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마법이필요한 순간이있다

통쾌하고 짜릿한 상상의 힘

by 올리브나무


근래에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는 어린이를 종종 보게 된다. 간혹 성인들도 진단을 받는 경우가 있다. 추측컨대, 검사를 받는다면 나도 주의력 결핍 ADHD로 진단을 받지 않을까. 주의력 결핍 ADHD는 흥미가 있거나 재미를 느끼는 일에는 오랫동안 집중을 하지만, 재미없고 반복적이거나 힘든 공부 같은 활동은 시작이 어렵고 자꾸 딴짓을 하거나 딴소리를 하기 일쑤라고 되어있다.


나는 학창 시절에 수업에 집중해 본 적이 별로 없다. 관심이 있거나 재미있는 과목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선생님의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딴생각에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심각한 정도였던 것 같다.




나처럼 주의력 결핍인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과 글 잘 쓰는 사람을 잘 가려낸다. 나 같은 사람도 집중시킬 수 있는 강연이나 글이라면 진심으로 훌륭하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그나마 집중했던 수업을 돌이켜보면 선생님들이 수업에 진심이었다. 매해 같은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가르치는 일에 열심인 선생님은 나의 주의를 끌었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성향이지만 과학이나 수학 수업을 좋아했다. 열정적인 선생님들 덕분이었다. 성의 없이 교과서를 읽어 내려가거나, 몇십 년을 우려먹었는지 알 수 없는 낡은 교안을 칠판에 붙인 채로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그마저도 귀찮아서 학생을 시켜서 판서하게 하는 수업 등등. (요즘에는 그런 교사가 없으리라 믿고 싶다.) 그런 수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오토매틱으로 의식의 광탈이 일어났다.


대학에 가면 주의력 결핍인 나를 딴생각 못하도록 붙잡아주는 수업이 많을 거라고 기대했다. 안타깝게도 훨씬 더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수업들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배움의 몫을 떠넘기는 것으로 부족한 강의를 메꾸려는 얄팍한 선생들의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몇몇 인상적인 강의가 있어 다행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교수님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실망만을 안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학교를 마치고 인류학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첫 직장 생활은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료 조사, 독서, 강의, 세미나와 회의, 보고서, 프레젠테이션, 평가의 무한 반복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았지만 따박따박 월급 받으면서 맘껏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연구 성과를 내고 보고서를 써야 부담은 월급 받는 대가로 감수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못 견디게 싫은 것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 회의였다. 회의를 가장한 상사의 '훈화 말씀'. 출근 직후 '차 한잔 합시다'로 시작된 회의가 점심시간까지 이어질 때도 많았다. 아무 소득도 없이 진을 뺐다. 또다시 나를 주의력 결핍 상태로 내 몰았다. 그런데 학업을 방해하고 수업의 질을 떨어뜨리던 치명적인 핸디캡이 숨 막히는 회의실에서 나를 구했다. 미운 상사를 '멕이는' 통쾌하고 짜릿한 상상으로 질식할 것 같은 회의에서 살아남았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jpg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독일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하고 오랫동안 널리 읽힌 작품이다.

주인공 렝켄은 엄마, 아빠가 자기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는 것이 불만이다. 그래서 요정을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착한 요정이든, 나쁜 요정이든 마법을 쓸 줄 아는 요정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렝켄은 가까스로 요정을 찾아내고,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받는다.

"네 엄마, 아빠가 눈치채지 못하게 몰래 커피나 차 속에 넣으렴. 아무 고통도 없단다. 그 설탕을 먹은 다음부터는 부모님이 네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원래의 키에서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 거야. 매번 절반으로 줄어들게 되는 거지."

렝켄은 엄마, 아빠의 찻잔 속에 마법의 설탕을 넣는다. 렝켄의 말을 잘 들어주기만 한다면 아무 일이 없을 테고,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엄마, 아빠 탓이라며 양심의 가책을 털어내면서. 엄마, 아빠는 렝켄과의 사소한 의견차로 키가 반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결국 벌레만큼 작아지고 만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이 특별한 것은 어린이 렝켄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이다. 의견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 부모와의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아이의 불안정한 심리, 돌파구를 찾고자 요정을 찾아가는 여정, 마법의 설탕을 넣기까지의 갈등, 자기 행동에 대한 정당화, 그리고 작아져버린 엄마, 아빠를 보고 느끼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엄마, 아빠의 찻잔에 마법의 설탕을 넣겠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까? 대부분의 어린이는 마법의 설탕을 엄마, 아빠에게 먹이겠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은 어느새 렝켄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마법의 설탕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부모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렝켄을 통해 통쾌한 기분을 맛보는 것이다. 그것은 심성이 악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음을 치유하는 상상의 힘이다.


누구에게나 마법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누군가의 찻잔에 슬쩍 넣고 싶을 때가 있다. 마법의 설탕을 나누어 줄 요정을 찾지 못한다 해도 실망할 필요 없다. 상상이야말로 그 무엇도 가능하게 하는 마법이니까.


그나저나 렝켄은 어떻게 되었냐고?

렝켄은 엄마, 아빠를 되돌리기 위해 요정을 다시 찾는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공짜였지만,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했다. 엄마, 아빠가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먹기 전으로 돌아가서 렝켄이 마법의 설탕을 대신 먹어야 했으니까.


렝켄은 설탕 마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나머지 이야기는 직접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난 나인 채로 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