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아픈데 병명이 없다.

by 유목민

정말이다. 나는 아픈데 병명이 따로 없다.

신장 173cm에 건장한 체격. 건강해져 보겠다는 일념으로

20여 년 해 온 운동 덕분에 멀쩡하게 잘 걸어 다닌다. 꼿꼿한 자세로. 아무도 내가 허약하다고 꿈에도 생각 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체격은 튼튼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외가를 닮았고, 속은 너무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다는 허약한 아버지를 빼다 닮았다. 얼굴과 지능은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악성 나르시시스트인 모친은 골든차일드인 언니와 동생만 치켜세우며 돌보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우월함을 떠벌리느라, 나는 골방에 방치했다(자녀를 골든차일드와 스케이프고트로 나눠서 극단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나르시시스트를 결정짓는 특징이다). 허약한데 빨리 자라느라 늘 어지럽고 욱신욱신 아팠는데, 아프다고 해도 돌봐주지 않아 찬바닥에 누워 견뎠으며, 누가 밥 먹으라고 불러 준 적도 없고,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는 병원에 혼자 다녔다.

일 년 동안이나. 바닥에 패대기친 병원비를 줏어들고. 고문 그 자체였던 피 튀기는 80년대의 축농증 치료를 받으러. 다행히 탁월한 기억력과 비교분석 능력을 타고 난 덕분에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저 아줌마는 계모라 판단했다. 책에서 본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의 계모처럼 노려보니까. 좀 커서는, 외부에는 최고의 엄마로 보이기 위해 나도 언니 동생이 다니는 사립국민학교에 보내줬기 때문에 그만하면 다행이라 여겼을 뿐이다.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꿈은 집을 나가서 독립하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 허약한 체력을 쥐어짜 열심히 공부했다. 그 과정에 모친이 악랄하게 방해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건강에 대해 말하는 중이라 하나만 공개하자면 고등학교 내내 최상위권만 받는 야간학습을 위해 저녁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는데 삼 년 동안 딱 두 번 싸 줘서 나머지 날들은 라면과 떡볶이를 먹으며 공부했다. 그 바쁘다는 고위공직자, 의사, 변호사인 친구 엄마들도 자녀가 고삼 때는 정성을 다 해야 한다며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 두 개 싸준다는데, 강남 8 학군에서 가정주부인 모친을 가진 나는 라면으로 연명했더랬다.


