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가 생겼어요>
좋은 어린이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보다는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인 경우가 많다. 유행을 타지 않는 책, 싫증 나지 않고 언제든 다시 읽게 되는 책, 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울림이 있는 책이다. 그림책의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 중에는 출간된 지 몇십 년을 훌쩍 넘긴 것들이 많다. 작가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어린이와 어른에게 사랑받는 책들도 많다. 정말 멋진 일이다.
그림책의 독서 가능 연령은 0~120세.
엄마 뱃속에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그림책만큼 차별 없이 재미와 공감을 주는 게 또 있을까. 배경지식이나 특별한 안목이 없어도 다가설 수 있는 정말 멋진 장르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있기도 하고, 그림만 있는 책도 있다. 그림의 비중이 큰 책이라서 찬찬히 보고, 반복해서 읽어야 제대로 다 즐길 수 있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평생 소장해야 할 이유이다.
그림책은 내용이 유치하다거나 글이 적어서 유아들에게나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림책에 대한 오해이다. 그림책은 성인들의 심리 치료의 기제로, 학자들의 논문 주제로, 다양한 토론 주제로 활용되기도 한다. 유아에 국한된 책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림책은 무엇보다도 읽는 재미가 있고, 보는 즐거움이 크다. 그것만으로 그림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일 년에 독서를 단 한 권도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짓눌린다면 그림책을 권하고 싶다. 넷플릭스에 물린 어른들에게도 역시나. 단언컨대, 그림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될 것이다.
<줄무늬가 생겼어요>는 2006년에 한국에 출간된 후로 꾸준히 사랑받는 책이다. 청소년이나 성인들에게도 추천하는 그림책이다. 원색의 강렬한 컬러와 대담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도 단단하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울림이 있다.
카밀라는 아욱콩을 좋아했지만 절대 먹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모두 아욱콩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카밀라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언제나 신경을 썼다.
카밀라는 학교 첫날, 마흔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맘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꺅!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줄무늬가 생겼다.
카밀라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웠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보다는 아이들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에 안도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옷 걱정.
증상이 계속되었으나 학교에 간 카밀라는 끔찍했다.
친구들은 카밀라를 보고 웃고, 놀리고, 새로운 무늬로 변신해보라며 재촉하기도 한다.
카밀라는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텔레비전 채널이 바뀌 듯 몸의 무늬와 색깔이 휙휙 바뀌었다.
카밀라를 찾아온 의사의 처방은 무성의하기 짝이 없다.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 따위 하지 않고, 아님 말고, 식의 처방을 낸다. 그 후로 줄줄이 찾아오는 의사들과 과학자들, 환경 치료사의 처방이 잇따랐으나 카밀라의 증상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기만 한다.
카밀라의 부모는 난감하다. 학교에서는 카밀라의 병의 전염병이 아닐까 의심하며 등교를 막았고, 어느 누구도 카밀라의 병을 해결하지 못했다. 카밀라의 기분을 낫게 해 주고 싶은 아빠가 물었다.
"얘야, 뭐 좀 먹고 싶은 거 없니?"
"괜찮아요."
카밀라는 아욱콩 한 그릇을 먹고 싶었지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카밀라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는 사람들은 넘쳤지만, 어떤 치료법도 통하지 않았다. 카밀라의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다.
모두가 절망하던 때, 카밀라 집에 찾아온 오동통한 할머니.
"실례합니다만, 내가 도울 수 있을 거 같네요."
"이건 줄무늬 병이에요... 이 콩으로 다 잘될 거예요. 이건 그냥 보통 아욱콩이랍니다. 틀림없이 아이가 좋아할 거예요. 그렇지, 얘야?"
"웩! 누가 그런 걸 좋아해요? 전 그건 거 절대 안 먹어요!"
카밀라는 여전히 아욱콩을 좋아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다른 무엇보다 아욱콩을 먹고 싶으면서.
"오, 이런, 내가 잘못짚었나 보구나."
할머니는 발길을 돌린다.
"잠깐만요, 저는 사실... 아욱콩이 정말 좋아요."
"그럴 줄 알았단다."
카밀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하지만 카밀라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카밀라가 이상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카밀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욱콩을 먹었다!
카밀라를 괴롭혔던 '줄무늬병'은 그림책 속에서나 가능한 상상의 병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과 취향이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평가되고 결정되는 우리 시대의 고질병이 아닐까?
자기 색깔을 가지지 못하는 몰개성의 병,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는 눈치병,
유행과 주변을 탐색하는라 정작 본인에게는 관심을 두지 못한채 살아가는 탐색병,
유행에 쫓지 않으면 뒤떨어진 것 같아 못견디는 유행병...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소신이 내 삶을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안에 '카밀라'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눈치 보지 말고 아욱콩을 좋아한다고 말하라고.
(*이미지 출처 : 그림책 박물관 및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