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의 어느 금요일, 평소와 같이 치열했던 일주일을 보낸 나는 주말에 시원한 폭포를 보며 재충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전 편에서도 말했듯, 나는 크기에 상관없이 아무 폭포 근처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잠시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과 고민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집 근처에 있는 폭포는 모두 방문했기 때문에, 새로이 방문할 폭포를 인터넷으로 찾아보던 도중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 (Ricketts Glen State Park)이 눈에 띄었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위치한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은 20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크고 작은 폭포가 20개나 있다고? 거기에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덤으로?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주립공원을 알게 된 후 난 그 즉시 근처의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렇게 토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난 후, 나는 간단한 짐을 챙겨 불과 하루 전에 알게 된 미지의 장소로 향했다.
숙소가 위치한 윌크스배리(Wilkes-Barre)는 펜실베이니아주 북동쪽에 위치한 인구 40,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석탄산업의 쇠퇴와 함께 과거만큼의 번성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주변에 많은 스키 리조트가 있어 겨울엔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스케한나강(Susquehanna river)은 펜실베이니아주와 메릴랜드주를 지나 체서피크만(Chesapeake bay)으로 흘러간다. 메릴랜드에 살며, 수스케한나강을 여러 번 지나가 봤는데, 이 강이 이렇게 북쪽에서도 흐르고 있었다니 새삼 신기하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운전한 지 어언 3시간 후, 나는 윌크스배리에 도착했다. 도착했을 땐 날씨가 흐려, 도시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우중충했다. 심지어 비도 내려, 과연 내일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에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기 시작했다. 예약한 숙소에 체크인한 후, 저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팔고 있던 스페인식 튀김만두 엠파나다(Empanada)로 해결하였다. 갓 튀긴 엠파나다 속에선 김이 살짝 났으며, 속을 가득 채운 고기소는 장시간 운전하며 느껴진 허기를 채우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적절히 간이 되어있었고, 고기와 함께 들어있는 야채 때문이었는지 부담 없이 계속 먹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에서 잠깐 쉬었더니 오후 내내 내리던 비가 그쳤다. 아직 밖은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기에, 윌크스배리의 시내를 잠깐 훑어보기로 했다. 윌크스배리 시내 중앙에 있는 로터리에 잠깐 차를 세운 후 주말 저녁 윌크스배리의 모습을 눈에 담아보았다. 주말 저녁이었는데도, 시내를 돌아다니는 차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비가 그친 후 조금씩 개는 하늘의 모습과 어우러져, 우중충했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도시는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짧았던 윌크스배리 시내 구경을 마무리한 후, 내일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는 일정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서 휴식을 취했다.
아침 6시, 핸드폰의 알람이 울리기 시작한다. 해가 아직은 완전히 뜨지 않은 이른 시간, 나는 등산 장비와 준비해온 간식 등을 챙겨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으로 향한다. 숙소에서 공원까지는 대략 40분 정도가 걸렸는데, 공원은 도심에서 완전히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시원하고 맑은 숲 속의 공기를 마실 수 있어 기분이 무척이나 상쾌해졌다.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책로는 20개의 크고 작은 폭포를 모두 볼 수 있는 대략 11km 길이의 코스다. 기왕 멀리까지 온 김에, 나는 그 코스를 완주해보기로 하였다. 산책로의 입구부터 멋진 개울이 나를 반긴다. 숲 속의 그늘과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물의 조화로 여름의 무더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입부부터 이렇게 아름답다니... 이번 산책로는 뭔가 심상치 않다.
산책로 초입에 있는 안내도를 보며 나는 우선 폭포의 위치와 코스를 눈에 익혔다. 오기 전부터 폭포가 많은 산책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안내도를 마주하니 무척이나 설레기 시작했다. 산책로 초반엔 오르막길이 계속되어 힘들지만, 오르막 구간만 지나면 나머지는 평탄하거나 내리막길의 연속이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산책로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번째 폭포를 마주하였다. 폭포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유난히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려가는 것 같다. 가까이 가보니, 폭포에서 물보라가 뿜어져 나와 지면을 적시는데, 길이 미끄러워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산책하지 말라는 주의 사항이 과장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첫 번째 폭포를 보며 감탄했지만, 평소처럼 폭포 옆에 앉아 20~30분을 멍하니 여유롭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마주할 19개의 폭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을 계속 걸으며 허벅지가 땅기기 시작할 무렵, 이번 산책로에서 가장 높은 폭포인 가노가 폭포(Ganoga Falls)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 폭포의 높이는 무려 28미터에 달한다고 하는데, 마치 계단처럼 깎인 절벽을 타고 세차게 흐르는 폭포의 모습은 무척이나 웅장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폭포를 배경 화면 삼아, 나는 오르막길을 걸으며 쌓인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가노가 폭포에서 대략 30분 정도를 더 걸으니, 오르막 구간이 마무리되고, 평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 산책로의 힘든 코스를 다 마무리했다는 사인이었다. 비록 내가 마주한 폭포는 모두 아름답고 설렘을 안겨주었지만, 계속된 오르막길 때문에 허벅지가 무척이나 땅겨 오랜만에 마주한 평지와 소나무 숲도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졌다.
산책로의 반환점을 돌아, 주차장을 목표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계속 내리막길 혹은 평탄한 지형이라 육체적인 피로도는 훨씬 덜했다. 산책로의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름다운 폭포들은 계속해서 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의 바람은 명확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며, 잠시나마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을 잊고 재충전하는 것. 실제로 나는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을 산책하며 원 없이 아름다운 폭포들을 감상하였고, 사색을 즐기며 재충전할 수 있었다. 나처럼 폭포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만한 여행지가 또 있을까? 불과 며칠 전엔 알지도 못한 장소였지만, 만족도는 여느 관광명소 못지않았다. 이런 게 바로 중소도시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나는 대략 3시간에 달했던 리케츠 글렌 주립공원 산책을 끝마치고, 1박 2일의 짧았던 펜실베이니아주 윌크스배리 여행을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