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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인의 Apr 22. 2024

비만인 아이, 살빼는 주사 맞아도 될까

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10년 차

살 빼는 약이 현실이 된 2024년입니다. 이미 2017년에 한국에서 삭센다라는 약이 승인되면서 다이어트 약 열풍을 이끌었죠. 다만 삭센다는 매일 맞아야 하는 주사제라서 불편함이 있었는데요, 그러다 2021년에 일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위고비가 출시되면서 다시 한번 비만약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습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많은 유명인들도 위고비를 사용한다고 알려지면서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다만 의학적으로 살을 뺄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약을 구하려 하는 게 우려스러운 부분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비만을 벗어날 수 없었던 환자들에게는 비만치료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만은 의학적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당뇨병으로 이어지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간경화와 간암을 일으키는 비알코올성 지방간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특히 소아비만은 위와 같은 합병증이 훨씬 더 일찍 일어날 뿐 아니라, 어른이 되기 전에 시작하는 합병증도 있습니다. 제가 제일 흔히 보는 것 순서대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1. 우울증 - 청소년 시기는 특히 또래와 어울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인데, 비만일 경우 따돌림을 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자존감도 낮아집니다.  

2. 수면무호흡증 - 원래 비만은 상기도 공기 이동의 저항을 높여 무호흡증을 악화시키지만, 많은 어린이들은 편도선까지 크기 때문에 더욱 수면무호흡증이 생기기 쉽습니다. 수면무호흡증은 단순히 코골이가 시끄러운 게 아니라 몸에 염증을 일으키고 학업에 영향을 주며, 피로로 인한 우울감이나 과다활동을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3. 대퇴골 골단 분리증 (Slipped Capital Femoral Epiphysis, SCFE)이 생길 수 있습니다. 10-16세 사이에서 제일 흔한 질환인데, 대퇴골 상단 몸의 무게에 밀려 어긋나는 병으로, 발견될 즉시 뼈의 괴사를 막기 위해 수술이 필요한 중병입니다.  


비만은 옛날부터 워낙 큰 문제였기 때문에, 미국 소아과 건강검진에서도 중요하게 다루고 치료하는 질환이었습니다. 특히 한국보다 미국에 소아비만이 훨씬 많죠. 한국의 소아청소년의 비만률은 10%, 미국은 25%가 된다고 합니다 [1,2]


왜 이렇게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는 비만이 많을까요? 미국은 기름진 음식과 설탕함유량이 높은 음료를 많이 섭취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런 식습관이 아마 제일 큰 이유이겠지만, 미국에서 살아보니 아이들이 살이 찔 수밖에 없는 추가적 환경적 요소가 많습니다. 미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돌아다닐 수 없을 만큼 모든 인프라가 자동차에 맞추어져 있는데,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부족합니다. 학교까지 걸어가기엔 거리도 너무 멀고, 제대로 된 인도도 없는 경우가 많고요. 워낙 거리에 노숙자들과 총기소지자들이 많다 보니, 얼마 있지도 않은 공원에서 아이들이 놀기도 어렵습니다.


모든 나이대의 건강검진에서 몸무게를 재기 때문에 모든 검진에서 비만에 대한 관리는 이루어지지만, 비만인 아이가 10살이 되면 혈액검사를 하는 등 더욱 집중적으로 관리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식사와 간식, 신체활동, 스크린 타임에 대해서 물어보고요, 가족구성원 중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신체진찰에서도 비만의 합병증이 의심되는 소견을 유심히 살펴보지요 (고혈압, 목 주변 어두운 피부, 간 부위 통증 등). 비만은 생활습관 외 갑상선저하증이나 특정 약물복용, 다낭성난소증후군, 희귀 유전병 등 때문에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감별해야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혈액검사도 진행하는데, 지질검사(lipid panel)와 당화혈색소(glycosylated hemoglobin, 혹은 HbA1c), 간기능검사(liver function test, 혹은 LFT)를 포함한 총 3가지 검사입니다. 고지혈증과 당뇨, 지방간이 있는지 보기 위함이죠. 


비만의 1차 치료는 생활습관 교정입니다. 당도 높은 음료 먹지 않기, 운동하기, 스크린타임 줄이기, 주기적으로 몸무게 측정하기 등입니다. 사실 다 아는 내용인데, 아이가 이런 수칙들을 지키게 하는 게 쉽지 않죠. 아이가 비만인 경우 부모도 비만이거나 과체중일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에는 부모가 스스로 위의 수칙들을 지켜 가족이 다 함께 비만을 탈출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다음 소아과 방문에서 이런 1차 치료가 효과가 없어 몸무게가 더 늘어났다면, 이번에는 영양사에게 의뢰를 합니다. 조금 더 체계적으로 아이가 하루종일 무엇을 먹고 있는지 분석하고 꼼꼼하게 식단을 짜주는 일이지요. 예를 들면 하루에 1시간 운동, 한 끼중 과일/채소 50% 이상 섭취, 주스 같은 설탕 든 음료 제한 (물로 희석 가능), 아침 챙겨 먹기, 간식은 과일/야채/요구르트로 대체 등입니다.


이런 생활습관 교정과 영양사 상담을 몇 개월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몸무게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이제 큰 결단을 내릴 차례입니다. 삭센다과 위고비가 발견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비만 수술을 했죠. 하지만 일단 13살 이상이 되어야 하고, BMI 40 이상이며, 거의 성인처럼 성장한 신체가 있어야 했기에, 많은 소아환자가 수술을 받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수술에 따라오는 통증과 부작용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겠죠. 


사실상 비만에 대한 효과적인 약이 없는 상태에서 삭센다(liraglutide)가 먼저 등장합니다. 이제는 미국소아과학회에서도 12세 이상 소아에서 삭센다를 생활습관교정이나 식단교정과 함께 사용하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사용을 권장합니다 [3]. 그리고 최근인 2022년에는 드디어 위고비도 12살 이상 청소년에서 사용가능한 것으로 FDA 승인이 났는데, 임상실험에 따르면 위고비를 사용한 이후 BMI가 평균 16%나 낮아졌다고 합니다 [4]. 엄청난 효과죠?


반면 한국에선 2022년이 돼서야 12살 이상에서 삭센다가 승인이 됐고, 위고비는 아직 청소년에게는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만들어지는 약이다 보니 한국에 적용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6]. 


비만 환자들을 위해 이런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비만에서 시작된 심혈관질환, 수면무호흡증, 정신적 자신감 하락 등 너무나 많은 병들이 예방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비만인 환자가 적응증에 맞춰 치료를 받으면 제일 좋겠지만, 아무리도 워낙 다이어트에 매몰돼 있는 사회다 보니까 비만이 아닌데도 과도하게 주사를 맞다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지 큰 걱정입니다. 삭센다와 위고비, 이 둘은 아픈 환자를 치료하는 약이지, 건강한 사람을 부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image credit: Pixabay - Pixellicious


References:

1. Kim JH, Moon JS. Secular trends in pediatric overweight and obesity in Korea. Journal of obesity & metabolic syndrome. 2020 Mar 3;29(1):12.

2. Skinner AC, Ravanbakht SN, Skelton JA, Perrin EM, Armstrong SC. Prevalence of obesity and severe obesity in US children, 1999–2016. Pediatrics. 2018 Mar 1;141(3).

3. https://publications.aap.org/pediatrics/article/151/2/e2022060641/190440/Executive-Summary-Clinical-Practice-Guideline-for

4.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208601 

5. https://www.fda.gov/media/166019/download 

6. https://medigatenews.com/news/16725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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