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
둘째마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난 빈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다. 늘 정신이 없었던 나는 때때로 고요함 속의 우울을 즐기기도 했으나 외로웠다. 친구를 만나고 싶다가도 여전히 일을 하는 친구들과 주부로 사는 나의 괴리감이 크게 다가와 친구들과의 대화도 연락도 점점 줄어갔다. 그렇게 나의 지인들은 신랑 친구의 와이프들, 아이 친구의 엄마들 그리고 신랑을 따라다니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교회분들이 전부였다. 연고지 없이 신랑을 따라다니는 내게 미안했는지 늘 아이들을 봐줄 테니 친구들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오히려 즐겁지 못했고 내가 이루지 못했던 것들이 이따금 생각이나 가슴이 꽤 쓰리기도 했다. 가정주부라면 누구나 느끼는 그런 고무적인 감정들을 품고 살아가다 이번 폭력사건을 계기로 내 삶은 '투영'이라는 괴물에게 점점 잠식되어 갔다. 엄마는 늘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현실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난 신랑과 언쟁할 때면 늘 최악수인 '이혼'을 생각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 내게 내사 되어버린 세상의 가치관. 나한테 엄마가 자꾸 투영되기 시작하면서 무서워 겁이 났다.
단연코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말하는 신랑과 함께하면서도 나의 끝 또한 엄마와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최악수를 준비한다는 내 자신이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게 무한하게 선사해 주는 신랑의 온실이 너무나 달콤했기에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 온실이 독이든 성배는 아닐까? 언제까지나 이 온실이 견고할 수 있을까? 상담 선생님은 늘 내게 말한다. 내사된 이 가치관이 그리고 자꾸 엄마의 삶이 내게 투영이 되어서 힘든 거니 털어버리라고. 어떻게 털어버릴까요? 망각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 하지만 전 모르겠어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은 마땅히 잊어버리고 잊고 싶은 것들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너무 힘들어요. 상담 선생님 또한 끝끝내 마땅한 해답을 내게 주지 못하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이런저런 상념에 젖으면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 가방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혼서류. 엄마에게 우리를 아빠에게 놓고 가지 말아 달라고 울며 매달렸고 내가 성인이 되어 아빠의 외도 사실을 알고도 난 엄마에게 나 결혼 일찍 할 거니까 제발 그때까지만이라도 정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유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기적이고 물귀신 같은 내가 엄마를 두 번이나 주저앉힌 거였다. 사실 엄마의 팔자는 어쩌면 내가 만든 걸지도 모르는데 왜 나는 엄마의 팔자가 그래서 나까지 불행해질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엄마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역설적으로 내 마음 한편이 편안해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