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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뱅이(@)가 영어로 뭐예요?

by 홍머루

유학원의 전화를 받고 난 후 나의 부모님은 그 즉시 비상사태였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내가 교환학생 시험을 덜컥 통과해 버렸고 나의 유학 가능성이 생겼으니, 적지 않은 유학비용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했을 것이다. 또한, 외동아들과 이역만리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또한 스멀스멀 올라왔는지, 부모님의 머릿속엔 많은 생각과 걱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한 부모님을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그때까진 무덤덤했는데, 최종적으로 교환학생에 선발되려면 시험 말고도 영어 말하기 능력을 평가하는 짧은 인터뷰까지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다음 날 오후에 전화로 하는 것으로 결정됐고, 나는 그 즉시 나의 발음이 조금이나마 더 유창하게 들리길 희망하며 영어 교과서에 나온 지문들을 소리 내어 읽고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후,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고 안방에 있는 전화기에 앉아서 유학원의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정확히 약속된 시간에 유학원의 직원분이 전화를 주셨다. 간단하게 절차에 관한 설명을 듣고, 첫 질문 “Can you introduce yourself? (자기소개 해줄래?)”을 시작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의 질문들은 대체로 예상했던 질문들이었고, 최대한 혀를 굴려 가며 유창한 척 답변하려 노력했다.


대략 30분 정도가 지나고 인터뷰가 마무리될 때쯤, 직원분이 “What is your e-mail address? (너의 이메일 주소가 뭐야?)”라며 묻는다. ‘어렵지 않은 질문이네!’라고 생각하며 자신 있게 답변하려던 찰나 이메일에 있는 “@”가 영어로 뭔지 모르겠어서 우물쭈물하다가 “XXXXXX 골뱅이 hanmail.net”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인터뷰하던 직원분이 크게 웃으셨다. 비아냥이 아닌 순수한 답변에 웃음이 터지신 게 전화로도 느껴졌다. 그리고는 “골뱅이는 영어로 ‘엣’이라고 읽어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실수해서 당황한 나는 끌탕했지만, 이윽고 직원분이 인터뷰 결과를 알려주셨다.


“학생, 인터뷰 잘했고,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최종 합격했어요. 부모님과 의논 후 결정한 뒤 저희에게 알려주세요.”


전화를 끊고, 거실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다. 부모님은 “축하한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축하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부모님은 밤늦게까지 고민하고 얘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본인 둘만의 머리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었는지 지인과 친척들의 의견도 물었지만, 그들의 의견들도 갈리는 듯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미국에 가면 총에 맞는다더라’와 같은 무시무시한 의견도 들렸다.


몇 날 며칠 고민한 후 부모님은 내게 교환학생 대신 여름방학 동안 미국 여행을 제안하셨다. 하지만, 시험 칠 당시엔 기대가 없었던 나도, 시험에 합격하고 최종 선발된 후엔 이 기회는 내게 올 몇 안 되는 큰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강경하게 교환학생으로 가고 싶다고 주장했다. 결국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대화와 심사숙고가 여러 번 지속된 끝에야, 부모님은 어느 날 점심쯔음에 나를 앉혀놓고 “그래 다녀와라.”라고 말씀하셨다.


훗날 허락한 이유를 물었을 때 부모님은 넓은 곳에 가서 내가 많은 곳을 보고 느끼고 배우길 희망하셨고 또 영어는 한국어가 들리는 않는 곳에 가서 배워야 빨리 배운다고 생각하셨단다. 또한, 엄마도 학창 시절 속초에서 서울로 와서 공부했고, 그 경험을 빗대어 나의 유학을 최종적으로 허락하신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이 사립학교에서 유학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가 든다지만 2000년대 초반 시절 천만 원이 훌쩍 넘는 비용을 고려하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담대하고 과감하게 결정하셨고, 그 결정이 무척 감사하고 존경스럽다.


교환학생으로 가기로 최종 결정을 하니, 나머지 일들은 일사천리였다. 봄이 되어 학기가 시작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했지만, 방과 후 미국에 가기 위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유학원에서 진행한 오리엔테이션과 세미나 등에 참석하고, 대략 8~9월쯤에 시작하는 미국 고등학교 개학 시기에 맞추어서 정해지는 출국 날 전까지 가족들과 시간도 보냈다. 내게 2005년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빨리 지나갔다.


3줄 요약:

1.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를 거쳐서 미국 공립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최종 합격함.

2. 심사숙고 끝에 부모님은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하심.

3. 2005년 가을학기에 맞춰 출국 준비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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