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아청소년 건강검진 (Well Child Visit) 9년 차
이전 글에 미국에서는 아이가 생후 12개월이 돼었을때 모든 아이들에게 피검사를 하는 것에 대해 적었습니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에 엄마로부터 받은 철분의 저장고가 다 떨어지는데, 이유식에 철분이 부족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빈혈이 생기면 인지능력 저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죠. 이에 대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91bdc393a9674fb/9
미국에선 아이가 9살이 되면, 그때와 비슷하게 다시 한번 피검사를 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9세-11세 사이에 콜레스트롤 수치를 확인하는 것인데요, 이때 이 검사를 왜 하는지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소아과 의사들도 헷갈려 하는 검사이고, 한국에서는 하지 않는 검사이기 때문입니다.
1. 여기서 콜레스트롤 검사라 함은 정확히는 총콜레스트롤(total cholesterol)과 고밀도지단백 (high-density lipoprotein 혹은 HDL, 흔히 말하는 "좋은 콜레스트롤")을 측정해 저밀도지단백 (low-density lipoprotein 혹은 LDL, 흔히 말하는 "나쁜 콜레스트롤") 수치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2. 검사의 주 목적은 유전병인 가족성 고콜레스톨혈증(familial hypercholestrolemia, 혹은 FC)을 검출하는 것입니다. 후천적으로 안좋은 식습관이나 운동부족으로 인한 대사증후군을 검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FC가 있는 아이는 딱히 체중이 높지도 않습니다. FC는 약 250명-500명에서 1명 꼴로 발생한다고 추측되는데, FC가 있는 사람은 나중에 관상동맥질환 (coronary artery disease)이 생길 확률이 20배나 증가한다고 합니다 [1]. 관상동맥질환은 흔히 심장마비로 이어지죠. LDL 수치가 200 이상이면 90%의 확률로 FC가 있다고 합니다.
3. 검사의 목적이 FC를 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복에 검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지질검사를 할 때 공복을 유지하라는 이유는 중성지방(triglyceride)이 식사 후 증가하기 때문인데, FC에서는 중성지방이 높지 않고 LDL만 높기 때문에 공복유지가 상관없습니다. LDL 수치는 식사에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4. 검사는 아이의 건강만 아니라 부모의 건강을 지키는데도 중요합니다. 만약 아이에게서 FC가 발견되면, 부모에게도 FC가 있을 확률이 50%이기 때문에 만약 부모가 콜레스트롤 수치를 확인한 적이 없다면 부모도 검사를 할것을 권장합니다. FC가 있으면 관상동맥질환의 증상이 45-60세 사이에서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 심장마비를 예방해야 합니다.
5. FC와 별개로 10살 이상의 어린이가 비만(BMI가 95분위 이상)이 있어 대사증후군이 의심이 되면, 그때는 중성지방을 포함한 지질검사와 더불어 당뇨를 보는 당화혈색소 (glycosylated hemoglobin, 혹은 HbA1c)와 간기능검사(liver function test, 혹은 LFT)를 같이 검사합니다[2]. 이 검사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 후 3년마다 학생검진을 할 때 비만인 아이에서 하는 혈액검사와 동일합니다 [3]. 비만은 워낙 큰 주제이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따로 다뤄보려고 합니다.
FC 치료의 목표는 LDL 수치의 정상화 (130 이하)이고 1차 치료는 저지방 식단이지만, 보통 식단만으로는 목표 수치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경우 약물을 사용하게 됩니다. 주로 사용하는 약물은, 고지혈증이 있는 성인들도 많이 사용하는 스타틴 계열이죠.
재밌는 점은, 미국에서 12개월 때 하는 빈혈검사와 같이, 9살때 하는 콜레스트롤 검사도 모든 아이에게 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소아과학회(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혹은 AAP)는 모든 아이들에게 빈혈검사와 콜레스트롤 검사를 할 것을 권장하는데, 미국예방정책국특별위원회(United State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혹은 USPSTF)에서는 증거부족으로 두 검사에 대해 권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4,5]. 미국소아과학회에서 2011년에 이 진료지침을 발표하고 난 후, 다른 학자들은 진료지침을 작성한 위원들이 콜레스트롤 검사 및 제약 업체외 금전적 관계가 있어 이런 권장사항을 낸 것이 아닌지 의심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6]. 실제로 2013년에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소아과 의사 중 30%만 정기적으로 9-11살 아이들에게 콜레스트롤 검사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7].
미국은 특히나 검사비용이 비쌉니다. 저도 올해 미국에서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이런저런 혈액검사를 받았는데요, 청구된 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총 1520불이 나왔고, 그 중 지질검사는 160불이 나왔더라구요 (다행히 다 보험 적용이 되어 제가 낼 돈은 없었습니다). 160불이나 되는 검사를 미국의 모든 아이들이 해야한다고 하면 전체 비용이 꽤나 크겠죠? 또한 금전적 비용 외에도 피검사를 받는 아이의 통증, 비정상적인 결과에 대한 불안감, 결과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 또한 검사를 함으로서 발생하는 비용입니다. 이런 선별검사의 원칙은 전체적인 득실을 따져보는 것인데, 득이 실보다 더 큰지 확실하지 않아 논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살다 보면 워낙 자원이 많은 나라다 보니 자원을 아끼지 않고 팍팍 쓴다는 느낌을 항상 받는데요, 위에 나온 콜레스트롤 선별검사도 이런 사회문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의학의 선두가 미국이고 한국의 의학도 미국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하는 것이 한국의 경제상황과 문화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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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1. Nelson Textbook of Pediatrics. 21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