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곳에 나는 서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려 애쓰던 와중, 내 뒤로 칼을 든 무당이 쫓아왔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진한 화장을 한 그녀에게선 분명한 살기가 느껴졌다. 앞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이 놓여 있었지만 살기 위해 일단 뛰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점점 좁혀지는 무당과 나의 간격. 무당이 휘두른 칼이 내 몸에 닿을 때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꿈이었지만 무당과의 추격전은 진짜인 것처럼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첫 등교 날은 긴장감 때문인지 악몽과 함께 시작했다.
미국에 도착 후 학교 시작 날까진 대략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호스트 가족들과 얘기도 나누고 같이 영화도 보며 가까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호스트 가족은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었다. 종종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임시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봉사를 해오셨는데, 이번엔 색다르게 외국의 교환학생을 한번 받아보기로 하신 것이었다. 다행히 호스트 가족은 본받을 점도 많았고 상냥하셨다. 실제로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나는 큰 불만 없이 즐겁게 미국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등교 첫날 아침,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 집 앞 우체통 옆에 섰다. 좀 기다리니 저 멀리서 노란 버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모습이 점점 커지다 내 앞에서 속도를 점점 줄이더니 완전히 정차했다. 나를 태우기 위해 기사님이 문을 열어주시고, 나는 긴장한 채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안에선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 나누고 있었고, 내가 버스 안으로 들어서니 처음 보는 이 아인 누군가 하며 관찰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버스 안에 아시안은 나 혼자 밖에 없었고 숨 막히는 어색함과 부끄러움이 내 얼굴을 새빨갛게 했다. 가까이 있는 빈자리에 서둘러 앉은 나는 이 어색함이 빨리 끝나길 기대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다니게 될 학교는 버지니아 주도인 리치먼드에서 멀진 않았지만, 농촌지역에 있었고, 학교 내에 한국인은커녕 아시안이 전교생 1,600명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학교였다. 학교에 도착해서 일정에 맞춰 교실로 가니, 거기서도 호기심의 시선은 계속되었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체로 이 지역에 쭉 살며,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경우가 많았다. 근데 지금껏 못 봤던 아시안 학생이 있으니, 그들도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 등교한 날,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넓은 식당을 채운 시끌시끌하게 대화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화성인들 사이 지구인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내향적인 성격 탓이었겠지만, 이미 친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나도 좀 끼워줘"라고 말하며 옆에 앉을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이날은 호스트 아줌마가 싸주신 점심을 도서관 구석에서 혼자 먹었다.
예상외로, 부족했던 나의 영어 실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이 대체로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셨던 것도 있고, 수업이 시작되면 모두 수업에 집중했기 때문에, 이 미칠듯한 어색함에서 약간은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 수업이 마무리되고 집에 도착했을 때 호스트 아줌마가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물었다. 서투른 영어로 낯설고 쉽지 않았다고 얘기하니, 아줌마가 "It will take time. (시간이 좀 걸릴 거야)"라며 위로해 주셨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미 익숙해진 친구들 사이에 섞여서 어색함 따윈 없었을 터라고 생각하며 의기소침해진 채 첫날을 마무리하였다. 한국이 무척 그리운 밤이었다.
이후로도 계속 어색함이 지속되었지만, 한 달 정도 지나니 먼저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도 생기고, 주말에 같이 모여 게임도 하고 숙제도 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이렇게 된 계기로는 우선 호스트 아줌마가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적응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점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고 낯선 이방인을 보자마자 환영하고 마음을 활짝 여는 건 쉽지 않다. 그들도 나도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로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향상되며 자신감이 붙었던 점이다. 학교에 처음 왔을 땐 부족한 영어 실력과 어눌한 발음에 스스로 위축됐지만,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영어를 배우니 실력도 빨리 늘고 누군가에게 곧잘 말도 걸게 될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주눅 들 필요는 없었다. '외국인이니까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생각하고 실수하면 고치면서 배우면 될걸,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지레 겁먹고 위축됐었다.
적어도 나의 경험상 사람들은 나의 영어 실력엔 대체로 무관심하고, 관심이 있다면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혹여나 부족한 영어 실력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본인의 영어 실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상대방의 인성 탓이다. 독자 중 유학을 나간다면 실수를 두려워 마시고 당당하게 영어로 묻고 답하시길 바란다.
3줄 요약:
1. 미국 고등학교 첫 등교 날 어색함과 낯섦에 힘들어함.
2. 몇 주가 흐르고 나서야 같이 놀고 대화도 나눌 친구가 하나둘씩 생김.
3. 당시엔 부족한 영어 실력에 주눅이 들었었지만, 그럴 필요 전혀 없었음. 당당하게 영어로 말하고 실수를 고쳐가며 배워야 실력이 빨리 향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