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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소도시 여행기] #4 텍사스주 엘패소

by 홍머루

지난겨울, 연말을 맞아 나와 짝꿍은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텍사스 엘패소(El Paso)에 계시는 형님네 부부댁을 방문했다.


텍사스주 서쪽 끝에 위치한 엘패소는 우리가 지금 지내고 있는 메릴랜드주에선, 대략 3000 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먼 거리이고 대도시가 아닌 만큼, 집 근처 공항에서는 그곳까지 바로 가는 직항편도 없었다. 그렇기에, 엘패소에 가는 여정만 해도 환승시간까지 포함하면 총 8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볼티모어에서 출발 후, 오스틴을 거쳐, 엘패소로 향한다. 환승시간까지 포함하면 대략 8시간의 일정, 이동시간으론 마치 해외여행이다. / 지도 출처: Great Circle Map


엘패소에 가까워질수록, 비행기 창문 밖 풍경에서 나무와 숲의 푸르름이 점점 사라지고 광활한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엘패소는 치와와 사막 (Chihuahuan Desert)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같은 나라 안을 이동하고 있지만, 기후와 지형이 이렇게나 바뀌다니… 새삼 미국의 큰 면적이 실감이 난다.


창문 밖 풍경은 온통 황토색 빛,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건조해 보이고 광활하다.


도착해서 형님네 부부와 모처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낸 후, 짝꿍과 나는 다음 날 하루 짬을 내어 엘패소 주변을 여행하기로 하였다. 처음 방문한 여행지는 엘패소에서 차로 한 시간 반정도 거리에 위치한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 (White Sands National Park)였다. 이름처럼, 하얀 모래의 언덕이 상징인 국립공원이었는데, 그곳까지 가는 길은 차도 별로 없어 시원시원했고, 광활한 들판과 대비됐던 하늘은 유난히 파랗게 느껴졌다.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 멀리 보이는 오르간 산맥 (Organ mountains)의 깎아지는 절벽이 인상적이다.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내가 과거에 즐겨했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한 장면이 눈앞에 실제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비현실적이고 컴퓨터 그래픽 같이 아름다운 하얀 모래밭과 언덕이었다. 차에서 내려 모래밭을 걸으니, 발이 움푹움푹 빠져서 은근 체력 소모가 크다. 햇볕은 뜨겁고, 사막 기후 때문인지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건조한 것 같아 갈증도 났다.


하지만, 하얀 도화지 같은 모래사장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는 재미가 쏠쏠해 계속 발걸음을 재촉한다. 공원의 이곳저곳을 거닌 뒤, 벤치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물과 귤을 먹으며 SF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의 모습을 하염없이 눈에 담는다.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공원 안에는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으니, 이곳에서 충분한 양의 물과 간식을 구비하자.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 깔끔하게 정비된 데크길을 산책하는 것도 가능하고, 허허벌판 같은 곳에서 맘껏 뛰놀수도 있다.
화이트 샌드 국립공원의 하얀 모래 언덕은 마치 SF 영화의 배경처럼 이국적이고 신비롭다.


이제 차를 돌려, 다시 엘패소로 향한다. 엘패소로 향하는 길에 있는 뉴멕시코주의 중소도시 라스크루시스 (Las Cruces)에 잠시 들려, 허기진 배를 채운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텍사스주 근방에만 있다는 왓어버거 (Whataburger). 평소 햄버거를 워낙 좋아해, 셰이크 쉑, 파이브 가이즈, 인 앤 아웃 등등 나름 이름 있는 프랜차이즈들은 다 섭렵했던 우리였기에, 아직 정복하지 못한 이 식당에 엄청난 기대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입에는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겨자소스의 맛 때문인지, 기대보다는 아쉬운 햄버거였다.


기대보다는 아쉬웠던 왓어버거. 겨자맛이 강해,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느낌이다.


다시 엘패소에 도착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엘패소 전망대(El Paso scenic overlook)로 향했다. 전망대에선 엘패소 시내가 한눈에 보이고,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 (Ciudad Juarez)까지 구경할 수 있는 엘패소 여행의 필수 추천코스였다. 굽이진 2차선 언덕길을 차로 10분 정도 올라가야 했는데, 마치 북악스카이웨이를 운전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떤 곳에선 도로 옆에 갓길도 없이 바로 절벽이 있어, 약간은 긴장한 채로 렌터카의 운전대를 꽉 잡고 운전했다.


가운데에 흐르는 리오그란데 강을 두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맞닿아있다. 강 건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


전망대에 도착하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엘패소의 전경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탁 트인 도시전경은 무척 멋졌는데, 왜 이곳이 엘패소 여행의 필수 코스인지 알 것만 같았다. 높은 곳이다 보니, 바람은 무척 시원했고, 날씨가 맑아, 리오그란데 (Rio Grande) 강 건너 멕시코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게 새삼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육로로 다른 나라를 넘나드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서인지, 운전해서 다른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항상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실제로 앨패소에선 멕시코 치와와주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짝꿍과 언젠가는 저기 보이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도 함께 여행해 보자는 다짐을 하며, 올라왔던 굽이진 언덕길을 내려와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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