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작가가 되었냐고요?
어린이를 청중으로 하는 모임의 강연자로 나설 때가 있다. 어린이들은 내가 쓴 책 보다 내가 작가라는 것에 더 호기심을 갖는다. 책 이야기보다는 작가의 일을 더 궁금해한다. 책은 책으로서 어린이 곁에 있는데, 책을 쓴 작가를 마주하는 것이 생경한 경험이라 그렇기도 할 것이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어린이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기도 한다. 강연 때마다 자주 듣는 질문이다. 공모전 몇 수 끝에 어렵게 등단했다거나, 출판사에 100번 정도 거절당하고 첫 책을 출판했다거나, 스승의 고된 질책 속에서 습작을 거듭했다거나, 하는 아주 ‘작가스러운’ 답을 한다면 한층 폼이 날 텐데! 그럴 수 없어 맥이 빠진다.
나도 작가를 꿈꾸었다. 꿈만 꾸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꿈이 아니었기 때문에 뭘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바닷가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잠드는 게 다였다. 의사나 변호사를 꿈꾸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라도 먹겠지만, 작가는 뜬구름 같은 꿈이었다. 한편으론 그래서 좋았다. 작가를 이룰 수 있는 목표로 삼았다면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생각했을 텐데, 한 번도 그래 보지 않았다.
나는 엉뚱하게도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대학원에 가서 박물관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인류학 연구원으로 일하다 박물관 큐레이터가 되었다. 돌아보면 인류학과를 가겠다고 생각한 것도 작가를 꿈꿨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인류학이 뭔지 1도 모르면서, 인류학을 공부하면 아주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넓은 초원에서 침팬지와 교감하는 제인 구달을 떠올리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철부지였다. 다행히도 졸업하는 순간까지 아주 멋진 학문을 공부했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인류학을 아직도 다는 모르지만.
직장인이 되어서도 마음속 꿈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다. 언젠가 내 저서를 갖는 것으로 작가의 꿈을 대신하겠다고 생각했다. 큐레이터 중에는 자신이 담당하는 유물이나 연구 분야에 대한 내용을 책으로 내는 사람들이 많다. 대중적인 글이 아니고 학술서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책을 지은 저자가 되는 거니까.
서울의 한 대학박물관의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에 새로 지어졌다. 아는 사람들이 새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새 박물관이 지어지면서 박물관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유물에 중점을 두었던 박물관에서 관람객을 배려하고 다양한 기능을 겸하는 열린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박물관학을 공부하면서 귀가 닿도록 들었던 얘기가 새 박물관에서 구현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하지만 국립박물관과 큐레이터의 보수적인 성향 속에서 대체 얼마 큼의 변화가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내게 들어왔다. 전시실의 설명글과 오디오 가이드의 원고를 관람객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관람객을 배려하는 적극적인 시도였다. 그 까짓게 무슨 변화라고 할 테지만, 그건 이전의 박물관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박물관 연구원으로 일할 때 사수였던 큐레이터가 보고서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한글로 쓴 원고를 일삼아서 한문으로 일일이 변환했다. 한문으로 바꿀 수 있는 말을 죄다 바꿨다. 한글, 한문 혼용도 아니고, 한글을 그냥 한문으로 바꿨다. 한문을 모르는 사람은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는 원고를 연구보고서에 싣고, 도록에 싣고, 전시실 설명문에 실었다. 문제는 그 선배의 행동이 유별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박물관의 유물은 이름을 짓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한문을 표기해야 정확하게 유물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글을 읽고 있자면 짜증이 몰려왔다. 대체 뭘 위해서 쓰는 글일까. 독자와 관람객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본인을 지적으로 포장하는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박물관의 본질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봉사’에 있다. 박물관은 건축물과 유물과 큐레이터가 있어야 비로소 박물관이다. 이전의 우리나라 박물관은 유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박물관 건축과 큐레이터는 유물을 잘 지켜 후대에 넘겨주기 위해 존재했다. 이 중요한 책무를 위해 많은 스승님들과 선배님들이 일생을 바쳤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화마 속에서 지켜온 유물이었으니 왜 아니겠는가! 관람객이 웬 말이며, 유물을 공개하는 건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박물관만 봐도 역사와 사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가 안정되면서 관람객을 유물과 더불어 중요하게 고려하는 분위기로 변화하게 되었다. 친절하고 쉬운 원고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시대의 변화, 박물관의 변화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새 박물관의 쉬운 말 원고를 의뢰한 것은 그 일의 외주를 맡은 출판기획사였다. 어찌어찌 건너 건너 글도 좀 쓰고 유물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소개를 받고 의뢰하게 되었다고 했다. 일단 몇 꼭지의 글을 샘플로 보내달라고 했다. 우리나라 박물관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꺼이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원고를 써서 보냈다. 며칠 후, 담당자의 답변은 뜻밖이었다.
“선생님, 어린이책을 한 번 써보시지 않겠습니까?”
어린이책이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박물관이 변화하면서, 새 박물관이 지어지면서, 어찌어찌 건너 건너 원고 제안을 받게 되면서. 시대가 돕고, 나라가 돕고, 사람이 도왔다고 해야 하나? 이쯤되면 "우주가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