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자다, 우리가 착각했던 진짜 지옥,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로 잊힌 88올림픽의 어두운 이면

by 이땃쥐
image?url=https%3A%2F%2Fi3n.news1.kr%2Fsystem%2Fphotos%2F2025%2F8%2F15%2F7446437%2Fhigh.jpg&w=1920&q=75 '나는 생존자다' 공식 포스터

기억의 균열, 다큐멘터리가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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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놈은 삼청교육대 좀 보내야 정신 차리지."

우리 사회에서 분노를 표출할 때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저 역시 그 '삼청교육대'가 군부독재 시절 국가 폭력의 대명사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를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다큐는 끔찍한 인권유린의 현장을 생존자의 목소리로 고발했지만,

그곳의 이름은 삼청교육대가 아닌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이 낯선 이름에서 시작된 충격은 곧 분노와 질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비극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가?

왜 한 시대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두 개의 지옥을 혼동하게 되었는가?

'나는 생존자다'는 잊혔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의 조각을 맞춰보라며 우리에게 무거운 숙제를 던집니다.


'거리 정화'의 광기, 시스템이 된 악마

d0d8740e-e649-48ec-b9b0-d3c41b25a995.jpg 경찰에서 보호·의뢰한 부랑아 하차 광경

다큐가 파헤친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부랑인 선도'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그곳에 끌려간 이들은 사회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학생, 역에서 오빠를 기다리던 어린아이 등,

단지 그 시간에 그 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납치되었습니다.

20241219112002262mbve.jpg 88올림픽 굴렁쇠 소년

특히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 정화'가 필요하다는 국가적 목표는 이 잔혹한 인간 사냥에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Gemini_Generated_Image_cj3xwocj3xwocj3x.png AI로 생성한 경찰의 부패 이미지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 범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공권력의 민낯입니다.

당시 경찰들은 일반 범죄자를 검거하는 것보다

형제복지원에 사람을 넘기는 것이 인사고과 점수가 훨씬 높았고,

심지어 한 명당 얼마씩 뒷돈까지 챙겼다는 증언은

시민을 지켜야 할 조직이 어떻게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똑똑히 보여줍니다.

국가는 사회 정화라는 업무를 민간 시설에 외주화했고,

경찰은 실적과 돈을 위해 기꺼이 그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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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국가 시스템의 비호 아래, 형제복지원은 3만 8천여 명을 감금하고,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657명에 이르는 '실제 지옥'이 되었습니다.


두 개의 지옥, 끝나지 않은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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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사회정화운동

우리가 형제복지원을 삼청교육대와 혼동했던 이유는

두 사건 모두 '사회 정화'를 내세운 1980년대 군사독재의 광기 어린 산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삼청교육대가 군이 직접 운영한 단기적이고 노골적인 정치 폭력이었다면,

형제복지원은 국가가 민간을 앞세워 수십 년간 자행하고 방치한 더 교활하고 구조적인 폭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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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두 개의 지옥은 별개가 아니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실은, 삼청교육대에서 끔찍한 폭력을 견디고 나온 사람을 다시 형제복지원으로 끌고 간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국가가 한번 '불순분자'로 낙인찍은 개인을 어떻게 끝까지 추적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했는지를 보여주는 '국가 폭력의 회전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지옥에서 겨우 살아남았더니,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48363_87634_4453.jpg 전두환과 악수를 하는 박인근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낸 원장 박인근은 고작 2년 6개월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을 뿐입니다.

더욱 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수많은 피해자가 여전히 그날의 트라우마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지금,

가해자 가족들은 수천억 원대로 추정되는 재산을 가지고 호주 등 해외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의는 완전히 실패했고, 피해자들의 고통 위에서 가해자들은 부를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기억 투쟁의 시작,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는 단순한 과거 고발을 넘어, 현재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왜곡된 기억과 실패한 정의를 이대로 둘 것이냐고 말입니다.

형제복지원과 삼청교육대를 명확히 구분하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을 넘어,

각기 다른 폭력에 신음했던 피해자들의 고유한 고통을 인정하고 국가의 책임을 정확히 묻는 일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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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들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원하는 것은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국가의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라고 합니다.

'나는 생존자다'를 통해 우리는 잊었던, 혹은 몰랐던 역사의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답할 차례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외면하지 않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관심과 기억만이 제2의 형제복지원을 막고, 살아남은 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나는 생존자다'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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