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된장찌개의 기적

K-Culture의 위상 3

by 유목민

어린 시절, 우리 집 식탁에는 된장찌개가 빠지는 날이 없었다. 국을 끓이더라도 된장찌개도 있었던 건 아버지가 매일 꼭 드셨기 때문이었고, 나는 찌개라는 건 된장찌개밖에 없는 줄 알고 자랐다. 나의 이 어처구니없는 허약체질은 아버지를 닮은 것이어서 아버지도 허약하셨고 외식을 싫어하셨다. 그나마 어려서 시골에서 자라셔서 체력이 나보다는 좀 있으셨을 뿐. 그런 아버지가 된장찌개를 그리도 애정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17년 봄, 나는 북경에 있는 모 대학의 중국어코스를 듣고 있었다. 일본에서 대학진학은 실패했으니 중국에서 한번 가 보려고. 한 학기 들었던 홍콩에서의 중국어코스에는 학생보다는 새로운 커리어를 쌓기 위한 초석으로 중국어를 배우는 어른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북경에는 전세계에서 온 야심만만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학생도 많았고. 엄마뻘 되는 나도 같은 학생으로 대해줘서 정말 고맙고 재미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초급반에 유학 오셨다는 나보다 열 살은 많은, 당시 50대 중반의 한국 여사님과 인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시는데 중국에도 분점을 내 볼까 하고 중국어를 배우러 오셨단다. 우와. 나같이 계속 학교를 다닌 사람도 새로 학교에 들어가려면 긴장되고 힘든데, 사업하시던 분이 그 연세에 새로운 걸 배우러 한국을 떠나 중국까지 오시다니. 그 용기가 그저 존경스러운 분이었는데, 문제는 중국어 초급반에는 영어로 수업하는데 그분은 영어를 못하시고, 한국에서도 전혀 중국어는 배우지 않고 오셨다는 거다. 다른 한국 학생들은 중국어 전공이 아니더라도 학원이라도 몇 달 다니다 오던데. 그런데도 어찌나 열심히 배우시던지. 그 건강과 정열이 그저 부러웠었다.


그렇게 석 달쯤 지날 무렵(한 학기에 4개월이다), 어느 날부턴가 그분이 시들시들 기운이 없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말도 천천히 하고. 걷는 것도 기운 없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에너지레벨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나는 원래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에 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하는 것보다 컨디션조절 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왔지만, 외국 유학은 처음이신 그분은 모르셨던 것 같다. 건강한 사람도 기숙사에서 학교밥만 먹고살면 그렇게 되기 일쑤인데, 그곳은 중국 아닌가. 그 저렴한 가격에 만들어 주는 학교밥이 뭐 그렇게 영양가가 많았겠나. 물론 학생이 많으니 요리 종류가 다양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반찬 몇 가지와 이름도 기억 안나는 중국 채소를 열무김치처럼 담근 것 하고 잔뜩 끓여 덜어놓았던 된장찌개와 밥을 싸서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분이 울면서 전화하셨다. 너무 고맙다고. 덥혀서 먹으니 온몸의 세포가 각각 다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고. 지금은 다시 에너지 풀 충전했다고. 고맙다고. 나는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된장찌개를 끓이면 가끔 가져다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 반의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던 30대 한국 언니가 자꾸 말 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 1교시는 못 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 이 언니도 시작됐구나. 그 여사님 된장찌개 가져다 드릴 때 그 언니도 주려고 따로 싸갖고 아침에 기숙사 앞에서 전화를 했다. 아이고, 깜짝이야. 쭈뼛쭈뼛 1층에 내려온 그 언니의 오른쪽 목에 혹부리 할아버지 같은 혹이 달려있지 뭔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 상태였단다. 바로 병원에 가려고 한다길래 정보를 알려주고, 그러면 수업에 오기는 어차피 힘드니 가기 전에 먹고 가라고 도시락을 손에 쥐어 주고는 나는 수업에 왔다. 있다가 전화라도 해 봐야지 하고 있는데 3교시에 그 언니가 수업에 나타났다. 어? 왜? 병원에 안 가고? 자세히 보니 커다랗던 혹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 뭔가. 밥이랑 된장찌개 먹었을 뿐인데!!.


아. 아버지가 매일 된장찌개를 드셨던 이유. 이거구나. 사람은 자신의 몸에 필요한 음식이 막 당긴다고 했다. 누구보다 허약하시던 아버지는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된장찌개로 얻으셨나 보다. 나도 설사를 자주 하는데, 그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장찌개 말고는 별로 없다. 또, 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한국식당이 많지 않던 시절에 유학 갔던 분들 중에 시들시들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7-80년대에는 그 이유가 매일 고기 먹는 미국 놈들에게 체력이 달려서 그렇다고 다들 믿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로 다양한 영양소를 매일 섭취하다가 스테이크, 당근, 감자 말고는 안 먹는 미국에 살다 보니 영양분 공급이 끊어져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치도 못 먹는데 된장찌개는 언감생심이었을 테니.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는 나도 딸내미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된장찌개는 낼 생각 조차 하지 않았었다. 가능한 냄새가 덜 나는 한국음식으로 차려줬을 뿐. 그런데 의외로 미국애들이 된장찌개, 된장국 좋아한다. 주면 잘 먹는다. 맛나다면서. 그러고 보니 1990년대 한국에서 만났던 어느 프랑스인도 된장찌개는 처음에 익숙지 않은 냄새가 나는데 먹다 보면 프랑스치즈 씹는 맛이 난다고 했었다. 음. 단백질을 발효했다는 면에서 같긴 하지.


그 이후로 나는, 가족을 떠나 외지에 나와서 공부하거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누누이 말한다. 뭔가 몸에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 같고, 기운이 없고, 마음이 허하거든 된장찌개 먹으라고. 집에서 끓여 먹기 힘들면 한국식당 가서 사 먹으라고.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이제는 외국사람과 밥 먹을 일이 생기면 당당하게 된장찌개 시킨다. 먹어보라고. 이게 진짜 한국사람들 먹는 거라고. 요즘은 다들 먹어본다. 예전같이 얼굴까지 벌게져 가며 "I am good!"('먹기 싫다'의 완곡한 표현임)을 외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한국음식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완전히 뿌리내린 모양이다.


된장찌개. 도대체 어떤 영양소가 들었길래 그런 기적이 가능한 것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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