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성시경 씨 고마워요!

외국어를 배우는데 재능은 그저 조금 도움이 될 뿐

by 유목민

어머! 언어에 재능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내가 남의 나라에 살며 그 나라 말을 배워 구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칭찬이듯 칭찬 아닌 듯 애매모호한 말. 하도 들으니 무뎌지기도 했으나 기분이 좋지 않다. 나의 지난한 노력은 쏙 빼고 재능이 내 언어구사능력의 모든 원동력인 양 말하는 건 솔직히 무례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인식하지 못하고 칭찬인 양 말한다.


내 노력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포기한 지도 꽤 되는 얼마 전 어느 날 가수 성시경 씨가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여러 매체에서 그를 인터뷰했는데, 인터뷰어들의 질문도 내가 들은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서 얼마나 좋으시겠어요?

그분도 처음에는 웃으며 겸양했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살짝 짜증을 섞어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언어를 배우는 데는 지름길이 없다. 개고통스럽고 불안하지만 악질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까지 술을 먹어도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두 시간씩 공부해야 가능하다."


나는 정말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정답이다. 나도 너무나 그 말을 하고 싶었다. 나도 일본에서 만 40세 되던 해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다. 공부 시작한 지 2년 만에.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열사병이 걸려서 시험을 망친 바람에 반년을 더 기다려 다시 시험을 보느라 2년이 걸렸다(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날 동경도내에서 예보도 없이 급작스럽게 덮친 더위로 4명이 사망했다). 한국어와 문법이 거의 같고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일본어라 한국사람은 몇 달 안에 일상에 필요한 일본어를 말할 수 있게 되지만, 일본어 능력시험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도 대학입시를 보기 위해서 몇 년에 걸쳐 시험 보는 것을 연습하지 않나. 짧은 시간에 많은 문장을 읽고, 듣고, 정답을 써서 합격점을 받기까지에는 말을 할 줄 아는 것을 완전히 넘어선 그 어떤 고통스러운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게다가 한자를 쓰는 언어는 그 수많은 한자만으로 또 다른 경지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지름길이 없지만, 한자를 외우는 것은 오른손 중지에 굳은살이 박여 아플 때까지 쓰고 외우고 또 쓰고 외우는 '깜종이" 말고는 왕도가 없다. 일본어 능력시험에는 한자 쓰는 주관식이 안 나온다고? 그럴 줄 알고 엇비슷한 한자들 모아서 출제하기 때문에 어설프게 외우면 한 문제도 맞힐 수 없다. 게다가 여러 군데 나오는 킬러문항. 언어를 공부한 것 말고 순간순간 번득이는 '기지'가 필요하다.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다음 문제는 홍콩에 있는 대학에서 중국어 초급반을 들을 때 겨우 더듬더듬 내 이름, 나이, 직업, 취미 등을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운 후, 첫 중간고사에 나왔던 문제다.


다음은 우리 학교 중국어 초급 A반과 B반 학생의 대화이다. 잘 듣고 질문에 답하시오.

A. 어디가?

B. 우리 반 학우 두 명이 테니스 가르쳐 준다고 해서 테니스장에 가.

A. 너네 반 학생은 모두 몇 명이야?

B. 15명. 오늘 두 명 결석했고, 세명은 집에 갔고, 나머지는 테니스 장에 있어.

A. 오! 그래? 재미있겠다. 그럼 다음에 봐!

B. 다음에 만나!

질문: 지금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배우는 학우는 몇 명인가?


한국말로 읽은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10명이나 8명을 선택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거다. 실제로 같은 반 친구들도 그랬고. 하지만 정답은 7명이다.

총 학생수에서 결석한 두 명을 빼고 집에 간 세명을 빼면 10명이다(15-2-3=10)

조금만 더 기지를 발휘하면 '배우고 있는 학생의 수'를 물었으니 '가르치고 있는 학생' 2명까지 빼면 8명이다(15-2-3-2=8).

그런데 더 잘 생각해 보면 아직 테니스장에 도착하지 않고 A반 친구와 떠들고 있는 놈! 까지 빼야 한다. 지금! 테니스장에서! 배우고! 있는 학생수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7명이 답이다.


이런 킬러문항이 대다수인 1급 시험을 그저 말을 잘한다고, 문법을 다 안다고, 한자를 다 안다고 정답을 쓸 수 있을까. 게다가 나이 먹고 이런 시험을 보면 시간의 압박이 제일 문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이런 압박감을 갖고 뭔가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만 넉넉했더라면 충분히 맞출 수 있는 문제도 우수수 틀리게 된다. 점심 먹고 나서 춘곤증을 심하게 앓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12시 넘어서 시작해서 4시간 정도 보는 시험 시간을 견디는 것도 큰 일이었다. 합격했던 그 시험 보고 일주일을 앓아누웠던 건 기본이고 전정기관이 흔들렸는지 오랫동안 몸에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북경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우리 반의 한국 학생들이 중국어 능력시험을 시험 삼아 보러 간다고 하길래 그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나보고 농담도 잘한다며 하하하 웃었는데, 시험 다음날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얼굴로 좀비같이 거의 잘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학교에 와서는 내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했다. 만만하게 볼 시험이 아닌데, 그저 중국까지 유학 와서 배운 실력 테스트 한번 해보자고 갔다가 너무 고생했단다. 정말이지 마지막 시간쯤 되면 아무거나 찍고 도망가고 싶다. 이번에 떨어지면 반년을 기다려야 다음 시험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도. 그 순간만은 그렇다.


