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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May 20. 2024

운동 함부로 시키지 않는 미국 고등학교

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4년 차

흔히 미국을 스포츠에 미친 나라라고 하죠. 프로스포츠가 1년 내내 바톤터치를 하면서 NBA(농구)-MLB(야구)-NFL(미식축구) 순서로 끊임없이 이어져서 항상 볼 것이 있고, 특히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을 하는 날이면 공휴일인 마냥 모두가 집이나 술집에서 모여 경기를 함께 봅니다. 이런 스포츠에 대한 열기는 대학에서도 찾을 수 있어 웬만한 대학은 자신을 대표하는 Varsity team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병원이 연계된 대학 USC의 Varsity Team인 Trojans는 UCLA의 Bruins와 유명한 라이벌 사이라 경기를 할때 엄청난 인파를 끌어모으기도 합니다. 마치 한국의 연고전과 비슷한 분위기인데, 미국은 로스엔젤레스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나 이런 라이벌 관계가 수없이 많습니다.

2008년 Trojans와 Bruins의 미식축구 경기입니다. 출처: Wikipedia Commons - Bobak Ha'Eri

미국의 많은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대학 스포츠의 문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이 보셨을 High School Musical이란 영화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고등학교 농구팀, 여자 주인공이 육상팀에서 뛰는 것처럼 미국 고등학교에서는 소위 "잘 나가는" 학생들이 운동을 하죠. 실제로 미국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학생들과 학부모도 운동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미국에서 소아과 전공의로 일하면서 이런 문화가 체감이 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운동 전 신체검진(Preparticipation Physical Evaluation, PPE)을 받으러 소아과 외래로 찾아오기 때문이죠. 미국은 보통 14살에 고등학교를 입학하다 보니, 이 나이대부터 슬슬 이런 검진을 받으러 오는 환자들을 보게 됩니다.


미국의 지역과 학교마다 편차가 있지만, 많은 경우 적어도 2년마다 운동 팀에 참여하는 고등학생이 의료인(의사 혹은 간호사)에게 운동 전 신체검진을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검진은 꼭 소아과 의사에게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동안 주치의였던 소아과 의사가 학생의 병력을 잘 파악하고 있기도 하고, 보험 차원에서도 덜 번거롭기 때문에 많은 경우 소아과에서 신체검진을 받습니다. 다만 고등학생이 되면 학교에서 바쁘기도 하고, 대체적으로 건강에 큰 문제가 없어 소아과를 잘 찾지 않아 이렇게 신체검진을 받는게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을텐데요, 왜 굳이 이런 검진이 필요한걸까요?  


미국소아과학회에 따르면 검진의 주 목적은

1. 운동을 하면 치명적일 수 있는 기저질환을 발견하거나

2. 부상에 취약하게 만드는 기저질환을 발견하는 것,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 할 수 있습니다 [1].


1. 치명적인 기저질환

운동을 하다가 젊은 선수가 급사하는 있는 경우는 대부분 심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요, 비후성 심근증이라고 불리는 기저질환을 발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꽤나 흔한 유전성 질환으로 5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구요 [2]. 심실이 두꺼워져 피가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나가는데 저항을 받게 됩니다. 많은 경우 환자들이 증상이 없지만 운동을 할때 갑자기 심장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만약 가족이나 친척이 50세 이전에 급사한 경우가 있다면 비후성 심근증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병력청취를 하며 이를 꼭 파악해야 되고, 청진을 통해 심잡음을 발견한다면 심전도 및 심초음파로 추가 분석을 해야합니다.


그 이외 운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심장질환은 마르판증후군입니다. 마르판증후군은 쉽게 설명하면 몸의 조직이 전반적으로 느슨해지는 병이라 큰 키와, 긴 팔다리 및 손가락, 새가슴, 느슨한 관절이 특징입니다. 의사가 한눈에 봤을때 비교적 쉽게 의심해 볼 수 있는 질환이죠. 10,000명 중 1명 꼴로 발생해 비후성 심근증 보다는 보기 어렵고, 저도 실제로 의대생활과 전공의 생활을 통틀어 딱 한번밖에 본적이 없네요. 마르판증후군 환자가 운동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대동맥도 느슨하기 때문에 운동하다 복압이 올라가면 대동맥이 찢어지거나 터져 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환자들에게 가벼운 유산소 운동은 괜찮지만, 강도 높은 운동이나 충돌이 있는 운동, 그리고 특히 복압을 올리는 역도는 피해야 합니다.

