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인 채로 살고 싶은데

<나는 곰인채로 있고 싶은데, 블레즈씨에게 무슨 일이>

by 올리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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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그림책이 있다. 하나는 곰이, 다른 하나는 남자가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하고 있다.

각각 1997년과 2020년에 한국에 소개된 그림책이다. 스위스와 프랑스, 다른 나라 작가의 시선에서 탄생한 두 권의 그림책이 만나니 뜻밖의 반전이 되어 묵직한 울림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는 꽤 오래 전에 읽었다. 차분한 톤의 그림과 담고 있는 묵직한 메시지에 그림책에 대한 이미지를 새로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림책이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라는 확신을 굳히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최근 <블레즈씨에게 일어난 일>을 보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나는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가 떠올랐다. 두 그림책을 함께 펼치니 묘한 콜라보가 되었다. 두 그림책을 번갈아 읽고 보면서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나'로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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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곰, 다른 모습.

곰이 어쩌다 인간의 작업복을 걸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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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숲에서 겨울잠을 자는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인간들이 숲에 들어와 나무를 베고, 크레인과 기계를 끌고 와서 공장을 지었다.

숲은 사라지고 화물차와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 동굴밖으로 나왔을 때,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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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도 잠이 덜 깼나?'

곰은 너무나 놀라서 멍하니 공장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곰을 발견한 공장 감독이 달려와 소리쳤다.

"이봐, 당신 여기서 무얼 하는 거야? 빨리 저리 가서 일해!"

"저 죄송합니다만, 저는 곰인데요."

"곰이라고? 웃기지 마, 이 더러운 게으름뱅이야!"

곰은 감독에게 호되게 욕을 먹은 후에도 인사과장에게, 전무에게, 부사장에게, 사장에게 불려다녔다. 그들은 곰의 말을 믿지 않았다. 면도도 하지 않는 더러운 게으름뱅이라고 소리칠 뿐이었다. 그나마 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사장이 말했다.

"자네가 정말 곰이라면 그 사실을 나한테 증명해야 하네. 왜냐하면 진짜 곰은 동물원이나 서커스단에만 있거든."

사장은 자기 말을 증명하려는 듯, 곰을 데리고 서커스단과 동물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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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곰은 우리처럼 철창 안에 살고 있는 법이지요."

"춤도 출 줄 모른다잖아. 진짜 곰이 아니라, 곰 가죽을 뒤집어 쓴 털북숭이 게으름뱅이라고."

동물원의 곰들도, 서커스단의 곰들도 곰을 곰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저는 곰입니다. 분명히 곰이라고요!"

곰은 화가 나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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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람들은 왜 내가 곰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공장으로 돌아온 곰은 감독이 주는 작업복을 순순히 받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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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를 하라고 했을 때도 시키는 대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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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다른 일꾼들과 마찬가지로 출퇴근 카드를 찍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기계 앞에 앉았다. 곰은 감독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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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가을이 되었다. 곰은 기러기 떼가 줄지어 남쪽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이봐, 또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도 떠돌이 근성을 못버렸군."

감독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곰은 단풍이 짖어질수록 더 피곤했다. 줄곧 하품이 나고, 급기야 기계 앞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

"썩 꺼져 버려! 당신은 오늘로 해고야!"

"해고라고요? 그럼, 아무 데나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곰은 얼른 짐을 챙겨 공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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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고속도로를 따라 걷다가 꽁꽁 얼어붙은 몸으로 모텔에 도착했다. 지치고 피곤했다. 곰은 카운터 직원에게 방을 하나 달라고 부탁했다.

"미안합니다만, 우리 모텔에서는 공장 일꾼들에게는 방을 내주지 않아요. 더더군다나 곰에게 방을 내주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지금 저한테 '곰'이라고 하셨나요? 그러니까 제가 곰이라고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지요?"

곰은 곧장 밖으로 나와 쏟아지는 눈발을 헤치며 숲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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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곰은 숲으로 걸어가면서도 자기가 무얼 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졸리지만 않다면 좋을 텐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생각해야 하는데….'

곰은 온몸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일 때까지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중요한 걸 깜빡한 것 같은데. 그런데 그게 뭐더라?'


곰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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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글도 없는 마지막 장면이다.

가슴이 철렁.

그림을 다시 찬찬히 살폈다.

휴우.

발자국이 있다!


이제 곰은 곰인채로 살아갈까?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최근에 보게 된 그림책, <블레즈 씨에게 일어난 일>.

이 책을 읽으니 다시 한 번 마음이 철렁.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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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게 뭐야?

잠에서 깬 블레즈 씨는 평소와 다른 자신을 발견했다.

털로 뒤덮인 발이라니!

하지만 회사에 가야 하니까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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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즈씨는 장화 속의 걱정거리를 애써 외면하며

일에 더욱 집중하려고 애를 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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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일났네!"

블레즈씨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오길 기대했지만 상태는 더 나빠졌다.

온몸이 점점 더 털로 뒤덮였다.

하지만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블레즈씨는 또 다시 서둘러 집을 나섰다.

회사에서는 털생각으로 미칠 지경이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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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블레즈씨의 온몸은 털로 뒤덮이고 말았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에는 가야 하니까… 블레즈씨는 또다시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하루 종일 더위와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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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블레즈씨는 축축한 돌바닥 마당 위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여전히 밖은 깜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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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블레즈씨는 밤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도시를 배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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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갔다.

아!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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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저기 아니?"

"글쎄… 뭔가 떠오르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떠오른 는 것 같기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회사에 가야 했으니까.

아무도 곰이란 걸 믿어주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갑자기 곰발바닥이 된다면 어떨까?

블레즈씨가 그랬던 것처럼

장화 속에 털복숭이 발을 감춘 채 늘 하던 일을 꾸역꾸역 해 나갈까.

나는 나로 살아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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