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혁명이다
그해 겨울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란다
엄마 손을 잡고
아빠 어깨에 무등 탄 네가 보고 듣고 겪은 일이지
손가락 열 개와 두 발 그리고 더 무엇을 보탤 줄 모르는 아이의 눈에
셀 수 없는 불씨들을
어른들이 촛불이라 부를 때
발갛게 상기된 네 뺨 위 패인 볼우물에
까르르까르르 고이던
곧 봄이리라 믿게 하는 초록의 이파리들
큰 소리로 노래하는 어른들의 두 팔 아래 넘치던 희망이라는 물결은
오래전
오월의 피눈물을 먹고
새로이 태어난 민주주의였지
정치는 곧잘 비틀거렸고 많은 목숨을 걷어가
또 다른 계절 어느 해 여름 유월,
청년의 이름으로 무장된 열정들은
뿌연 최루가스에 기침을 토하고 벌건 얼굴로 명동성당으로 쫓겼었지
어깨를 겹친 넥타이부대 속에서 사랑도 했지
오직 민주주의를 노래한
흔들림 없던 무수한 사랑
성하의 계절만 있을 순 없나 봐
그해 겨울은 겨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늘하고 스산했어
순간의 선택은 역사의 바퀴를 거꾸로 돌려
망연자실한 사람들의 피울음이 광장으로 몰려든 날
분노와 한탄이 무한대로 쏟아져 나오던 그 순간
마법처럼 첫눈이 내렸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머리 위로
그 수만큼의 눈이 내려온 거지
간절함이 이뤄낸
네가 맞은 첫눈은 전설 같은 눈이었어
볼우물에 함박눈이 닿자
장미꽃처럼 환한 촛불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었지
어디서든 바람의 방향은 있어
그 길을 찾아가는 무수한 촛불들
촛불 홀로 탈 수 없어
우물쭈물하던 바람이 함께 움직이던 그곳
우린 그곳을 촛불광장이라 불렀어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란다
이천십육 년 그해 겨울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이모 삼촌들과
세 살 다섯 살 너희 남매가
첫눈과 함께 이룬 혁명의 이야기란다
b판 시선 024
김명지 시집
‘세상 모든 사랑은 붉어라’ 98쪽
20241214
과거를 소환한 어제,
2016년 광화문광장을 겪은 시를 불러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