 독일을 선택했다고 한다.


히틀러에게 이름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조국, 삶의 모든 기억까지도 빼앗긴 나디아는 조각조각 떠오르는 기억과 악몽 속에서 끝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나치가 아니라는 사실에는 안도한다. 나디아의 과거를 알면서도 침묵했던 양부모의 속내를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고통스럽지만 기억의 실타래를 스스로 풀도록 기다려준 것이다.

나디아는 자신과 함께 친언니가 납치되었다는 기억을 떠올리고 오열하는데, 양부모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언니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일제의 끔찍한 살상과 만행을 겪고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는 우리에게는 더욱 공감과 울림을 주는 책이다.

대체 왜, 어떻게 그렇게까지...! 자꾸 되뇌게 된다.

To stop on thinking.

전체주의적인 사고에 세뇌되면 개인의 사유의 과정은 생략되기 때문일까. 생각을 멈추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가. 국가의 부속품이 되어 살인과 납치, 세뇌 따위의 일들을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각을 멈추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생각했다면,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했다면 차마 그럴 수는 없었을 테니까.


돌아보면 꽤 자주 하는 말이다. 생각을 멈추자고.

생각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에게 나의 뭔가를 빼앗기지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야겠다.

생각, 멈추지 말자.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소녀, 히틀러에게 이름을 빼앗기다>

어린이,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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