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설계와 허술한 전제의 딜레마
영화 '돈'은 주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통해
관객을 순식간에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해고 직전의 어수룩한 신입사원 조일현(류준열)이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 거대한 돈의 흐름에 올라타는 이야기는 분명 매력적이다.
영화는 번호표를 모든 것을 설계하고 조종하는 신적인 존재처럼 묘사하지만,
그의 첫 번째 선택, 즉 조일현을 파트너로 삼는 방식에서부터 우리는 작은 균열을 발견하게 된다.
번호표의 작전이 진정 완벽했다면,
그는 왜 가장 비효율적이고 위험해 보이는 방식으로 조일현에게 접근해야만 했을까?
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잠시 내려놓고, 그가 설계한 판의 전제를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굳이 조일현이었나?"이다.
번호표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액의 매수 주문을 시장에 던질 '브로커'라는 기능뿐이었다.
이 역할은 익명성을 보장하며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히 지시할 수 있는 일이다.
작전의 핵심 리스크는 대량의 주식을 매도하는 쪽에 있지,
단순히 매수 버튼을 누르는 조일현에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번호표는 직접 그를 만나 정체를 노출하고, 심지어 거액의 현금까지 안겨준다.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왜 쓸데없는 돈을 주었는가?" 6억이라는 검은돈은 분명 조일현을 범죄에 가담시키는 확실한 족쇄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행적을 좇게 만들 가장 유력한 증거물이자,
조일현의 소비 패턴을 무너뜨려 수사망을 자초하는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는 정확히 그 수순을 밟는다.
조일현이 '상식 밖의 어리석은 행동'을 해줘야만 비로소 갈등이 증폭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던 셈이다.
이러한 작위적인 설정은 조일현의 주변 인물에게서도 반복된다.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로이 리(다니엘 헤니)가 별다른 검증 없이 신입사원 수준인 조일현에게 거액의 자금을 맡기는 장면은 극의 핍진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마치 조일현의 성공과 타락이라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주변 인물들이 편리하게 등장하고 퇴장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의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른다.
번호표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선택은 현실적인 논리가 아닌,
'조일현을 타락시켜야 한다'는 영화의 목표를 위한 '각본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조일현이 평범한 브로커로 남는다면 영화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돈의 맛에 취해 파멸에 이르는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
번호표는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를 만나고 위험한 돈을 쥐여주는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일현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마저 가능해진다.
돈의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을 잃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마치 영화 <타짜>의 정마담처럼,
욕망과 생존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위해 설계된 서사를,
순진한 사회초년생이라는 옷으로 갈아입힌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가설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만큼 조일현의 행동 동기가 때때로 인위적으로 느껴진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 '돈'은 장르 영화로서 충분히 흥미롭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갖는 의미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 쌓아 올린 과정의 벽돌 몇 개가 엉성하게 놓여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관객의 합리적 의심은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소한 흠집이 아니라, 어쩌면 이 영화가 가진 구조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돈'은 분명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지만,
그 서사의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관객이 몇 가지 중요한 질문을 애써 외면해야만 한다는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