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담긴 병>, 최양숙 글/그림.
"왜 영어 이름이 없어요?"
신기한 듯 그들이 물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라고 영어로 말했다. 모두들 웃었다.
이십여 년 전, 남친의 대만인 친구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미국 어학연수 때 만난 친구들이라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불렀는데, 그렇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Why?"라고 물을 만큼 'English name'이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필수품은 아니잖은가.
이상하게 발음되는 내 이름이 불릴 때마다 괜히 무안했다.
얼마 후 영어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때는 진지하게 영어 이름을 고민했다.
나는 당시 대학원생이었고 큐레이터 지망생이었다. 지인이 멘토가 될 좋은 사람이라며 현직 큐레이터를 소개해주었다. 마침 프랑스에 나가 있어 메일로 인사를 나눴다. 그분은 국적도 직장도 한국이지만 이름은 영어 이름이었다.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큐레이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아주 세심하게 조언해 주었다. 그중 하나는 영어 이름을 꼭 가지라는 것이었다. 큐레이터는 외국과 교류할 일이 많기 때문에 필수적이라고.
멘토가 주는 조언이니 하나하나 새겨들었지만 영어 이름에 관한 조언만은 썩 와닿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워해서 편의상 영어 이름을 쓴다는 사람들도 보긴 했다. 그렇다고 필수적으로 꼭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즈음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다 돌아온 친구를 만났다.
"이스라엘에서 넌 이름이 뭐야?"
"뭔 소리야?"
영어 이름을 가지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더니, 친구는 다소 흥분했다.
친구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이는 히브리대학교에서 유학하면서 자기 이름 두고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나는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멘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영어 이름을 짓지 않았고,
외국인들을 만날 때에도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내 이름이 담긴 병>, 최양숙 글/그림, 마루벌.
<내 이름이 담긴 병>은 미국으로 이민 간 ‘은혜’가 이름 때문에 겪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은혜'는 한국에서는 평범한 이름이지만 미국 아이들에게는 괴상한 발음으로 들린다.
은혜는 학교 가는 첫날 스쿨버스에서 이름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고,
교실에 가서는 이름을 소개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고 만다.
“이름을 아직 못 정했어. 다음 주 월요일에 알려 줄게.”
계획에는 없었지만 '이름 없는 아이'로 자기소개를 하다니,
결과적으로는 이토록 인상적인 자기소개가 있나!
집에 돌아온 은혜는 거울 앞에서 미국식 이름으로 자기소개를 해 보지만 속상하고 슬프기만 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이름이 적힌 쪽지들이 담긴 병이 놓여있다.
데이지, 타멜라, 웬즈디, 신디, 미셸, 스텔라, 매디슨, 파크, 렉스 등등.
이름 없는 은혜를 위한 친구들의 배려였다.
“앞으로 이름을 더 넣어줄게. 제일 맘에 드는 걸로 하나 골라.”
친구들은 은혜가 약속한 월요일이 되기까지 계속해서 이름을 넣어준다.
그 사이 할머니가 보낸 편지가 도착한다.
“미국과 한국이 얼마나 틀리더라도 너는 언제나 나의 은혜이구나. 언제나 너의 할머니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 서투른 할머니의 편지.
은혜는 편지지 가득 도장을 찍으며 할머니를 그리워한다.
할머니가 헤어지는 공항에서 쥐어준, 은혜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도장이었다.
그날 밤 은혜는 거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다.
이름을 발표하기로 한 월요일, 학교에 가니 이름이 든 병이 사라지고 없다.
대체 병은 어디로 간 것일까? 과연 은혜는 어떤 이름을 골랐을까?
영어 이름을 지어보려고 고심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은혜의 마음에 공감이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알 것 같았다.
미국이 아무리 멀어도, 한국과 아무리 달라도
은혜는 언제나 할머니의 손녀 은혜라는 할머니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은혜는 미국에 있어도 은혜.
할머니의 말에 울림이 있다.
어디에 있든, 나는 나로 살아가는 것!
그나저나 이름이 담긴 병을 숨긴 범인은 누구냐고?
이야기의 백미가 거기에 담겨 있으니 직접 읽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