시험을 보는 데만도 엄청난 노력과 기지와 체력이 필요하지만, 사실 진짜 게임은 그 오랜 시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꾸준히 공부하는 데 있다. 일본의 기후도 나의 엄청나게 허약한 체질과 맞지 않아 어지럽고 힘든 날이 많았는데, 아침에 세 식구 밥 차려 먹고, 딸내미 도시락도 싸고, 내 책가방도 챙겨 메고 딸내미 스쿨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고 바이바이 해서 보낸 다음, 거기서 20분가량 걸리는 스타벅스에 걸어가서 점심 먹을 때까지 공부했다.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하루라도 집에 늘어졌다간 쪽 쉬게 될 것 같다는, 그래서 공부를 더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었던 것 같다. 지유가오카(自由が丘) 스타벅스 2층, 커다란 테이블의 창가가 보이는 쪽의 왼쪽 모서리. 일본어와 씨름했던 그 자리. 어떻게 잊겠나. 집에 가면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 그 자리에 앉았을 때 정한 양을 다 공부해야 하는데, 체력 때문에 자꾸 점멸해 가는 정신을 붙잡느라 몸에 힘을 주며 앉아 있었더니 언젠가부터는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서 앉기도 힘들었었다.


이 모든 고통도 배우는 즐거움이 있으니 그럭저럭 견딜 수 있지만 정말 화가 나는 건 주변의 비아냥이다. 그 나이에 배워서 뭐 하냐. 늦어서 아깝다, 등등. 언어실력이라는 것이 오늘 두 시간 공부했다고 스스로도 느껴질 만큼 확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서, 터널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데, 가까운 누군가가 비아냥 거린다고 하면 그때는 폭발할 것 같다. 미국에서 배운 인류학에도 그를 규정하는 단어가 있다. Social leveling mechanism. (Level이라는 단어에는 단계, 층이라는 뜻이 있지만 동사로 쓰면 '집짓기 위해 땅을 평평하게 고른다'라는 뜻이 있다). 잘 나가는 사람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마음이 편한 사회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의 본능적인 심성이라는 면에서 서양이나 동양이나 비슷하지만, 학교에서 친구를 누르고 1등 해야 한다고 교육받은 한국사람에게는 공부한다는 사람을 어떻게든 주저앉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집에서 놀면 재밌는데~~~."라는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도 부지기 수고, 내 집에 쳐들어와서 맘대로 서랍마다 뒤진 다음 나보고 공부한답시고 살림을 잘 못한다는 둥, 애를 방치한다는 둥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고, 난데없이 나타나서 뭔가를 가르쳐 준다고 설치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일본 특유의 계급나누기문화에서는 아래급의 사람은 윗급의 사람에게 절대복종해야 하며 높아지려고 뭔가를 해서도 안된다는 사무라이 같은 암묵적 규칙이 있는데, 내가 공부한다는 사실이 나는 한 번도 가입한 적 없던 일본 엄마들 그룹에서 정해진 급을 이탈하려 하여 하극상하려는, 평화를 방해하는 인간으로 분류되어 이지매를 당했다. 길거리에서 단체로 서서 째려본다던지, 내가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소문내고 다닌다던지. 내참 유치해서. 딸내미도 이지매를 당할까 봐 참느라 화병이 걸릴 지경이었다. 물론 내 성질도 만만치 않아서, 시간이 좀 지난 후, 그 주동자인 일본 아줌마를 일본식으로 반격하여, 그분은 그 무리에서 쫓겨났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나는 2013년 12월의 시험에서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땄다. 대입에 성공한 것만큼 기뻤지만 곧 우리는 홍콩으로 이사가게 되었던 탓에 원하던 대학 진학은 못했지만 나는 그 이상 혜택을 누렸다. 자존감이 무척 높아진 것은 물론이고,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본 음식, 문화등을 샅샅이 즐겼으며, 그 과정에서 가족과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누군가 그랬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여는 것 같다고. 맞는 말이다. 거기다가 나는 한마디 더 붙이고 싶다. 외국어를 배우면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이 가능해진다고.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딴 성시경 씨는 그 후로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과 같이 방송도 하고, 세계적으로 훨훨 날고 있지 않나.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워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


그러나 아직도 외국어를 그만큼 배울 수 있던 건 재능 덕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언어에 비범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이제까지 딱 몇 명 봤다. 대표적인 예가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던 타일러 씨다. 그러나 이분도 대단한 재능이 있는 데다 엄청난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재능이 있어 조금만 배워도 남들보다 빨리 배우니 금새 시들해져서 때려 치운 사람들을 많이 봤다. 언어에는 재능이 독인 경우가 더 많다. 이제 제발 재능타령은 그만하면 좋겠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내게 비아냥 거리던 사람이나, 괴롭힌 사람이나, 내 노력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재능이 부럽다며 퉁치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들 인생이 뭔가 꼬여서 나빠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인생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운 맘을 먹는 것도 중요한 가보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하다.

다시 한번 고마워요, 성시경 씨. 이렇게 말할 기회를 줘서.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 바랄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6. 프로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