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 흥행작과 명작, 시간의 역설

시대가 외면한 걸작과 열광한 흥행작의 비밀

by 이땃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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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역설: 흥행작과 명작을 가르는 시간의 힘

2021년, ‘오징어 게임’은 하나의 신드롬이었다.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하며 K-콘텐츠의 위상을 드높였다.

하지만 열광적인 찬사 뒤편에서는 “기존 데스 게임 장르의 아류작”, “서사가 얕은 졸작”이라는 날 선 비판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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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 지구를 지켜라 / 김씨 표류기 각 포스터

반면 여기, 시대의 외면 속에 쓸쓸히 퇴장했던 영화들이 있다.

개봉 당시 폭력성 논란에 휩싸이며 흥행에 참패했던 ‘파이트 클럽’,

엉뚱한 코미디 영화로 포장되어 7만 관객 동원에 그친 ‘지구를 지켜라!’,

그리고 현대인의 고독을 섬세하게 그렸으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던 ‘김씨 표류기’.

이 영화들은 왜 실패라는 오명을 쓴 채 잊혀 가는 듯하다가, 시간이 흘러 ‘저주받은 걸작’, ‘시대를 앞서간 명작’으로 부활하게 된 것일까?

작품의 가치는 과연 무엇으로 평가받는 걸까.

흥행 성적과 예술적 성취 사이의 기묘한 역설을 네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


성공의 문법을 마스터하다: ‘오징어 게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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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우연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시대정신의 반영이었다.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과 부채라는 전 세계적 불안감을 정면으로 겨눴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단순한 어린이 놀이를 생존 게임과 결합해 문화적 장벽을 허물었다.

여기에 넷플릭스라는 강력한 플랫폼이 날개를 달아주었다.

190개국 동시 공개, 데이터 기반의 마케팅은 ‘오징어 게임’을 국경 없는 콘텐츠로 만들었다.


13f450a3-fb14-466c-9ecb-7d45b8797a1c.jpg 전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의 오징어 게임 컨텐츠

또한, 강렬한 시각적 요소들은 소셜 미디어 시대에 완벽히 부합했다.

녹색 운동복, 기하학적 가면, 달고나 뽑기 세트 등은 수많은 밈과 챌린지를 낳으며 스스로 증식하는 마케팅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졸작’이라는 비판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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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신이 말하는 대로 / 도박묵시록 카이지

‘신이 말하는 대로’, ‘도박묵시록 카이지’기존 작품들과의 유사성 논란은 독창성에 대한 의문을 낳았고,

사회 비판 메시지가 스릴을 위한 배경으로만 소모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예술적 혁신이라기보다, 기존 장르의 문법을 가장 대중적이고 시의성 있게 재포장한 ‘기획의 승리’에 가까웠던 셈이다.


이러한 비판은 후속 시즌에서 더욱 심화된다.

시즌 2와 3에 1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것은 이미 시즌 1의 성공 직후 결정된 사안으로,

시즌 2에 대한 엇갈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매몰 비용이 시즌 3의 제작을 강행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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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즌 2는 공유가 연기한 '딱지남'의 서사를 다룬 첫 화가 장편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큰 호평을 받았으나, 이후 전개가 지루하고 독창성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는 감독의 개똥철학이 작품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01.40978446.1.jpg 제일 이해가 안 갔던 캐릭터들

캐릭터들은 개연성 없는 선택을 반복하고, 감독이 전하려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는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보다 감독의 독선적인 시선으로 느껴진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과적으로 서사는 파편화되고, 게임의 긴장감은 무뎌졌으며,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감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소모되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이름들: 실패한 명작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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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1999년,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은 평단의 혹평과 저조한 흥행 속에 막을 내렸다.

소비주의와 남성성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는 폭력 미화라는 오해를 샀고,

배급사 사장이 해고될 정도의 실패였다.

하지만 DVD 시장이 열리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극장의 압박에서 벗어난 영화는 자본주의의 공허함에 지쳐있던 젊은 세대와 만나며 컬트 클래식으로 부활했고, 그 예언자적 메시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했다.


2000년대 한국 영화계의 상황은 더욱 극적이었다.

당시 극장가는 대기업 투자·배급사가 시장을 장악한 수직계열화 시스템 아래 놓여 있었다.

이 시스템은 상업적으로 안전한 영화를 선호했고,

‘지구를 지켜라!’나 ‘김씨 표류기’처럼 독창적이지만 위험 부담이 큰 작품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지구를 지켜라!’는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 SF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장르 혼합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지만,

kqfnoQlBe6B3hKtFb5cRoswFAjKAL7YDDMiCU84U-O8Q5HW5rDpgddEIE1pi1V32Lhtd 영화 내용과 하나도 상관이 없는 포스터

마케팅팀은 이 ‘괴작’을 밝고 명랑한 코미디로 포장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관객의 외면은 처참한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김씨 표류기’ 역시 현대인의 소외라는 깊은 주제를 로맨틱 코미디로 홍보하며 작품의 진가를 스스로 가렸다.


시간이 증명하는 것, 명작의 조건

결국 ‘오징어 게임’과 세 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 위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오징어 게임’은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읽어낸 ‘현재의 명작’이다.

플랫폼 기술바이럴 문화, 그리고 보편적 불안감이라는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다.

반면 ‘파이트 클럽’, ‘지구를 지켜라!’, ‘김씨 표류기’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거나, 시대와의 소통 방식이 서툴렀던 ‘미래의 명작’들이었다.

이들의 가치는 모호함과 복잡성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DVD와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라는 새로운 맥락을 만나 비로소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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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손에서 할리우드 리메이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영광스러운 실패’가 결국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 시대의 흥행작이 반드시 다음 시대의 명작이 되지는 않는다.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가 작품의 예술적 깊이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진정한 명작이란, 당대의 평가를 넘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재해석될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일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전히 새로운 ‘김씨 표류기’와 ‘지구를 지켜라!’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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