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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May 06. 2024

인생이 슬퍼지는 나이

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2년 차


아이가 12살이 되면 슬슬 "청소년"이란 단어가 어울리게 됩니다. 청소년기의 정의와 소아과에서 청소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음 글에 자세하게 다뤄보려고 하는데요. 청소년기에서 가장 흔하면서 심각한 질환이 우울증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먼저 이 글에서 다뤄보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는 청소년을 우울증에 취약하게 합니다. 청소년기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신체적 변화가 생기면서 신체상(body image)이 생기는 것인데요 , 여성 청소년은 남자보다 본인 신체상에 부정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본인의 신체부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본인이 너무 살쪘다고 생각하는 왜곡된 신체상을 가지게 되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죠. 또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고, 성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생기면서 상대방에게 다가가게 되는데요, 이런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이 생기면 우울감이 생기기 쉽습니다. 미국에선 청소년 중 13%가 적어도 한 번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1]. 


우울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학업 등 삶의 질에 영향을 주는 것도 있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이유는 자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의 60%는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고, 30%는 실제로 자살 시도를 한다고 합니다 [1]. 2015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15-19세의 자살 건수가 2117건이라고 하는데요, 매일 5명의 청소년이 안타깝게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끊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2023년에 19세 이하 자살건수가 373건이라고 합니다 [2]. 미국의 인구가 한국의 약 6배가 되니 미국의 청소년 자살 건수도 6배 많은 것인데요, 저출산으로 인해 한국의 인구대비 청소년 비율이 매우 낮은 것을 감안하면 청소년 자살률은 한국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국 소아응급실에서 처음 근무를 할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갓 청소년이 된 12살, 13살 환자들이 목숨을 끊고 싶다고 해 응급실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소아응급실 총 병상수의 반을 채울 정도로 끊임없이 들어오죠. 야간 당직을 서면, 이미 꽉 차있는 정신병동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환자들과 응급실에서 같이 밤을 새곤 했습니다. 


이처럼 우울증과 자살이 흔하다 보니 미국의 소아청소년 건강검진에서는 12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매년 우울증에 대한 선별검사를 진행합니다 [3]. 가장 널리 쓰이는 선별검사는 PHQ-9 (Patient Health Questionnaire-9)이라는 9개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지인데요. 총 27점 만점인데, 5-9점 사이는 경증 우울증, 10-19점 사이는 중등증 우울증, 20점 이상은 중증 우울증을 의미합니다. 다만 PHQ-9는 선별검사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진단을 할 수 없습니다. 우울증의 증상은 조울증이나 물질남용, 자폐증, 불안장애, ADHD 같은 정신질환이나, 갑상선저하증과 영양결핍 같은 신체질환, 혹은 아동학대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다 감별한 다음 우울증의 진단을 내리게 됩니다. 


한글판 PHQ-9입니다. 출처: 일차 의료용 근거기반 우울증 권고 요약본. 대한의학회.




이전 글에서 소아 ADHD에 대해 설명할 때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정신과가 아닌 소아과에서 ADHD에 대한 1차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했는데요. 우울증은 어떨까요?


https://brunch.co.kr/@91bdc393a9674fb/17


우울증에 대해서는 각 소아과마다 진료방식에 대한 편차가 있는데요, 만약 의뢰할 수 있는 정신과가 있다면 정신과로 환자를 보내 거기서 진단과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많은 소아과 의사들이 ADHD 만큼 우울증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 같은데요. 다만 현재 미국에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소아 정신질환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 환자들이 소아정신과로 몰리고 있고, 그래서 소아정신과 진료를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합니다. 진료를 받기 위해 1년 이상을 대기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그래서 미국소아과학회 차원에서도 가능하면 소아과 의사가 우울증에 대한 추가 교육을 받고 일차적 진단과 치료를 시작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4].


제가 있는 병원의 소아과에서는 단계적으로 우울증을 관리합니다.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증 우울증에 경우에는,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은 팸플릿이나 웹사이트를 제공하고 추적관찰을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몇 주 후에도 증상에 호전이 없다면 저희 병원의 상담사나 환자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상담사에게 심리상담의 일종인 지지치료(supportive psychotherapy)를 받아볼 것을 권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 생각을 심어주고, 우울감을 해소하는 활동, 문제해결능력, 소통방법에 대해 지도를 해주는 것이죠. 이렇게 지지치료를 4-8주 동안 받아도 큰 변화가 없으면 소아정신과로 의뢰를 합니다.



사춘기에 막 들어선 청소년은 아직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변화에 대한 인지가 부족할 수 있어 본인이 우울증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부모 없이는 병원을 찾아가기 어려운 신분인데, 하필 부모에게 숨기는 게 많을 시기라 우울감을 느껴도 병원 방문까지 이어지기 쉽지 않죠. 그래서 우울감이 있는 청소년이 알아서 병원을 찾아올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소아과나 학교에서 PHQ-9 같은 간단한 설문지를 통해 주기적인 우울증 선별검사를 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이 살면서 처음 느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는 우울감을 구체적인 문구로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고, 본인 입으로 표현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는 우울감을 간접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image credit: Pixabay - Irasonja


references:

1.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2e.

2.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B34E01&vw_cd=MT_ZTITLE&list_id=&scrId=&seqNo=&lang_mode=ko&obj_var_id=&itm_id=&conn_path=E1&docId=03774&markType=S&itmNm=전국

3. Zuckerbrot RA, Cheung A, Jensen PS, Stein RE, Laraque D, Levitt A, Birmaher B, Campo J, Clarke G, Emslie G, Kaufman M. Guidelines for adolescent depression in primary care (GLAD-PC): Part I. Practice preparation, identification, assessment, and initial management. Pediatrics. 2018 Mar 1;141(3).

4. Lester TR, Herrmann JE, Bannett Y, Gardner RM, Feldman HM, Huffman LC. Anxiety and depression treatment in primary care pediatrics. Pediatrics. 2023 May 1;151(5):e2022058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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