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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May 13. 2024

부모님, 잠깐 방을 나가주시죠

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3년 차


이젠 "어린이"라고 부르기 어색하죠. 13살 정도가 됐으면 당당히 "청소년"이란 명함을 달 준비가 되었다고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청소년"이 정확히 뭘까요?


좀 조사해 보니, 기준이 다 제각각입니다. 통상적으로 영미권에서는 청소년을 "Teenager"라고 부르는데, 그래서 나이 기준을 흔히 thirteen부터 nineteen까지로 생각합니다. 제가 자주 보는 소아과 교과서에선 범위가 훨씬 더 넓은데요, 10-21세를 청소년기로 보고, 청소년기를 3가지 단계로 나누어 봅니다 (10-13세는 초기 청소년기, 14세-17세는 중기 청소년기, 18세-21세는 후기 청소년기). 그래서 제가 있는 병원의 소아과에서는 21살까지 환자를 보다가, 그다음 해부터 내과나 가정의학과로 전과를 하지요. 


한국은 어떨까요? 청소년 기본법에는 청소년을 9세 이상, 24세 이하로 정의하는데 범위가 상당히 넓죠. 9세부터 규율을 따르고 수련생활을 할 수 있어서 그렇고, 24세에 신체적 성장이 완전히 끝나고, 국제적으로 국회위원이 될 수 있는 상한선 나이라서 그렇다고 하네요. [1,2]. 의학계에서는 10세에서 19세를 청소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3].


미국 소아과에서 그동안 보던 아이가 청소년 나이가 되면, 새로운 대접을 해주기 시작합니다. 진료 도중 부모님께 양해를 구해 진료실 밖으로 잠깐 나가 계시라고 부탁을 하고, 환자와 1대 1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인데요. 환자가 부모와 같이 나누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담을 진행하기 전에 모든 내용은 비밀이 보장된다고 말을 해주죠. 이때 진행하는 상담을 "HEADSS exam"이라고 하는데요, 청소년 환자에게 꼭 물어봐야 하는 내용의 첫 자를 따온 것입니다 [4]. 


HOME (집): 어디서 사는지, 얼마나 살았는지, 누가 같이 사는지, 구성원과 마찰은 없는지, 집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물어봅니다. 거주지가 불안정하면 적응장애가 생길 수가 있고,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위험하다고 느끼면 아동학대 및 방치를 의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EDUCATION (교육): 몇 학년인지, 최근에 전학을 했는지, 특수교육을 받고 있는지, 성적은 어떤지, 어떤 수업을 좋아하는지, 학교에선 안전하다고 느끼는지 물어봅니다. 학교생활이 원활하지 않다면 학습장애나 행동장애, 우울증 등 여러 질환을 의심해야 하고, 무엇보다 따돌림의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ACTIVITY (활동):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운동은 하는지 물어봅니다. 친구가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청소년기에 친구가 없다면 많이 힘들어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즐겨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하고 있지 않다면 우울증의 징후일 수도 있고요. 

DRUG (마약): 담배나 술, 마리화나, 펜타닐(아편제), 메스암페타민(코카인 계) 등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미국 청소년의 30%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리화나를 1번 이상 사용해 봤다고 하니, 다른 마약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5].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주변에 마약을 사용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면서 보통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만약 마약을 정맥주사로 투약하고 있다면, C형 간염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검사를 해야 합니다.

SUICIDALITY (자살): 자신을 해할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이죠. 자살은 15세-19세 사이 청소년에서 사망원인 1위이고, 미국 고등학생 10명 중 2명이 자살할 생각을, 그중 1명은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해봤다고 합니다 [5]. 만약 자살성 사고가 있다고 하면 바로 응급실로 보내서 정신과 분석을 받게 합니다.

