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한테 짜증 좀 내지 마!
신랑이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러면서 우리 부부 사이에 트러블이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점점 커가며 자아도 형성되고 둘째도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서 신랑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건 내가 아빠에게 두려움을 느낄 때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이었다.
그러나 난 우리 부모와 달리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었고 난 그들과 다르다는 걸 나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현명하게 때로는 화를 내며 매번 다른 방법으로 신랑을 달래보았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자 나는 ‘애들한테 짜증 좀 내지 마!’라며 점점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쭙잖게 우리 편을 든다고 일을 더 키웠지만 나는 아빠로부터 확실하게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신념으로 '잘못인 거를 알면 그만 좀 해!' '화내고 짜증 내는 게 애들한테 얼마나 상처인 줄 알아?'라며 항상 내가 나서서 더 큰소리를 냈고 그러면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눈치를 봤다.
난 내 부모와 다를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나도 별반 다르지 못했다.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우리 부부의 눈치를 봤다. 난 정말 아이들을 상처받을까? 무서워 신랑에게 화를 냈던 걸까? 아니다. 신랑의 행동에 아빠가 투영되었던 것이었고 난 과거의 '어린 나'를 지키고 싶었던 거다. 아이를 위한다는 내 행동들은 내 결핍이 낳은 불화였던 거였다. 이 아이들은 '내'가 아닌데. 어째서 나처럼 무조건 부모를 원망할 거라고 상처받을 거로 생각했던 걸까? 신랑은 '아빠'가 아닌데. 뒤늦은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왔다. 내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지 않아야지 늘 다짐했던 내가. 오히려 그 그림자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