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아이들을 꼭 안고 체취를 맡고 있을 때면 이유 모를울컥함이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난 늘 말을 하곤 한다. '우리 아들, 엄마 아빠가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해. 사랑 많이 줄게. 그 사랑 넘치게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면서 그렇게 우리 행복하게 살자. 진짜 진짜 사랑해 아들.' 아무리 아이들에게 말해주어도 내 내면의 갈증과 울컥함은 꽤 오래 사라지지 않아 계속하여 아이들에게 속삭이고 또 속삭인다.
최근 4살인 첫째와 호주 여행을 다녀오고 2살인 둘째와 조우한 아침. 첫째는 여행 내내 독식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그립고 엄마와 형이 와서 마냥 신이 난 둘째는 이리저리 장난치고 사고 치기 바쁘다. 오랜만에 정신없는 아침, 첫째가 엉덩이가 가렵다며 떼를 부리기 시작한다.
‘엄마 엉덩이 가려워 긁어줘’
‘하준아, 엄마 지금 보여? 무척 바쁜데, 하준이가 긁을 수 있지? 손 닿잖아. 하준이가 긁어~‘
바쁜 내게 자꾸 엉덩이를 긁어달라고 하는 게 힘들었으나 아이가 상처받을까 두려워 에둘러 말했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째는 손이 안 닿는다며떼를 부리고 울기 시작했고 결국 난 터져 버렸다.
'손 닿지? 하준이가 긁을 수 있어. 엄마 지금 바쁘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어. 그만해.'
첫째 아이는 당연히 울었고 아이의 마음을 어러 만져줄 시간 없이 그렇게 아이는 울며 등원을 했다.
아이는 엉덩이를 긁어달라는 게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달라는 거였는데 알면서도 무시한 나의 행동이 그리고 상처 받은 아이의 눈빛이 마음에 계속 걸렸다. 그 눈빛이 어린 날의 내 눈빛처럼 느껴져서 였을까? 죄책감이 들어 아이가 하원하고 돌아오면 꼭 사과를 해야겠다 다짐했다.
'하준아, 오늘 아침에 엉덩이를 안 긁어줘서 서운했어?'
'엄마는 엄마가 바쁜데 자꾸 하준이가 엉덩이 긁어달라고 떼쓰고 울어서 힘들었어. 그래서 말이 날카롭게 나갔나 봐.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하준이 사랑해 그거는 변함없어, 정말이야'
‘괜찮아, 내가 사랑 많이 많이 줄게 엄마한테 걱정 마.‘
두서도 앞뒤 문맥도 없는 아들의 말이었지만 난 울컥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순수한 아이를 통해 들었다. 너희를 안으면서도 외롭고 울컥한 기분이 들었던 건 어쩌면 어린 날의 나를 안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에게 한 사랑의 고백은 사실 33살의 내가 어린 날의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 혹은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무한한 무조건적인 사랑. 그런 사랑의 속삭임 말이다. 난 이부자리에 누워 가끔은 아이들에게 고백을 한다.
’엄마는 때로는 무서워. 엄마가 사랑이라고 믿고 준 이 사랑이 잘못된 사랑일까 봐. 혹시나 불편하게 느껴지면 언제든 말해줘. 그래야 엄마도 사랑 방법을고치니까. 알았지? 사랑해 아들들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