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입도한 지 십 년. 한림에 산지도 십 년. 이제 조금씩 마을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누구나 가고 보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이야기를 소소하게 적어 보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님도 모르는 우리 동네 이야기,... 그 여섯 번째 이야기다.
제주 낭에 대하여
알다시피, 제주는 '나무'를 '낭'이라고 부른다. 감낭, 소낭, 퐁낭, 볼레낭, 막개낭, 누룩낭, 독고리낭, 삼동낭, 멍크실낭 등등. 대충 이 정도로 나열한 나무들 중 서울과 수도권에서 볼 수 있는 나무들이 몇 안된다.
내가 서울에 살 때는 샛노오란 은행나무가 가을가을 했었다. 도심 속 가로수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그런데 제주에는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쓰지 않는다. 제주도 가로수는 먼낭, 막개낭, 간혹 담팔수 등이다. 이런 나무들은 서울에서 볼 수 없는 나무들이다.
나는 오십 대 중반임에도, 초등학교 3학년을 둔 자녀로 인하여 육아공동체를 하고 있다. 올해 우리의 육아 공동체 활동주제가 '제주 낭'이다. 그래서 4월에 멍크실낭, 5월에는 삼동낭을 관찰했다. 6월에는 빨간 열매가 맺는 먼낭이다. 그리고 7월에는 예쁜 꽃이 피나, 독이 있다는 협죽도를 보고, 8월에는 환경부에서 희귀 야생식물로 분류되어 보호하고 있는 '해녀콩'을 보러 비양도에 갈 예정이다.
멍크실낭
멍크실낭은' 멀구슬나무'의 제주어다. 책을 찾아보니 머쿠실낭으로 나오던데, 우리 동네 삼춘께서 멍크실낭이라고 말씀해 주셔서 나는 멍크실낭이라고 하겠다.
4월 중순, 아이들과 멍크실낭 나무를 관찰하러 갔는데, 잎이 손톱만큼만 올라와서 이 손톱이 어떤 모양으로 자랄지 그때는 도무지 감이 안 오는 때였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잎이 자라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5월 초중순부터 꽃이 피었던 것 같다. 잎눈은 다른 나무보다 훨씬 늦게 틔우고, 한 번 싹을 틔우면 보름 사이에 잎도, 꽃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핀다. 마치 시험 일정이 잡혀도 펑펑 놀다가 닥쳐서 벼락치기 공부하는 아이 마냥.
그러나 그 벼락치기 결과가 좋다. 잎이 자라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그늘아래 있으면 꽃 향기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오면 5월 초중순엔 멍크실낭 향기를, 그리고 5월 중하순엔 귤꽃향기를 맡으면 된다.
향기가 좋아서 그런지 제주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돗통시(돼지 키우던 화장실)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가을에는 노란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는 나프탈렌 대용으로 옷장에 쓰기도 했으며, 씨에서 짠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염주를 만들었던 나무가 바로 이 멍크실낭이었다고 한다.
삼동낭 하나 더
멍크실낭은 그래도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볼 수 있다지만, 삼동낭은 흑산도 아래 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니 제주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삼동낭은 '상동나무'의 제주어다. 제주에 10년 동안 살았지만, 삼동낭의 존재를 몰랐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육아공동체 활동 주제를 '제주 낭'으로 정하면서 동네 삼춘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삼동낭은 겨울에 꽃이 피고 봄에 열매를 맺는 나무다. 그래서 5월에 삼동낭을 보러 가기 위해 느지리오름을 찾았다. 느지리오름 산책로에 많은 삼동낭을 볼 수 있었지만, 열매는 하나도 없었다. 동네 삼춘도 '이상하게 올해 삼동낭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며 의아해하셨다.
열매는 팥 크기정도 되는 것 같았다. 이 열매가 까맣게 익으면 따 먹는데, 먹어본 사람들이 블루베리보다 더 맛있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삼동낭 열매로 술도 빚고, 엄마가 밭에 갔다가 '삼동낭 열매 따오면 그렇게 좋았다'라고 동네 삼춘이 이야기해 주셨다.
열매는 아쉽게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느지리오름 입구에 아름드리 상동나무를 발견했다. 그렇게 크게 자란 삼동낭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