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ulture의 위상. 1
야!!!!!!! 이제까지! 너만! 이렇게 맛난 걸! 먹었어?????
대학친구들과 한국식당에 갔다가 울딸내미가 친구들에게 큰 소리로 구박을 당했단다. 어쩌다 보니 동양인이 소수인 대학을 다니는 울딸내미는 그 학교에서 조금 특이한 존재다. 한국사람이며 일본, 중국에 살아 본, 그리고 특이한 부모를 둔 덕에 온갖 음식을 다 체험해 본 데다, 그 언어를 구사할 줄 알기 때문에 친구들이 아시아음식을 먹으러 갈 때는 으레 우리 딸을 끼워서 간다고 한다. 그래서 울딸내미는 매번 주문 담당이란다. 네가 맛난 것 좀 시켜봐. 그때마다 실망시키지 않는 실력을 가진 울딸내미는 그래서 인기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날도 한국식당에 갔더란다. 채식주의자가 많은 미국에선 아이들끼리 같이 밥을 먹거나 파티를 할 때 장소선정이 힘들 때가 많은데 한국식당이 그래서 인기라고. 한쪽에선 고기를 구워 먹고 한쪽에는 채소만 먹을 수 있으니 모두가 해피하다나. 어김없이 딸내미가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는데, 대부분 다 한 번씩 먹어 본 메뉴들이라 고민고민하다 김치전이 있길래 시켰단다. 집에서 너무 흔하게 먹는 것이라서 이런 걸 시켜줘도 될래나 걱정이 앞섰지만 더 이상 시킬 것이 없어서였다고. 김치전을 한 입 베어무는 친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우리 딸은 그 친구가 버럭 짜증을 내, 정말 쫄았다는데 예상과 달리 그의 다음 말은 '너무 맛나다'는 것이었고, 그 반응에 한입씩 먹어 본 다른 친구들에게도 따가운 눈총을 받았단다. 어떻게 이렇게 맛난 음식을 그동안 우리는 소개해주지 않고 너만 먹었냐며.
맛난 걸 소개해 주고 욕만 먹었다고 궁얼거리는 딸내미를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불과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이란 킴치 냄새나는 소수민족이었다.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그저 아시아 어디쯤에 붙은 나라. 그나마 관심 좀 있고, 좀 안다는 사람도' 너는 북에서 왔어, 남에서 왔어'를 궁금해하는. 어린 딸내미가 싸 가는 도시락에 놀림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
내 동생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부터 다녔는데, 나름 좋은 '학군'의 학교라서 친구들이 넉넉하게 사는 애들이 많았다. 벤츠를 몰고 다니는 한국애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그러나 그 친구들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나왔다고 했다. 어린 그 친구와 동생을 엄마가 묶어놓고 일하러 갔다거나, 언제 누가 총 들고 들이닥칠지 모르는 삐걱거리는 집에 살았다거나,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7명 가족이 스팸 하나로 한 끼를 때웠다거나 하는 이민 초창기의 고난을 실감 나게 들었단다. 그들이 입고 있는 고가의 의상과 너무 대조적이라 충격적이었다고. 7-80년대에 이민 가신 분들은 전쟁 등의 격변의 시대를 견디느라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어렵게 살다 이민 왔던 터라 영어를 못 해 주로 미국사람도 꺼리는 중노동을 했고, 식사로 주어지는, 한국에선 본 적 없는 빵쪼가리를 점심으로 먹고 집에 오면 속이 너무 느글거려 된장찌개, 김치찌개만 먹었다는데, 환기를 잘 안 했던지 애들 옷에 다 묻어서, 학교에서 그렇게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고 했다. 냄새나는 코리안. 이상한 거 먹는 코리안. 어글리 코리안. 언젠가 미국에 갔다가 동생 친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금방 온 내게도 충격적인 냄새가 났었다. 그 친구는 따로 방이 없어서 부엌과 거실사이에 커튼을 쳐 놓고 지냈다는데, 지금 생각하니 온갖 한국음식 냄새에 간장 끓인 냄새가 정통으로 쩔은 냄새가 났는데, 미국애들은 어땠겠나. 그리고 그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째려보는 백인친구들이 가득한 학교를 꾸역꾸역 다녔어야 했을 그 친구의 공포는 어떤 것이었을까. 집에 와서 토로해도,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는 핀잔은 기본이고 두드려 맞기까지 했단다. 그래서 우리 세대(50대 이상)의 이민 1.5세나 2세 중에는 한국을 저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미국시민이 된 다음, 힘없는 한국이 감히 미국시민인 나한테 어쩔 거야 하면서 한국을 조롱하고 비하하며 그간 당한 설움을 몇 곱절로 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미국에 처음 가서 뉴욕의 한국계 직장에 다닐 때, 나보다 한 살 많은 여직원이 나를 그렇게 미워했었다. 살기 좋아진 한국에서 룰루랄라 대학생활을 즐기고 왔다는 이유로. 물론 그럼에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여 지금의 이민사회를 훌륭하게 만든 사람들이 더 많지만, 그들 대부분이 극심한 정체성위기를 겪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다고, 영어를 백인처럼 하려고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는 한국인의 몸과, 그로 인해 당하는 일상적인 인종차별. '킴치'라는 단어는 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었다.