SEX (성): 성 정체성(Gender),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관계 경험, 성폭력 경험에 대해 물어봅니다. 우선 성폭력의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다음 성병에 대해 검사를 해야 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여성의 경우 현재 성관계를 가지고 있으면 클라미디아와 임질 검사를 하는데, 많은 경우 증상이 없을 수 있기 때문에 매년 검사를 합니다.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는 남성 (Men who have sex with men, MSM)은 성병 위험이 더 높아 여성이 받는 클라미디아와 임질 검사에 추가로 HIV와 매독 검사도 매년 진행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모든 청소년들에게 18세가 되기 전 HIV 검사를 한 번은 권합니다.


제가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에는 환자가 "teenager"인 13세가 되면 HEADSS exam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소아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그보다 어린 갓 10살이 된 환자도 자살성 사고로 입원하는 경우를 보면서, HEADSS exam을 시작하는 나이를 좀 더 앞당기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이런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픈데요, 정기검진을 통해 자해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해 예방하는 것이 소아과 의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성병, 마약, 자살 같은 민감한 내용을 부모와 나눌 수 있는지 논란이 있기 때문에 미국 소아과청소년과 의사는 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미성년자의 치료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지 미국의 주마다 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우선 청소년이 성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면 미국 50개 주 중 모든 주는 부모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피임은 조금 더 애매해서, 청소년이 피임을 원하면 50개 주 중 25개 주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참고로 제가 있는 캘리포니아는 이런 문제에 있어 청소년의 손을 들어주는 편이라, 12세 이상 청소년은 피임과 임신, 낙태, 성병 등에 대한 진단과 치료에 대해 청소년의 허락 없이 부모에게 알리면 안 됩니다. 유일한 예외는 정신질환 치료가 필요할 때 부모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6]


한국은 어떨까요? 제가 의대에서 공부할 때에는 청소년의 성병 치료에 대해 부모에게 무조건 동의를 구해야 해서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청소년에게는 보다 자율성이 제한되는 한국의 문화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그 외 성병에 대한 연간 검진을 영업소 종업원, 유흥접객원, 안마시술소의 종업원 대상으로만 진행하고 있어, 단지 성생활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위한 정기검진은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7]. 10년 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7.5%가 성병에 한 번이라도 걸린 적이 있다고 보고했는데, 성병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감염률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8] 한국도 갈수록 청소년의 성관계 경험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그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성병에 대해 부담 없이 상담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성병을 조기 발견 및 치료할 수 있는 정기적인 검진이 이루어져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중1, 고1에 하는 학생검진의 문진은 신체적 질환에 대해서만 치중해 있는데요, 아래의 문진표를 보시죠. 소아에선 거의 없지만 청소년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정신건강(우울감, 자살성 사고 등)이나 성관계, 안전, 물질 남용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극적인 정신적, 사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인만큼 새로운 자아와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진표를 보면 청소년의 그런 특이성을 감안하지 않았다고 보이네요. 한국 청소년을 단순히 나이가 많은 어린이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인격으로 인정하여 보다 포괄적으로 돌봄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전북교육포털


image credits: Pixaby - Willgard


1. https://www.law.go.kr/법령/청소년기본법]

2. https://www.youtube.com/watch?v=YttCngctJU4 

3. Hong CH. Current health issues in Korean adolescents. Korean journal of pediatrics. 2011 Oct;54(10):395.

4. https://journalofethics.ama-assn.org/article/headss-review-systems-adolescents/2005-03 

5. https://www.cdc.gov/healthyyouth/data/yrbs/index.htm 

6. http://www.publichealth.lacounty.gov/dhsp/Providers/toolkit2.pdf 

7. https://law.go.kr/LSW/lsInfoP.do?lsId=007819&ancYnChk=0#AJAX 

8. Lee SY, Lee HJ, Kim TK, Lee SG, Park EC. Sexually transmitted infections and first sexual intercourse age in adolescents: the nationwide retrospective cross-sectional study. The journal of sexual medicine. 2015 Dec;12(12):23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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