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이번에 이것 채택될 수 있도록 한 번 애써 주십시오.
새로 진행하는 건이 잘되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 주세요.
누구 한번 만나게 해 주시죠.
승진, 이동할 수 있도록 말씀 한번 해 주세요.’
뭐 해주세요. 뭐 해주세요.
부탁이 끝이 없다.
부탁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해 달라고 요청한다는 의미인데,
얼마만큼 친해야 부탁할 수 있을까?
아무리 별것 아닌 거라도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부탁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탁이란 걸 쉽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도 부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
아무리 사소한 부탁이라도 그 부탁을 받는 사람에게 너무나 큰 민폐를 끼치는 느낌이다.
또한, 부탁을 했는데 안된다고 하면 어쩌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미안 해 할까? 라는 생각에 아무리 사소한 부탁도 수십, 수백번을 고민고민 하다 어렵게 말을 꺼낸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러한 태도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부탁할 때마다 갖는 미안함과 부담감은 매우 크다 보니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그랬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자주 부탁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것 좀 해 주세요. 저것 좀 해주세요’라며 너무나도 쉽게 말한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알았어요. 확인해 볼께요.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께요’라고 대답하며 해결해주려고 최선을 다해 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부탁을 자주하는 사람은 스스로 노력해 보지도 않고 버릇처럼, 당연한 권리 인 양 거리낌 없이 부탁을 한다.
부탁해 보고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람의 부탁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지나간 말로 부탁한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진지함과 신뢰가 없어졌단 의미 일거다.
너무 성의 없이 툭툭 던지는 아니면 말고식 부탁이나 빈번한 부탁은 부탁 받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부담스럽고 피곤한 것이어서 상호 신뢰를 깨트릴 수도 있다.
부탁하는 사람의 진심을 알 수 없으니 다른 사람과 관련 있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기가 꺼려진다.
무슨 실수를 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많은 노력을 한 후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되는 상식적인 일에 간곡하게 부탁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능력이 되어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나 불가피하게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주는 경우에는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친밀감도 높아질 수 있다.
나에게 부탁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한다면 상대방은‘얼마나 절박하면 내게 부탁할까?’라고 생각해서 더욱 열심히 그 부탁을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런 노력을 지켜본 부탁한 사람은 그 노력에 감사하는 맘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탁을 너무 쉽게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절대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필요하다면 약간의 자존심을 내려두고 진정성 있게 간곡한 마음으로 부탁해보면 어떨까?
이렇게 말은 하지만 오늘도 ‘부탁 한번 해 볼까? 아니야,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거나 부탁했다 안되면 서먹해 질 텐데 그러면 안돼.
그냥 혼자서 될 때까지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며 속만 태우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부탁을 할 때 그 내용도 중요하다.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을 벗어난 부탁은 매우 곤란하다.
비상식적인 부탁은 부탁받는 순간 ‘뭐 이런 부탁을 하지’ 라며 다소 과격한 말투로 거절하곤 한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불신이 생기고 어느 순간 좋지 않는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부탁을 거절할 때도 상대방에게 무안함을 주지 않으면서 부탁을 주고받는 서로에 대한 호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굉장한 기술이 필요하다.
아마 부탁을 받았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인사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어느 날 과거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분이 나를 만나자고 했다.
점심때 식당에서 만나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과거 같은 부서에서 함께 했던 이런 저런 일들을 얘기했다.
그런 얘기는 항상 즐거운 법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를 마치자 그 분은 본래 목적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이번에 학교를 졸업하는데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애써달라’는 것이었다.
아마 서류전형이나 면접 등에서 뭔가 바라는 눈치였는데 아버지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맘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부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넘어서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차라리 서류전형이나 면접을 어떻게 하면 통과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뭐 이런 부탁을 하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물었다.
’무엇을 전공했나요?’
‘금융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를 공부를 했다’고 말한다.
‘그럼, 금융관련 자격증 취득한 건 있나요?’
‘아직 자격증은 취득한 것은 없다’고 한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자식 취직을 부탁하다니 참 배짱 좋고 무대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는 단호히 말했다.
