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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지 Oct 19. 2024

아르코 발표 3

생일 溯考        - 똥-    


생일 溯考

             - 똥-

  

'니가 태어난 날 기가 막혔어야, 뱃전이 넘치도록 고기가 잡혔어야

불던 바람도 멎고 뱃길이 마냥 순하고

물은 모래부살을 걷는 것 모냥 쉬웠응께'

  

이 말을 듣고 또 듣고,

귓속 주름마다 새겨져 아직도 생생하다

  

딸의 생일을 잊고 미역국도 까먹고 지난 며칠 뒤

노래처럼 중얼거리시던 아버지

표정을 숨긴 엄마는 수돗가에 앉아 새치 비늘을 벗기며

점빵에 (구멍가게) 가서 산도를 사 먹으라 말했다

미역국 따윈 안 먹어도 좋았다

신작로를 뛰어다니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짤랑거리는 동전을 세는 일이 더 신이 났다

  

엄마가 죽자

생일 동전도 아버지의 만선 타령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어쩌다 하굣길에 아버지의 새각시가 알은체를 하면 죽고 싶었다

교복 치마를 뒤집어쓰고 청어 비늘을 몸에 감고 그들과 섞이고 싶었다

나무상자 속 제일 큰 청어로 상회로 실려 가고 싶었다

  

‘그까짓 생일 따위,...’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잊고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거더라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아들을 씻기고 시어머니를 씻기고 시아버지를 씻기고

팔자 한번 고약하여

똥을 친구로 삼아야 했다

  

아들 똥은 아주 공갈 염소똥, 떼구르르 굴러다녔다

시어머니 똥은 물새똥, 여기 칙 저기 칙

시아버지 똥은 소똥, 소똥구리 말똥구리 누가 빠를까 동요를 부르기도 했다

  

꽃샘바람 지나고 생일이 닥치면

갈피마다 햇살을 품은 바람이 온다

달큰한 똥을 생산하려고 바람 자락에 팔을 걸치고 길을 나선다

어릴 적 놓친 생일 밥과

간병자로 사느라 만진 똥들을 헤아리며

귀여리 능수 벚나무 아래를 달리며 꽃 똥의 자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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