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5년 차
매 분기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갱신하고 있는 한국입니다. 2023년 4분기 출산율은 기어코 0.7명대를 뚫어 0.65명을 기록했죠 [1]. 국가의 미래도 걱정이 되고,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소아과를 택한 저로서도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어떻게 하면 임신과 출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 출산율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인데요. 다만 이 와중에도 최대한 피하고 싶은 임신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기 임신입니다.
한국에서 체감은 잘 안 되겠지만, 사실 청소년기 임신은 국제적으로 심각한 보건문제입니다. 여자 청소년 100명 중 6.5명은 청소년기에 임신을 경험한다고 하고, 특히 아프리카는 10%의 청소년이 임신을 경험한다고 하죠 [2]. 그에 비해 미국은 100명 중 1.7명이 임신을 한다고 하니 낮은 편이지만, 이 수치는 서구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3]. 2016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100명 당 0.3명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나,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고, 혼외 임신에 대한 낙인이 엄청난 우리나라 문화를 감안하면 보고되지 않은 임신도 꽤나 많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4].
청소년기 임신이 산모와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도 있겠지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
- 청소년기 여성은 비교적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하거나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가질 경우가 많아 청소년기 임신의 90%는 계획되지 않은 임신
- 임신 중 고혈압 및 자간증(임신 중 경련을 하는 응급상황)
- 신생아의 사망률이나, 미숙아 혹은 저체중일 위험도 증가
- 산모의 학업중단, 미숙한 육아법, 가정 내 불화 등 불우한 육아환경
특히 미국에서 청소년기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 중 33%는 학업을 조기중단하고, 25%는 본인이 청소년기 임신을 경험하게 되며, 남자의 경우 16%는 감옥을 간다고 합니다. 자칫 청소년기 임신이 대대로 빠져나오기 어려운 악순환의 시작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미국 소아과 건강검진 도중 여자 환자가 성관계를 시작했다고 하면 피임에 대해 소개하고 질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전 글에 환자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부모를 잠시 밖으로 모셔드리고 환자와 일대일로 대화를 하면서 성관계를 비롯한 민감한 주제에 대해 질문을 한다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때 환자에게 성관계를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만약 한 적이 있다고 하면 피임법은 무엇을 사용하고 있는지, 다양한 피임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며 가장 효과적이면서 환자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피임방법으로 안내하죠.
피임도구에도 급이 있습니다.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누어지는데요 [3].
- 1급 (1년에 여성 100명 당 임신 1건 미만): 자궁내장치(예: 미레나), 피하이식장치(예: 임플라논)
- 2급(1년에 여성 100명 당 임신 4-7건 사이): 경구피임약, 피임주사(예: 사야나)
- 3급 (1년에 여성 100명 당 임신 13건 초과): 콘돔
피임이라 하면 흔히 콘돔이나 경구피임약을 떠올리실 텐데요, 생각보다 실패율이 높은 피임방법입니다. 그래서 요즘 미국에선 더 효과적인 피임도구, 즉 자궁내장치나 피하이식장치의 사용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Nexplanon이라고 불리는 피하이식장치는 제가 지금 있는 로스엔젤레스 병원에서도 많이 추천하는 피임도구인데, 한국에선 아직 인식이 낮은 것 같아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려 합니다.
위 그림과 같이 도구를 사용해 위팔에 성냥개비 정도 길이의 물렁한 막대를 피부 아래에 삽입하는 것인데요. 국소마취를 한 후 임플란트 삽입 자체는 1분이 채 안 걸리는 매우 빠르고 간단한 시술입니다. 자궁 내 장치 삽입은 질과 경부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해하는 청소년도 많고, 특히 어른에 비해 청소년에서 삽입 후 잘 빠지기도 하기 때문에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자궁 내 장치보다는 피하이식장치를 추천하죠. 삽입을 한 이후에는 99.9%의 확률로 임신이 일어나지 않고, 적어도 3년 동안은 교체를 하지 않아도 되며, 임신을 원할 때 장치를 제거하면 빠르게는 1주 이후에도 다시 임신이 가능합니다. 다만 부작용으로는 월경이 불규칙해진다는 것인데, 월경을 너무 자주 할 수도 있고, 아예 안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삽입을 받은 여성 10명 중 1명은 불규칙한 월경 때문에 장치를 제거한다고 하네요.
미국 여성 청소년 사이에서는 이 피하이식장치의 사용률이 많이 증가해 2002년에만 해도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9년에는 15-19세 여성 청소년의 13%가 피하이식장치를 사용해 봤다고 합니다 [4]. 그 이외에 6%는 자궁내장 치를, 18%는 피임주사(3개월마다 맞는 주사입니다)를 맞아본 적이 있는 등 콘돔과 경구피임제 이외의 다양한 피임도구를 사용해 본 것이죠. 그에 비해 한국 여성 청소년은 애초에 10명 중 1명만 성관계를 가져본 경험이 있고, 이 중에서도 대부분은 콘돔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5]. 한국 성인도 크게 다르지 않아 자궁내장 치를 사용하는 여성 성인은 2.2%, 주사피임제나 피하이식 호르몬제 사용도는 1.0%이라고 합니다 [6].
이처럼 한국은 청소년기에 성관계 경험률이 낮다는 것은 한국 청소년 건강에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만큼 청소년기 임신과 성매개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피임에 대한 필요성이나 인식이 낮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언젠가는 성인이 되고 성관계를 가지게 될 텐데, 청소년이었을 때 피임에 대한 교육을 미리 받으면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하고, 더욱 자신의 성 건강에 대해 자신감과 주도권을 가지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image credits: Pixabay - milli_lu
references:
1.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7901197
2.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adolescent-pregnancy
3.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2e.
https://www.kdca.go.kr/yhs/home.jsp?id=m03_01
4. https://www.cdc.gov/nchs/data/nhsr/nhsr196.pdf
5. https://www.kdca.go.kr/yhs/home.jsp?id=m03_01
6. 박은자 외. (2022). 한국 여성의 생애주기별 성·생식 건강조사. p. 76. <표 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