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나이가 어린 독자일 뿐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 어린이책을 더 잘 쓸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니다. 내 아이에게 들려준다는 마음이 진심이면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나에게 건네는 글이라면 어떨까? 나는 그 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진짜 어린이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좋아하세요?"
처음 만난 어린이책 관계자가 던진 질문이었다. 나는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 3초 정도 뜸을 들였다. 어린이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본 적도 없거니와, 어린이책을 쓸 만한 사람인지 심사받는 기분이 들었달까.
"조카는 엄청 예뻐합니다. 떼쓰는 아이는 질색이고요."
솔직한 대답이었다. 담당자가 웃었으나, 표정을 보니 기대한 답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그럼 어른은 어떠세요?"라고 되묻고 싶었다.
나는 어린이나 어린이책에 대해서는 무지렁이였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고, 아직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가지겠다는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어린이책이 아니라 대개 어른 책을 읽었다. (집에 어린이책이 따로 없었다.) 나는 어린이가 읽는 책은 동화 정도겠거니 막연히 생각했고, 어린이책 출판사가 그렇게 많은 줄도 몰랐다. 그런 사람이 어린이책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담당자 앞에 앉았으니 어찌 보면 한심한 노릇이었다.
"선생님 글을 봤는데, 어려운 내용을 아주 쉽게 쓰는 재주가 있으시더라고요."
"제가 어려운 말은 못 알아먹어서요. 그래서 어렵게 못쓰나 봐요. 어렵게 써야 좀 더 있어 보일 텐데...."
담당자가 또 웃었다. 이것도 예상한 답은 아닌 것 같았다.
어린이책은 어려본 적 있는 어른이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다. 그래서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쩌면 어른이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유달리 어린이를 좋아하는 기질이나 취향이 있어야 더 좋다거나, 어린이에게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적어도 어려본 적이 있다면 가능하다. 조금 멀리 있는 나를 되돌아보고, 그 마음과 눈높이를 공감하고 배려하면 된다. 어린이를 아직 다 자라지 않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독자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존재임을 존중하는 마음! 그래서 나는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어린이"라는 말이 좋다. '어린이'라는 말에는 존중을 넘어서 존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책에는 배려와 공감, 친절함이 배어있다. 그런데 이것은 어린이책에서만 베풀 수 있는 미덕은 아니다. 어린이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 어디서나 어려본 적 있는 어른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다. 그런 배려와 공감, 친절을 경험한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 다시 어린이에게 그것을 돌려줄 것이다.
어린이를 독자로서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면 특별히 뭘 더하거나 빼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어린이는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듯, 그런 글을 좋아한다. 나는 어린이들에게 환대받는 좋은 글을 오래도록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