‘금융회사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현 상황에서는 서류전형 통과도 어려울 것입니다.
자제분은 금융 쪽보다 전공분야로 취업 진로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부탁한 사람의 얼굴표정이 바뀌었다.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대답을 한 후 아차 싶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입사 첫 관문인 서류전형에 필요한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아 쉽지 않은 것 같지만,
지금 부터라도 이런이런 준비를 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비록 금융관련 전공은 아니지만 충분히 은행에 들어올 수 있다.
우리회사 잘 나가는 분들 중 금융과 관련 없는 분야를 전공을 하신 분도 많다.
자제분이 금융업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부터라도 차근차근 준비하여 도전하면 좋은 결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뒤 늦게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탁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것은 부탁을 들어주는 것만큼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
운이 좋아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기분 좋게 승낙할 수 있겠지만 그런 운이 얼마나 따르겠는가?
대부분의 부탁은 들어주기 힘든 것이라 불가피하게 거절하거나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한다.
거절과 안되는 이유를 매끄럽게 설명하는 것은 상호 관계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단호한 말투 보다 들어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함께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거절명분)을 찾아 설명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관계유지에 좋다.
절박한 마음으로 부탁을 하는데 건승으로 대하거나 상대방의 힘든 사정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 정말 체질에 맞지 않고 어려운 일이 부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문제로 부탁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게 부탁한 건을 해결해 주기위해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떤 경우 든 될 수 있으면 부탁을 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혼자서 세상일을 다 할 수 없는 노릇이기에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그런 일이 생기는 그 순간 부터 고민에 빠진다.
‘부탁을 꼭 해야 하나, ‘아니지 스스로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보고 안되면 그냥 포기할까’ 라는 고민부터 ‘언제 부탁하면 좋을까? 무슨 말을 꺼내면서 부탁하나? 자리 앉자 말자 대놓고 부탁할까?
아니지, 일상적인 대화하며 분위기 무르익을 때 말할까?’
참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간다.
‘에라 모르겠다’라고 생각하며 그냥 말하면 좋을 것 같은데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웬만하면 부탁을 하지 않는 나지만 급한 맘에 어려운 부탁을 한 기억이 있다.
아들이 군에 가기전에 치아 임플란트를 위해 기초 공사를 하였다.
아들은 태어 날 때부터 어금니를 포함하여 몇 개의 치아가 없었는데 임플란트를 하기 위한 기초가 되는 뼈를 만들어 오랜 시간 동안 튼튼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때문에 군대 가기전에 치조골을 만드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훈련소를 마치고 이등병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토요일이라 지인들과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아들로 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임플란트 준비를 하고 있는 부분의 주변에 있는 이가 흔들려 병원에 갈려고 외출신청을 하였는데 중대에서 허락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를 고정시켜주는 브릿지에 문제가 생겨 매우 불편 할 뿐 아니라 이가 고정되지 않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라 했다.
쉬는 날 운동하다 말고 군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였다.
그때 지점장때 만나 인연을 이어오던 군 장성 한 분이 생각났다.
가끔 식사 정도 하며 인연을 이어오던 분이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부탁한 적이 없는 사이였지만 급한마음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하며 한번 알아봐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그날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집에 가니 아내가 말한다.
아들이 무사히 치과에 다녀왔고 지금은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고 말했다.
그 당시 내겐 너무나 걱정되고 급박한 일이었는데 나의 부탁을 흔쾌히 해결해 준 그 분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 후 지금까지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 말한다.
한자로 사람인(人)은 서로 기대어 산다는 의미라고…
서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부탁도 하고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은 참 쉽지만 쉽사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부탁은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부탁을 하기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해야겠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는 능력밖의 일이라면 상식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타인의 능력을 활용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부탁을 하거나 부탁을 받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업무적으로 든 업무외적으로 든 각자가 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이 달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불가피하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때 마음 내키는 대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순식간에 인성이 별로인 직원으로 명성을 날리게 될 것이고 그 이후부터 회사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한 번쯤 나는 어떻게 해왔는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 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