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 918 워싱턴-런던 탑승기 및 런던 여행기 (1)
비행기 - 제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 중 가장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지낸 곳이 김포공항 근처여서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은 여행에서 오는 설렘과 떨림을 증폭시켜 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그저 버스와 지하철 같은 이동 수단이겠지만, 제겐 멋진 카페를 방문한다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같은 활동인 비행기 탑승을 여행기와 섞어 브런치스토리에 공유하고자 합니다.
탑승 날짜: 2024/11/27
항공 편명: UA 918
기종: Boeing 777-200ER
출발 공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 (IAD)
출발 시간: 18:27
도착 공항: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 (LHR)
도착 시간: 06:34
총 소요시간: 07:07
비행 거리: 3667 mi
미국은 지난주가 추수감사절 연휴였습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저와 아내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대신, 런던으로 짧게 3박 5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전, 제가 가지고 있는 아시아나 마일을 어떻게든 소진하기 위해서 이곳저곳 여행지들을 알아보니, 저와 아내가 워싱턴에서 런던까지 편도로 갈 수 있었습니다.
수요일 점심까지 일을 한 후, 저와 아내는 짐을 챙겨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추수감사절 연휴 전날이라 그런지 고속도로에 차가 막혀, 평소보다 30분은 더 걸린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이동이 특히나 많은 추수감사절 연휴라서, 공항의 넓은 야외주차장은 차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차를 멀찍이 주차한 후, 셔틀을 타고 덜레스 공항의 메인 터미널로 향했습니다.
이번엔 유나이티드 항공의 라운지를 이용하기 위해, 비행기 출발시간인 저녁 6시 반보다 이른 3시쯤에 에어사이드로 들어왔는데요. 저는 따로 항공사 등급이 없지만, 유나이티드 항공 연계 신용카드를 만들면 1년에 2장 주는 라운지 이용권으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라운지에선 간단한 간식들뿐만 아니라 샌드위치, 수프, 그리고 타코와 같은 음식들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인천공항의 라운지에 비하면 별 볼 일 없지만, 이전 유나이티드 라운지에서 제공됐던 음식들을 생각해 보면 서비스가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라운지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탑승 시간에 맞춰 게이트로 향했습니다. 게이트 앞엔 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요, 덜레스 공항은 꽤 오래전에 지어진 공항인 만큼 신식공항에 비하면 넓거나 쾌적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비행기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게이트에 당첨되어, 비행기 사진을 따로 남기지 못하고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이번에 워싱턴에서 런던까지 저희를 데려다준 UA 918편은 Boeing 777-200 ER 기종이었는데요. 좌석 배치가 3-4-3이어서 폭이 좁은 닭장 수송이었습니다. 하필 또 제 옆자리엔 덩치 큰 아저씨분이 앉아계셔서 '아 이번 비행 힘들겠구나' 생각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저씨가 감기에 걸리셨는지 기침하시는데 입도 가리지 않고, 다리도 계속 제자리로 넘어오셨습니다. 웬만하면 저도 불평불만 안 하는데, 이번 비행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쾌적한 비행은 옆자리 손님이 누가 걸리느냐도 참 중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탑승이 마무리된 후, 비행기는 예정 출발 시간인 18:30분에 맞춰서 이륙하였습니다.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식이 나왔는데요. 메인으로는 치킨구이와 토마토 리소토가 나왔고, 사이드로 샐러드 하나와 모닝빵 한 개, 그리고 디저트로 브라우니가 제공되었습니다. 저는 비교적 느끼한 음식들을 잘 먹는 편이라 메인요리는 맛있게 먹었는데, 샐러드는 사과 향이 나는 새콤한 소스를 쓴 게 제 입엔 맞지 않았습니다.
