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과 실패의 갈림길
1997년, 선글라스를 낀 두 남자가 지구를 찾은 외계인들을 감시하며 비밀리에 처리한다는 기상천외한 설정의 영화 한 편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맨 인 블랙'입니다.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의 조합은 당시로서는 다소 파격적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우월하다고 여겨지던 '백인 중년 남성'과 사회의 주변부로 인식되던 '흑인 젊은 남성'의 듀오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꽤나 'PC(정치적 올바름)'적인 캐스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상반된 매력과 예측 불가능한 '버디 케미'는 영화의 가장 큰 재미 요소 중 하나였죠. 누가 이들의 조합에 '불편함'을 느꼈을까요?
적어도 당시 극장가를 찾았던 관객들은 J 요원(윌 스미스)과 K 요원(토미 리 존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티격태격에 열광했습니다.
'맨 인 블랙'의 성공은 단순히 '다양한' 캐스팅 덕분만은 아니었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외계인들의 디자인, 예측 불허의 사건들, 그리고 무엇보다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의 환상적인 연기 호흡이 어우러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J의 능글맞음과 K의 무뚝뚝함이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코미디는 인종과 세대 차이를 넘어선 보편적인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이후 2편과 3편에서도 이들의 듀오는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시리즈는 무난하게 스토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름'을 억지로 강조하기보다는, 캐릭터 본연의 매력과 그들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케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당시 관객들은 J와 K 그 자체를 좋아했고, 그들의 파트너십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2019년 개봉한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백인 남성(크리스 헴스워스)과 흑인 여성(테사 톰슨) 듀오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더욱 'PC적인' 조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평단의 혹평을 받았습니다.
영화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영화 자체의 재미가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억지로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운 듯한 인상은 오히려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크리스 헴스워스와 테사 톰슨이라는 이미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배우들의 '케미'조차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이는 'PC 요소'를 단순히 표면적으로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토르: 라그나로크' 역시 발키리(테사 톰슨)라는 흑인 여성 캐릭터를 중요한 조력자로 등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PC주의' 논란에 휩싸이기보다는 오히려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발키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이었고,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으며, 무엇보다 영화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성공에 '다양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기본적인 스토리텔링과 연출, 캐릭터 구축이 탄탄했기에 관객들은 발키리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영화계에서는 '다양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배경의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시도가 어색하거나, 심지어 원작의 설정을 무리하게 변경하면서까지 이루어져 논란을 낳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묘사되던 '인어공주' 에리얼을 흑인 배우가 연기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러한 캐스팅은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이루어졌지만,
많은 팬들에게는 원작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해석과 시도는 창작의 자유 영역에 속하며,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영화의 '재미'라는 본질적인 가치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대중문화 콘텐츠입니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하며, 억지로 어떤 메시지를 '배우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일부 영화들이 '재미'는 놓친 채 'PC적인 메시지'를 강요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실패와 궤를 같이 합니다.
'맨 인 블랙' 오리지널 시리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캐스팅이라는 요소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재미'를 극대화했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상업 영화가 '다양성'을 성공적으로 녹여낼 수 있는 핵심 열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