마르판증후군 환자는 손가락이 워낙 길기 때문에 손을 팔목에 감으면 엄지와 새끼손가락이 닿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 Staufenbiel I.


마지막으로 고혈압이 있는 환자도 검진을 통해 발견을 해야 합니다. 고혈압이 심한데 역도같이 힘을 많이 쓰는 운동을 하면 뇌압이 올라가 뇌출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고등학생이 운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혈압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 아니긴 합니다.


2. 부상에 취약하게 만드는 기저질환

뼈나 관절, 인대가 부러질 수 있는 상황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많이 하는 여학생에서 흔히 발견되는 질환으로 female athelete triad가 있는데요, 한국에선 인식이 워낙 낮아 정식 용어가 없지만 대충 번역하면 "여자 선수 3대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과도한 운동으로 에너지 소모가 큰데다가 육상이나 체조같이 몸무게 조절을 해야돼서 먹는것도 충분하지 않으면 몸의 에너지가 부족하게 됩니다. 그 결과 몸이 굶주림 상태로 전환해 호르몬 분비가 정상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특히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들며 뼈가 약해져 골절이 쉽게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여학생의 생리가 멈추었다면 female athelete triad를 강하게 의심해봐야 하죠. 몇년 전 한국 육상계의 미래로 주목받던 양예빈 선수도 발의 피로골절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양예빈 선수도 female athlete triad를 겪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몸무게가 표준의 85%보다 낮으면 운동 중단을 권장하고, 다시 몸무게를 증량하기 위한 영양 상담을 제공합니다. 많은 경우 섭식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정신과 의뢰도 진행하게 되죠[2]. 최근에는 female athelete triad가 남성에서도 보인다고 해 relative energy defiency in sports (RED-S)로 개념이 확장됐습니다.


그외에 환자에 따라 부상의 위험이 높은 부위를 파악합니다. 이전에 부상이 생긴 곳에 다시 부상이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쳤던 곳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런 곳 위주로 눌러보고 당겨보며 이상소견이 있는지 신체진찰을 합니다. 무릎 관절이 충분히 튼튼한지 확인하는 시범운동도 진행하죠. 한발로 하는 스쿼트 동작과 drop jump test(박스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바로 위로 점프 하는 검사)라는 동작도 해보는데, 이때 무릎이 너무 안쪽으로 말리면 전방십자인대나 무릎 앞쪽에 부상이 생길 위험이 높습니다 [3,4].


이처럼 미국 소아과에선 운동 전 신체검진이 널리 진행되고 있지만, 다소 힘빠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운동 전 신체검진이 실제로 운동하는 학생의 부상을 줄여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논란이 있는 것이죠 [5]. 그동안 많은 경우 검진이 주치의가 있는 소아과에서 1대1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체육관 같은 곳에서 단체로 진행됀 것도 있고, 지금까지 소아과 수련과정에서 운동 전 신체검사에 대한 교육도 미흡해 많은 의사들이 검진에 확인해야 할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에 이런 내용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되어 주치의에게 꼼꼼히 검진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면 검진의 효용성을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image credit: Pixabay - 7721622


references:

1. https://publications.aap.org/pediatriccare/book/348/chapter/5760275/Sports-Preparticipation-Physical-Evaluation?autologincheck=redirected 

2.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2e.

3. Bailey R, Selfe J, Richards J. The single leg squat test in the assessment of musculoskeletal function: a review. Physiotherapy practice and research. 2011 Jan 1;32(2):18-23.

4. Renstrom P, Ljungqvist A, Arendt E, Beynnon B, Fukubayashi T, Garrett W, Georgoulis T, Hewett TE, Johnson R, Krosshaug T, Mandelbaum B. Non-contact ACL injuries in female athletes: an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current concepts statement.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 2008 Jun 1;42(6):394-412.

5.LaBotz M, Bernhardt DT. Preparticipation physical examination: Is it time to stop doing the sports physical?. 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 2017 Feb 1;51(3):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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