냄새 하니 한 가지 더 말하자면, 1990년대 중반, 한국의 특급호텔에서 근무했었는데, 당시 자주 출장 오던 VIP고객이 말해줬다. 한국에 착륙해서 비행기 문을 딱 여는 순간 마늘 냄새가 훅 들어온다고. 후레시 갈릭이 아니라 어딘가 쩔은 것 같은 그 갈릭냄새는 참기 힘들다고. 그래서 비행기 내리기 전에 술을 잔뜩 먹고 내리는 사람이 많다고. 어쩐지. 저녁비행기에서 내려 호텔체크인 할 때 취해서 꼬장 부리는 외국인이 많더라.
하지만 당시에도 미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귀국하는 주한미군의 말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다들 김치냄새 때문에 코를 못 들고 다닐 지경이지만 몇 달이 되지 않아 김치 없으면 스테이크를 못 먹는단다. 그는 고향이 비행기 내리는 대도시에서 좀 먼 시골이라 김치는 못싸가고 고추장만 사 갖고 가는데 앞으로 김치 없이 어떻게 사나 큰 걱정이라며 한숨을 푹푹 쉬는데 너무 웃겨서 위로가 잘 나오지 않아 애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나고 또 십 년이 지난 지금, 김치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특이한 식품이라고 들었다. 채소로 만든 피클이면서 동물성이고(젓갈), 두 번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유산균이나 그 외 영양소들이 가득하면서도, 맛있는 음식. 다양한 채소로 김치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샐러드처럼도 먹고(겉절이), 익혀서 먹고, 푹푹 쉰 것도 먹고(묵은지), 매운 것도, 안 매운 것도, 심지어 물김치도 가능한데, 찌개로도 먹고, 국으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고, 볶아서도 먹고, 팬케이크(김치전)로도 만들어 먹는다. 안 되는 것이 뭔가. 김치의 또 다른 강점은 확장성에 있다고 본다. 냄새 때문에 처음 먹어보는 외국인에겐 진입장벽이 좀 있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 저 많은 옵션 중 하나를 먹기 시작하면 김치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요즘 SNS나 뉴스를 보면 김치를 직접 만들어서 먹는 외국인도 많고,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Fermentation(발효)를 배우면서 만들어 봤다는 친구들도 많다. 딸내미 학교 근처에 사는 내 친구 중 하나가 김치를 한통 만들어 갖다 줬다는데, 딸내미의 미국인 룸메이트들이 다 퍼먹고 김치를 사서 부어놓고 또 부어놓고 해서 한 번도 통을 씻지도 못하고 쓰고 있다고. 이제는 '김치 없이 라면을 어떻게 먹냐'는 금발 파란 눈 친구들을 흔히 본다. 김치는 서양의 젊은 세대에게 매일 먹는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김치예찬은 해도 해도 모자란다. 김치가 누군가에게는 낙인이었던 시절이 내 기억에는 생생한데, 그래서 통근버스를 타기 전 아침에는 김치를 먹을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김치보다 더 냄새나는 음식을 먹고 맨해튼을 활보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건강에 좋다며 미국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많이 먹기 때문에. 맨손으로 막 집어서 먹던데. 내 눈으로 보고도 아직도 잘 안 믿긴다.
미안하다. 그동안 한국사람만 맛난 거 먹고살았다. 너네도 이제부터 먹으면 되잖아. 화내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