나름 명문대라는 대학에 합격하고 아버지의 지지로 성공적으로 독립하는 데 성공했으나, 타고난 허약체질에다 어린 시절 적당한 케어를 받지 못 한 나의 몸은 직장에 들어가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일 년쯤 지났을까. 밥 먹고 토하기 시작했다. 점점 빈도수가 늘어나더니 어느 날, 너무 바빠 버거킹 와퍼를 씹으며 야근을 하다가 10번 토했다. 나중에는 나올 것이 없으니 위산만 나와 너무 괴로웠는데, 그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계속 먹은 것을 토하니 점점 기운이 없어졌고, 버스에 타서 자리에라도 앉을라치면 기절하듯이 잠이 들었는데 깨고 나서 온몸이 아픈 것을 보면 기절한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부터는 먹자마자 수도꼭지 튼 것처럼 먹은 것이 튀어나왔다. 또 일 년이 지나자 누군가 앞에서 하는 말이 머리에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으며 대답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사이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으나 헤모글로빈 수치도, 혈압도, 무슨무슨 수치도 낮기는 하지만 정상 범주에 있단다. 그러니까 꾀병이라는 말이었다. 경희대에서 유명하시다는 한의학 교수님께 진료를 받아도 이 몸을 해갖고 어떻게 직장을 다니냐는 말과 함께 한약만 지어주고 왜 아픈지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좋아하던 첫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년쯤 지난 시점에 '거식증'이라는 병이 세상에 알려졌다. 증상은 나와 같지만 지나친 다이어트 때문에 생긴 정신질환이란다. 주로 모델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이유에서. 그러나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밥을 굶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끼만 걸러도 몸이 덜덜 떨리고 심하면 브레이크 댄스 추는 것처럼 발작하는데 굶다니. 그 후 10년 뒤, 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왔다. 거식증은 몸에 영양분이 너무 모자라서 먹은 음식물을 처리할 에너지가 없어 밖으로 배출하는 증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그거라면 맞는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자꾸 구토를 하니 나는 먹는 것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면밀히 관찰해 보니, 공장에서 만들어서 파는 모든 것이 소화가 힘들고 컨디션이 나쁘면 토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과자를 안 먹었고,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싫어했고(당시 친구들은 하루 세끼 몇 달 씩 먹어도 좋다고 했었다),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자주 토했다. 조미료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다. MSG의 고향인 아지노모토사의 웹사이트에 가면 자세한 설명이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중국음식만 먹으면 심한 식곤증을 느끼거나 토한다는 '차이니스레스토랑신드롬'이 문제가 되면서 그를 증명하기 위한 무수한 연구가 있었음에도 인체에 해롭다는 증거는 전! 혀! 없으며 감칠맛을 올려 인류의 식생활에 기여했다고. 내가 보기에는 나처럼 허약해 에너지가 모자라는 사람들은 자연식이 아닌 인공으로 만든 음식을 체내에서 처리하는 것이 힘들어서 생긴 오해인 것 같다. 수십 년이나 연구해도 문제가 안 나왔으면 문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조미료뿐 아니라 방부제 든 음식도 먹으면 나는 너무 괴롭다는 데 있으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사이 만난 중국인 한의사들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한쪽은, 내가 타고난 피의 양이 모자라서라고, 다른 쪽은 몸이 습해서 그렇다고. 몸이 습하면 장기가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어느 의사에게 들은 대답보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식곤증이 심하다 못해 기절하다시피 잠드는 날이 많은데, 피가 위장으로 몰리느라 뇌에는 공급이 안되서가 그 이유라면 '피가 모자라다'는 것도 말이 될 것 같다. 나는 덩치도 쓸데 없이 커 혈액이 커버해야 할 면적도 넓지 않나. 그뿐 아니라 나는 해가 지면 눈앞도 침침해지고, 행동도 어눌해지고, 비가 오기 이틀 전, 태풍의 경우는 일주일 전부터 너무 어지러워서 땅바닥에 붙는 것 같다. 기상변화에 몸을 적응시키는 것 마저도 몸에 무리가 되니, 20대 때에도 할머니처럼 비오는 날을 기상예보보다 정확하게 맞췄다. 컨디션이 많이 나쁜 날은 밥 잘 먹고 무거운 것을 옮긴다던가, 몸을 구부려 바닥의 무언가를 줍는 다던가 하는 사소한 일에 체한다. 과식하거나 조미료 많은 음식 먹고나서 정신을 바짝 차려서 뭔가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추운데 떨거나, 더운데 참거나, 무거운 것을 지고 있거나 하면 토한다. 그 와중에 이사 다니며 아이도 키우고 학교도 다니자니 참 어려움이 많았다.