기내식을 먹은 후, 좌석이 좁아 편하진 않지만, 다음날 일정을 위해 눈을 붙여봤습니다. 대략 2시간 반쯤이 지났을까, 기내가 밝아지며 승무원들이 간식 서비스를 준비합니다. 런던 도착 전 맥모닝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아침 샌드위치가 제공되었습니다. 샌드위치의 맛은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두 번째 기내식을 먹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저희가 탑승한 비행기는 런던 히스로 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였습니다. 저는 이전에 환승을 위해 들른 것을 빼고는, 영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항상 새로운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딜 땐 설렘과 낯섦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내려서 비행기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이른 아침이라 어두웠고 도착한 게이트에서도 비행기가 잘 보이지 않아 아쉽게도 사진을 남길 수 없었습니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저희는 짐을 챙겨 런던 시내로 향했습니다.
히스로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가니 아침 공기가 무척 차갑습니다. 예약한 숙소가 위치한 Stratford 역으로 가기 위해 Elizabeth line을 이용하였습니다. Elizabeth line은 한국의 공항철도와 같이 히스로 공항과 런던 시내를 빠르게 연결해 주는 노선인데요. 무척 피곤했지만, 새로운 풍경, 들리는 영국식 영어 발음에 신기해하다 보니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Stratford 역은 서울역처럼 많은 전철 노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인 만큼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다음, 긴 비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씻고 짧게 낮잠을 잔 후, 여행의 첫 일정으로 런던의 먹거리 장터인 보로 마켓 (Borough Market)으로 향했습니다. 한국의 광장시장 같은 느낌처럼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는 곳이었는데요. 유명 관광지인 만큼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도 바글바글했습니다. 저희도 이곳에서 미트파이와 소시지 롤을 비롯한 다양한 영국 음식들로 배를 채웠는데요. 특히 미트파이 안엔 큼지막한 소고기 덩어리들이 치즈와 꾸덕꾸덕한 소스와 함께 들어가 있어, 포크로 파이를 자를 땐 김이 모락모락 나왔습니다. 추운 날 허기진 상태에서 먹는 뜨끈하고 든든한 미트파이는 무척 맛있었습니다.
보로 마켓을 구경한 후, 소화를 시킬 겸 근처에 있는 타워 브리지까지 산책하였습니다. 타워 브리지는 보로 마켓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요. 사진으로 꽤 많이 봤던 건축물이라 실제로 봐도 감흥이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보니 무척 이뻤습니다. 꽤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관광객이 타워 브리지를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저희도 열심히 사진을 찍어 눈에 보이는 풍경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타워 브리지를 구경하고 나서는 여행 첫날의 하이라이트인 토트넘 경기를 보기 위해 북런던에 있는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으로 향했습니다. 저와 아내 둘 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저는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 입단할 때쯤 해외 축구에 입문했고 현재는 K리그까지 챙겨보고 있습니다. 아내 또한 2002년 월드컵 신문 기사 스크랩해 놓은 걸 아직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축구에 진심이라, 저희 둘에게 이번 토트넘 경기 관람은 정말 설레고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경기장에 운집한 5만여 명의 팬들이 다 같이 환호하고 응원가인 "When the Spurs go marching in"을 부를 땐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본 토트넘 선수들이 내 눈앞에서 뛰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었고, 상대 팀인 AS 로마에도 후멜스나 디발라와 같이 유명한 선수들이 뛰고 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정말 운 좋게도 손흥민 선수의 (비록 PK였지만) 골까지 볼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운 경기 관람이었습니다.
런던에서의 첫날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워싱턴에서 런던으로 오는 여정도 짧지 않았고, 첫날부터 바쁘게 런던을 돌아다니다 보니 저와 아내 둘 다 숙소에 도착해서 씻자마자 눈을 감았다 뜨니 다음 날 아침이 돼 있었습니다. 일어나서도 아내와 저는 우리가 지금 영국에 있는 거야? 어제 영국에서 축구를 직접 관람한 거 맞아?라고, 계속 되물으며 믿기지 않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원했고 꿈만 같았던 순간을 직접 맞이했을 땐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저희는 두 번째 날의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도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