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k Horse Librarian, 꿈을 나르다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헤더 헨슨 글/ 데이비드 스몰 그림.

by 올리브나무

책 같은 게 무슨 선물이라고!


책을 막 쓰기 시작했을 무렵엔 저자 증정본이 나오면 주변의 어린이 혹은 부모들에게 선물을 했다. 소중한 만큼 아끼는 사람에게만 특별히 주는 것이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독서란 시간과 의지를 내야 하는 일이니 책 선물을 받았다고 꼭 보는 것을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책 선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공들여 쓴, 새끼처럼 소중한 책이 어딘가에서 찬밥 신세가 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속이 아린 일이다.


어린이가 가장 싫어하는 선물 1위는 단연 책이 아닐까. 책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말할 것도 없고, 책을 잘 읽는 아이라 해도 책은 선물이라기엔 너무 흔하고 진부하다. 도서관에 가면 공짜로 빌릴 수 있고, 선생님도 부모님도 틈만 나면 책 좀 읽으라고 아우성인데, 책 같은 게 무슨 선물이라고! 센스 없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그러나 도서관이나 서점, 심지어 학교도 없는 마을이라면 어떨까? 누군가 책을 가져다준다면 이 보다 귀한 선물이 또 있을까?



iur864j3ht3i4edu01.jpg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헤더 헨슨 글/데이비드 스몰 그림(이미지 출처:비룡소)



말을 타고 나타난 낯선 사람


칼은 깊고 깊은 산골 마을에 산다.

이웃도 없고, 학교도 없고, 칼이 만나는 사람이라곤 집 안에서 북적대는 가족이 전부다.

칼의 일과는 쟁기질을 하고 양과 소를 돌보고 울타리를 손보는 등 아빠를 도와 식구들을 건사하는 것이다.

딱히 갈 곳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그곳에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나타난다.

붉은 암말을 타고 나타난 사람은 바지 위에 긴 부츠를 신고 모자를 눌러쓴 아주머니였다.

잡동사니를 팔러 온 떠돌이 땜장이인가 했더니, 안장에 달린 가방에서 꺼내 든 건 다름 아닌 책이었다.

"산기슭을 따라 애써 짊어지고 온 것이 책이라니!"

칼은 대단히 실망한다.


y1x7y1hinhgtsyhh11.jpg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중에서 _ 칼의 누나 라크만이 책 아주머니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칼의 누나 라크는 다르다.

아빠가 보기에 라크는 세상에서 책을 가장 좋아하는 아이다.

그러니 책을 본 라크의 표정이 어땠겠는가? 황금을 본 것처럼 눈이 반짝거릴 수밖에.

"물물 교환을 하면 되겠지. 책 한 권에 열매 한 주머니."

아빠는 어떻게든 라크에게 책을 사주고 싶어 묘안을 내지만, 칼은 자기가 딴 열매를 책 따위와 바꾼다는 사실에 은근히 화가 난다.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그런데 아주머니는 공짜로 책을 두고 간다.

더 놀라운 건 2주에 한 번씩 책을 바꿔주러 온다는 것이었다.

칼은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데, 다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주머니의 말이 엄청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어느 밤이었다.

바람까지 세차게 불던 그 밤에 누군가 유리창을 두드렸다.

맙소사!

책 아주머니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나타난 아주머니는 창문 틈으로 책을 건네고 돌아선다.

하룻밤 묵어가라는 아빠의 말도 거절하고.

칼은 그 밤, 책 아주머니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말에 탄 사람도 용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대체 책이 뭐라고!

"뭐라고 쓰여 있는지 가르쳐 줘."

칼은 처음으로 아주머니가 가져온 책을 집어 들고 라크에게 말한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나무딸기파이 레시피를 적어 책 아주머니에게 건네며 말한다.

"책 읽는 아이가 한 명 더 늘었답니다."

아주머니는 칼이 책 읽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아주 귀한 선물이구나."

칼은 더 이상 책 나부랭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Pack Horse Librarian, 여성 사서들의 용기와 헌신


자동차는커녕 마차도 닿을 수 없는 첩첩산중, 그런 곳에 '말을 타고 책을 나르던 사서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더 감동이 된다.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학교나 도서관이 없는 애팔래치아 산맥 켄터키 지방에 책을 보급하는 정책을 폈다. 사람이 직접 말이나 노새를 타고 2주에 한 번씩 고산지대 곳곳을 돌며 책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들을 '말을 타고 책을 나르는 사서들(pack horse librarian)'이라고 했단다. 바로 칼과 라크에게 책을 전해주던 '책 아주머니'다.


책 말미에 덧붙인 이 실화를 읽으니 감동과 전율이 느껴졌다.

미국의 저력은 이런 곳에서 생겨난 것이었겠구나.

놀라운 것은 당시 말을 타고 나선 사서들이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이야기 속에서 칼은 아주머니가 바지를 입고 나타난 것에 반감을 가지는데, 당시 정서로는 여성이 바지를 입고 세상에 나서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경제대공황을 겪던 상황에서 여성 일자리 창출의 목적도 겸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깊은 산중에 말을 타고 들어가 책을 전하던 여성 사서들의 용기와 헌신이 존경스럽다.


이 정책은 8년이나 지속되었다.

책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서들이 전한 건 책이 아니라 꿈이었으니까.

산 너머의 세상을 책으로 만나고 꿈꾸는 이들이 있었기에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글 작가인 헤더 헨슨의 저자 소개글을 보면 고향이 미국 켄터키로 되어 있다.

혹시 칼의 모습에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건 아닌지 상상해본다.

켄터키의 수많은 칼과 라크가 이 책을 보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꿈을 나르는 누군가로


그림책 낭독회에서 <꿈을 나르는 책 아주머니>를 낭독한 후, 60대 회원분이 말씀하셨다.

"정말 감동이네요. 우리 손주들에게도 꼭 읽어주고 싶어요."

그 회원분은 낭독회에서 만난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꼭 빌려 가신다. 돌보고 있는 초등학생 손주들에게 보여주겠다면서. 그 다음 주에 낭독회에 오시자마자 말씀하셨다.

"그림책 덕분에 제가 '꿈을 나르는 할머니'가 되었어요. 우리 며느리가 이 책을 보더니 제가 딱 이 주인공이라고 하지 뭐예요. 요즘 아들, 며느리에게 그림책 낭독회 나간다고 자랑했는데, 그런 칭찬 들으니 어깨가 올라가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빗말이 아니고 딱 맞는 말이다.

좋은 그림책을 손주들에게 보여주고픈 할머니의 마음이 딱 책 아주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칼이 좋아할 그림책, 라크가 좋아할 그림책을 고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아이들이 책으로 더 큰 세상을 꿈꾸길 바라는 마음.


누군가에게 꿈을 나르는 무언가가 되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월요일부터 삽질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