최근에는 '에너지레벨이 낮다' 라거나 '기초대사량이 낮다'라는 표현을 들었다. 그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쉽게 말하자면 정상인의 에너지레벨이 100이라면 나는 55정도밖에 타고나지 않았고, 생존을 위해 기본으로 써야 하는 에너지가 40 정도 된다면 정상인은 나머지 60으로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추위에 몸을 덥히고 감기 바이러스 들어와도 빨리 퇴치를 하지만, 나는 15밖에 없어 몸이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처리하다 보니 뭐든 무리가 되는 것이 아닐까. 누울 수도 없는 외부에서 에너지레벨이 떨어지면 체온조절이 안된다. 남들 반팔 입고 돌아다니는데 나는 손이 파랗게 질려 붓기시작하고, 체기가 올라온다. 덕분에 나는 예쁜 구두, 샌들 신기를 포기하고 양말에 운동화만 신은 지 30년이고, 학생처럼 백팩을 메고 다닌다. 그 안에는 여벌의 옷, 비옷, 우산, 소화제, 지사제, 장갑, 스카프 등 없는 게 없다. 친구들이 도라에몽 가방이라고 놀린다. 비 맞은 채로 학교 가서 수업 듣고는 한 달을 앓은 적 있어서 비도 맞으면 안 된다. 높은 습도에 적응 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기온은 높아도 습한 대만이나 홍콩 살던 시절 히팅패드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실제로 영상 13도 이하로 떨어지면 대만 전국에서 밤 새 100명 쯤 혈액순환이 안되서 동사로 죽는다. 올해 1월에는 한달가량 영상 4도까지 내려가서 1,500명 가량 사망했다. 뉴스에도 나왔다. 정말이다. 히팅패드 없으면 나도 그 중 하나겠지. 혈액순환을 도와주는 약을 먹으라고? 약도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 3일 먹으면 설사한다. 비타민, 철분제, 오메가 3 등 보충제도 마찬가지다. 좀 모자라는 영양분을 보충하겠다고 잘 먹어서 소화된 영양분까지 변기에 물 내리듯이 버릴 순 없지 않나.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잘 먹어야 나아질 확률이 높아질 텐데, 건강해서 혈액순환도 잘 되고 에너지 레벨도 높은 사람들은 뭘 먹어도 상관없지만 나는 뭘 먹어도 문제다. 공장에서 만든 식재료, 그러니까 조미료, 방부제가 든 모든 식재료와 차고, 맵고,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모두 다. 과식도 물론 힘들다. 야식으로 치맥은 꿈도 못꾼다. 물을 많이 마시지만 한꺼번에 많이 마셔도 안된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내겐 맛난 것을 앞에 두고 못 먹으면 고문이 따로 없지만, 먹고 여러 번 문제가 생겨 트라우마가 쌓인 음식이라면 이젠 별로 먹고 싶지도 않다. 덕분에 주로 집에서 간만 살짝 해서 먹는 한식을 주로 먹는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정말 다행이다. 수천년간 시행착오를 통해 모든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는 레시피를 남겨주신 조상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유행 따라 계속 바뀌는 최신 영양제나 최신 건강 정보 하나도 따라 하기를 그만 둔 지도 20년도 더 되었다. 언제는 현미가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난리 치더니 이제는 비소 중독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뉴스에 나오고, 돼지비계 나쁘다고 난리 더니 이제는 건강식이란다. 내가 시간만 좀 투자하면 자연식으로 영양소 골고루 먹을 수 있는데, 굳이 거기에 더해서 요즘 핫하다는 저속노화식단을 따라해야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소화가 안되는 통곡물만 빼면 나도 그렇게 먹고 살고 있었다. 원래.


나는 여전히 기운도 없고, 어지럽고, 아픈데 병명이 없다. 자연식 먹고, 운동하고, 병원다니고, 극단적으로 조심하면서 사는데. 조금이라도 발란스가 깨지면 회복하느라 며칠을 누워서 보내야 한다. 솔직히 억울하다. 묵묵히 옆에서 같이 견뎌주는 남편이 고맙고 미안하다. 생각 해 보면 그동안 만났던 무수한 의사선생님들의 말씀이 다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각자의 관점에 따라서만 말해서 내 전체적인 증상하고 부합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나 나쁜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가 보다. 나는 50대인데도도 잘 뛰어 다니고, 오십견도 없다. 성형도 관리도 안받는 내게 젊어보인다며 무슨 관리를 받냐며 캐 내려고 만나는 사람마다 난리다. 위에 적은 모든 것을 조심하고 살려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우울하겠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극단적인 내향형이라 집에서 좋아하는 걸 하며 지내는 것이 좋다. 도파민 충분히 나온다. 굳이 안 되는 걸 생각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면 아깝지 않나. 되는 것만 생각하기도 바쁘다.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니 30년 전 처음 발병했을 때 보다 나빠지지 않았다. 노화도 진행중인데. 그러니 나는 선방한 거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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