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구가 지키려 한 '지구', 과연 행성이었을까?

한 단어에 담긴 저주받은 걸작의 비극

by 이땃쥐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가 남긴 "지구를 지켜라"는 말이다.

저주받은 걸작과 하나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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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국 영화계에 다시없을 기이하고 독창적인 작품 하나가 등장한다.

SF, 스릴러, 블랙 코미디를 한 용광로에 뒤섞은 듯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흥행에는 처참히 실패했지만,

시간이 흘러 수많은 평론가와 영화 팬들에게 '저주받은 걸작'으로 재발견되었다.

이처럼 독특한 위상 때문에 나 역시 이전 글에서 한국 영화의 독창성을 이야기하며

이 작품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영화의 중심에는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청년 '병구'가 있다.

그의 모든 행동을 추동하는 것은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가 남긴 "지구를 지켜라"는 말이다.

그는 이 말을 행성 '지구(地球)'를 지키라는 우주적 사명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만약, 이 모든 비극이 단어 하나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되었다면 어떨까?

병구의 어머니가 지켜달라 부탁했던 '지구'가 행성이 아닌, 그들이 기르던 애완견 '지구'였다면 말이다.


두 개의 지구, 망상의 건축학

이 가설을 따라가면 병구의 세계는 두 개의 '지구'로 나뉜다.

첫 번째는 행성 지구, 즉 그를 끊임없이 파괴해 온 거대하고 폭력적인 세계다.

부패한 기업 총수, 폭력적인 교사, 무심한 교도관으로 상징되는 이 세계는

병구 개인이 맞서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압도적이다.

그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불행들은 명확한 원인 하나를 지목하기 어려운, 시스템 전체의 폭력이었다.

병구의 과거

48494_1680614524.png 애완견 '지구'

두 번째는 애완견 지구, 어머니가 남긴 유일한 살아있는 유산이다.

이 작고 연약한 생명체는 병구에게 남은 마지막 순수이자,

그가 실패했던 과거(아버지, 연인, 어머니를 지키지 못했던)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고통의 증거이기도 하다.

감당하기 힘든 트라우마 속에서, '개를 돌보라'는 소박하고 현실적인 유언은 너무나 아픈 과제였을 것이다.


여기서 병구의 무의식은 정교한 방어기제를 구축한다.

고통스럽게 '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차라리 '불가능한' 임무를 짊어지는 것이다.

행성을 구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적의 거대함 때문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을 우주적 사명으로 격상시켜 자신의 무력감과 죄책감으로부터 도피한다.

그의 '외계인 사냥'이 무작위가 아닌,

자신의 삶을 파괴했던 인물들을 정확히 겨냥한 복수극의 형태를 띠는 것은

그의 망상이 현실의 고통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마지막 순간, 드러난 진실

maxresdefault.jpg 병구의 오열

영화의 비극은 병구가 죽음을 맞는 마지막 순간에 절정에 달한다.

어머니를 살릴 해독제도, 자신을 사랑한 순이도, 행성의 평화도,

그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채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순간,

그를 지탱하던 거대한 망상의 구조물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우주나 외계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은 너무나 작고 애처로운 질문이다.

"... 근데, 이제 지구는 누가 지키지?".

이 한마디는 그의 모든 심리적 방어기제가 해체되고 남은 가장 순수한 본심의 발현이다.

그의 마지막 염려는 행성의 안위가 아닌, 홀로 남겨질 작고 무력한 애완견에 대한 것이었다.

거창했던 지구 수호자의 여정, 그 종착지가 결국 어머니와의 마지막 약속,

즉 강아지를 돌보지 못했다는 한탄과 죄책감이었음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의 모든 광기가 얼마나 슬픈 진실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성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아픈 장면이다.


새로운 '부고니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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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을 드러내고 지구를 파괴하는 '왕자' 외계인

결국 병구의 개인적 비극은 우주적 비극으로 확장된다.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목격한 진짜 외계인은 인류에게 절망하고 행성을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한 개인의 상처를 외면한 세계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냉정한 판결과 함께,

영화는 지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명령이라는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를 남긴다.


그리고 2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저주받은 걸작'이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을 예고한다.

'가여운 것들'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연출하고 엠마 스톤, 제시 플레먼스가 주연을 맡은 리메이크작

'부고니아(Bugoni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고니아'는 소의 사체에서 벌이 태어난다고 믿었던 고대 신화에서 따온 제목으로,

죽음과 부활, 잘못된 믿음이라는 원작의 핵심을 관통한다.


원작의 남성 CEO가 여성 CEO(엠마 스톤)로 바뀌는 등 주요 설정에 변주를 가하며

현대 사회의 권력 역학을 더욱 복잡한 층위에서 다룰 것을 예고했다.

이미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리메이크의 정당성을 입증했다"는 찬사와 함께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부고니아'.

장준환 감독의 뜨거운 분노와 연민이 란티모스 감독의 냉소적이고 정교한 부조리극과 만나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지, 이 새로운 '지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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