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ulture의 위상 2
아이 러~~브 킴팝!!!
2007년, 동물원에 필드트립을 간 유치원생 딸내미가 점심시간이 되자 자랑스럽게 도시락통을 꺼내 김밥을 한입 팍 쑤셔넣고 외쳤다. 나는 김밥이 너무 좋아!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쫄깃해 졌다. 이번이 두번째 필드트립(미국학교의 견학, 소풍)인데, 지난번엔 샌드위치를 싸 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김밥을 싸 달란다. 순간 망설여졌다. 학교에 김밥 싸 갔다가 한국인은 똥먹는다고 놀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우리 딸도 그래서 상처받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김밥을 싸서 소풍 가 본 적도 없는데 왜 하필 김밥을 가져간다는 걸까. 우리딸은 김밥을 원래 좋아했다. 그래도 그렇지. 게다가 미국에서 나고자란 미쿡놈인 딸내미의 귀에는 킴팝이라고 들린단다. 나는 분명히 김밥이라고 했는데. 무튼 이번 필드트립에는 내가 자원봉사로 따라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불상사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 되어서 싸 주기로 했다. Yeah!!! 짧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딸내미를 보자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래서 더 정성껏 김밥을 말았다. 우리딸이 놀림받지만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데 눈치없는 딸내미는 점심시간에 자리에 앉자마자 도시락통을 꺼내서 김밥부터 입에 쑤셔넣은 것이다. 마른침이 꼴깍. 발까지 동동 굴러가며 온몸으로 '맛있다'를 표현하는 딸을 본 같은 조의 친구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하나만 주라"
다시한번 마른침이 꼴깍. 어제부터 준비 해 온 말들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긴장했다.
"우와!! 맛있다! 하나만 더 주라!"
금발에 파란눈을 가진 그 친구는 먹성이 좋았는데, 그친구가 맛나다고 얻어먹으니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모여서 나도 하나만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딸내미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거 건강에 굉장히 좋아!"
이건 내가 가르친 말이었다. 유난히 아시아인이 몇 명 없었던 그 학교. 학교 가던 첫날 딸내미의 첫마디가 나도 머리 노랗게 물들여달라는 것이었어서, 머리를 물들인다고 백인이 될 수 없는 우리 딸이 어떻게 하면 한국사람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우리는 건강한 음식 문화가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던 고등학교의 가사시간이 너무나 고마워졌다. 나는 대입시험에 가사 선택이 아니었지만 내신때문에 그 많은 음식과 재료와 칼로리계산을 외웠어야 해서 골치였는데, 역시 배워두니 쓸데가 있구나 하며 그때 배웠던 영양상식을 아이에게도 설명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에 미국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건강식(Healthy Food)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는 하지만 솔직히 건강식이라는 것이 미국엔 딱히 없었던 것이었다. 건강에 좋다며 날 풀을 소스에 버무려 우걱우걱 씹어 먹는 것이 다 였기때문에 '건강식이라면 맛이없다'가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그런데 딸내미가 기쁨이 넘쳐나는 얼굴로 건강식이라며 큰소리로 외치자 주변에 있던 미국 엄마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색깔이 다양한데 이게 다 뭐야?"
"이건 한국의 샌드위치 같은 건데, 밥하고 계란, 당근, 시금치, 무피클, 그리고 소고기를 양념해 넣고 김으로 말아서 먹는 음식이야. 우리는 소풍갈때 이 음식을 싸가는 것이 전통이야."
"뭐??? 시금치??? 당근?? 지금 내 아이가 먹은 것이 정말로 시금치와 당근이라는 거야?"
"어. 잘 먹던데?"
"그럼 나도 한개만 줘봐."
이번에는 엄마들이 난리가 났다. 솔직히 자기들도 시금치, 당근은 싫어하는데,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줄 몰랐단다. 결국은 다들 하나씩 나눠주느라 나도 김밥은 몇 개 먹지도 못했다.
"엄마, ㅇㅇ이가 김밥 좀 싸 달래."
주문도 들어왔다. 유치원다니는 아기들이라 그것이 얼마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인 줄 모르니 순수하게 김밥 먹고싶다고 했단다. 그것이 우리딸의 자존감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바쁜 와중에도 수시로 김밥을 싸서 학교에 날랐다. 어느날 학교에 따라가서 보니, 무슨 구호물자 나눠주는 여왕의 포즈를 한 우리딸이 친구들에게 김밥을 한 알씩 하사하고 있지 뭐겠나. 공손해 진 미국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한국음식에 더 자부심이 붙은 우리딸은 그 이후로 한국음식을 하나씩 학교에 가져가기 시작했다. 어느날은 김을 나눠줬고, 어느날은 뻥튀기를 나눠줬다. 자기 키 만큼 긴 뻥튀기 봉지를 통통한 손에 꼭 쥐고 보무도 당당하게 학교에 들어가던 딸내미의 뒷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반 친구들 모두 좋아하니, 딸내미가 줄을 세워서 하나씩 나눠줬다고.
2년 쯤 후, 전학 온 한국인 친구가 자기도 하고싶었던지 어느 날, 도시락통에 배를 싸 와 먹으며 말했다.
"아이 러브 코리안페어..."
약간 소심했던 그 친구의 눈빛이 흔들리며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니, 너무 안타깝게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마침 그걸 본 내가 옆에서 도와줘서 미국 아이들도 배를 한입씩 먹어보게 되긴 했지만, 내가 없었더라면 그 아이가 한국음식에 어떤 기억을 갖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깨달았다. 그 훌륭한 전통을 가지고도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기죽어서 상대방의 눈치를 보면서 소개하기 때문에 관심을 못 받은 것은 아닌가. 냄새때문에 김치를 처음에 시도하기 힘들다고 해도 바베큐라던가 채소문화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었을텐데. 외국인이 싫어할 것 같으면 그저 숨기려고만 했던 건 아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열등감을 심었나. 인종차별은 우리가 스스로 했기 때문에, 우리문화에 당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에선 그저 냄새나는 음식쯤으로만 치부되었던 것 아니었을까. 잘 설명해 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언젠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그 사이 이미 자신있게 한국음식을 소개하는 당당한 자부심을 가진 젊은세대들이 있어서 한국음식은 세계의 음식이 되었고, SNS에 온갖 한국음식먹고 좋아하는 외국인으로 도배가 된 지도 꽤 되었다. 인종별로 생긴 건 다 달라도 맛을 느끼는 감각은 다들 비슷한가보다.
한국에서 만든 냉동김밥이 트레이더죠(미국 마켙)에서 품절대란이라는 기사를 보니 5살 딸내미의 선견지명이 나보다 나았음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날의 김밥 덕분에 나도 열등감을 다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말하고 싶다.
건강식인데 맛나는 훌륭한 음식 문화를 남겨주신 조삼님들, 땡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