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고스트, 15년 만에 만난 신파 공식

저출산 시대에 다시 본 가족 판타지의 씁쓸함

by 이땃쥐

눈물이 말라버린 자리에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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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 년 전, 저는 극장 좌석에 몸을 묻은 채 꺽꺽대며 울고 있었습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의 마지막 10분은 어린 제게 세상 모든 슬픔의 총합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파’라는 단어에 제법 익숙해지고, 웬만한 슬픔에는 면역이 생겼다고 자부하던 어느 날, 문득 그날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익숙한 결말을 되뇌며 재생 버튼을 눌렀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제 얼굴에 떠오른 것은 눈물이 아닌, 잘 짜인 ‘억지 신파’의 공식을 향한 냉소 섞인 감탄이었습니다.


잘 만든 코미디,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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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고스트>는 영리한 영화입니다. 시작 후 10분 남짓한 시간 안에 주인공 상만(차태현)이 왜 죽으려 하는지, 어쩌다 귀신을 보게 됐는지, 그리고 네 명의 귀신이 어떤 사연과 능력을 가졌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관객의 손을 잡고 이야기 속으로 단숨에 뛰어드는 이 친절함 덕분에, 우리는 복잡한 고민 없이 상만의 기구한 동거 생활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넥스트비쥬얼스튜디오)

물론 2025년의 시선으로 보면, 다소 촌스러운 CG나 과장된 슬랩스틱 코미디는 ‘오글거림’을 유발하는 지점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기술적 아쉬움을 상쇄할 만큼 강력한 시대적 향수를 품고 있습니다.

특히 극 중 잠깐 등장하는 <개그콘서트> 장면은, 일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한 주를 마무리하던 그 시절의 공기를 소환하며 잠시나마 우리를 추억에 젖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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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잘 짜인 구조 위에서, 영화의 중심을 잡는 것은 배우 차태현입니다.

하지만 그를 보며 그의 다른 필모그래피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습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어수룩한 견우부터 <과속스캔들>의 남현수, <신과 함께>의 김자홍에 이르기까지, 그는 줄곧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선하지만 조금은 답답한’ 인물을 연기해왔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캐릭터 행보가 배우로서 그의 스펙트럼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헬로우 고스트>의 상만은 바로 그 ‘차태현다운’ 익숙함이 있었기에, 모든 것을 뒤집는 후반부의 거대한 신파 공식이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영리한 장치들

%C2%A5%C0%E5%B8%E9.jpg?type=w420 출처 : 네이버 블로그(아나운서 정제나)

영화가 관객의 눈물샘을 공략하기 위해 얼마나 영리하게 설계되었는지는, 웃음기 걷어낸 평범한 장면들에서 드러납니다.

식신 초딩 귀신에 빙의된 상만이 자장면을 게걸스럽게 먹던 그 씬이 대표적입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어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중학교 졸업식이라는 아주 특별한 날에야 난생처음 자장면을 드셔보셨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한 세대에게 기념일에나 맛볼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 이제는 언제든 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는 일상의 음식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나온 시대의 변화와 풍요를 실감하게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단순한 감정 자극을 넘어, 세대의 경험을 관통하며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영리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작은 장치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영화는,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복선을 회수하며 거대한 신파의 댐을 터뜨립니다.

상만을 괴롭히던 유령들의 모든 행동이 실은 애틋한 사랑의 몸짓이었다는 반전.

담배를 피우고, 김밥을 먹고, 운전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든 순간은 외로운 막내에게 보내는 가족의 마지막 선물이었습니다.

15년 전에는 이 반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눈물을 쏟아냈지만, 이제는 그 눈물 뒤에 숨겨진 감독의 정교한 계산이 먼저 보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다시 본 '가족 판타지'

050b9b3b-73bf-47ca-934c-b5e9e8292830.jpg 출처 : 중앙일보

15년 만에 다시 만난 <헬로우 고스트>가 제게 남긴 것은 눈물이 아닌, 시대의 변화에 대한 서늘한 자각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꼴초 귀신(고창석)은 상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부인이 생기면 두 배 힘이 나고, 아이가 하나 생기면 세배, 셋이 생기면 네 배 힘이 난다."

2010년, 이 대사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합계출산율 0.6명대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2025년의 관객에게 이 대사는 어떻게 들릴까요?

결혼과 출산, 육아의 무게에 짓눌린 현시대에 ‘가족이 생기면 힘이 난다’는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프로파간다’처럼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결국 <헬로우 고스트>는 이제 한 편의 잘 만든 ‘가족 판타지’로 남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말하는 가족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는 씁쓸한 사실을, 저는 15년 만의 재관람을 통해 확인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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