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유연제 향으로만 만났던 너를 올봄엔 우리 집 앞마당에서 보는구나. 향만큼이나 탐스러운 꽃이었구나 너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외동아들 8살 지훈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아뿔싸! 올 것이 온 게로구나….
“언니! 혹시 모르니 해열제 교차 복용할 수 있게 두 가지 준비해 두시면 좋아요. 그리고 우리 애들은 목이 아프다고 못 먹었어요. 목이 아플 수 있으니 아이스크림도 냉동실에 챙겨 두세요 “
작년 말에 제주에서 함께 공동육아하다 부산으로 이사한 희윤 엄마의 조언이 있은지 불과 두 시간. 대통령 선거일로 개표가 막 시작하던 그 시점에 지훈이 얼굴이 발그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마를 짚어보니 역시. 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를 어쩌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열의 시작이라 그런지 다행히 저녁은 곧 잘 먹었다. 평소 같으면 저녁을 먹고 한참을 놀다 자는데 침대에 가서 눕자 하니 바로 눕는다. 아파오기 시작하나 보다. 그러고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새벽에 해열제를 먹이니 겨우 두 시간 눈을 붙인 후 다시 깬다. 나도 밤새 따듯한 물 먹이며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주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교차 복용을 위한 두 가지 해열제를 준비해 둘 시간조차 없이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갔다.
임시공휴일을 마치고 오늘은 등교하는 날이다. 매일 아침 교육부 자가진단을 해야 하는 학생이라 오늘도 자가진단을 했다. “열이 남”에 체크를 하니 바로 등교중지가 뜬다. 일단 학교는 갈 수 없다. 남편보고 빨리 마트 가서 일주일 분 장을 보고 오라고 했다. 지훈이가 걸렸으니 우리도 걸릴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장을 보고 와서 자가진단 키트로 검사를 하니 세명 모두 음성이 나왔다. 어? 음성이네. 그러나 지훈이는 열이 계속되고 있었다. 보건소에 전화하니 “신속항원검사”를 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세명이 보건소로 달려갔다. 신속항원검사 줄은 길지 않았다. 바로 할 수 있었다. 지훈이는 몸 상태도 안 좋은 데다 코까지 쑤셔대니 미칠 지경인가 보다. 검사 안 하겠다고 손으로 코를 틀어막는다. 보건소 선생님 도움으로 일단 코 쑤시는데 성공은 했다. 15분 대기 후 결과가 나왔다. 모두 음성이라며 키트를 버리려고 하는 순간, 내가 말했다. 아니 내가 발견했다. “잠깐만요. 이거 두 줄 아닌가요?” 담당 선생님이 다른 분까지 불러 다시 확인했다. 눈치 못 챌 정도의 두 줄도 두 줄인 것이다. 결국 우리 부부는 음성, 지훈인 양성으로 결과가 나왔다. 신속항원검사가 양성으로 나오면 PCR검사 대상이 된다. PCR검사를 하려고 보니 줄이 길어도 너무 길었다. 보건소 마당 길을 줄이 똬리 틀고 있었다. 코 쑤셔 울고 난리 난 아이를, 열이 나고 힘든 아이를 데리고 긴 줄을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집으로 왔다. 다시 침대와 한 몸이 된 초등학교 1학년 생은 - 이제 겨우 학생이 된 지 4일밖에 안 된 아이가 우리 가족 중 제일 먼저 앓아눕게 되다니 - 해열제 약발로 그나마 두 시간 잠이 들었다. 이렇게 이틀 밤을 보냈다.
오늘 보건소에 다시 가야 한다고 하니 싫다고는 해도 강하게 부정하진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머리를 좀 썼다. 오후 3시를 겨냥했다. 나와 아이는 차에 대기하고 남편이 줄을 서기로 했다. 3시 겨냥은 훌륭했다. 차에서 15분 정도 있었을까? 이제 곧 우리 차례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또 코를 쑤시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보건소가 떠나가게 울어 댄다 역시.
코로나 확진은 예상을 비껴가고 싶었으나,… 현실이 되었다. 확진 문자를 받고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확진 문자를 받을 즈음 지훈은 열이 내렸다. 살 만한 모양이다 잘 먹고 잘 놀기 시작한다. 휴~~ 일단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어? 내 목이 칼칼하다. 지훈이 열이 내릴 때 내 목은 칼칼해졌다. 나만 신속항원검사를 받기 위해 보건소로 갔다. 음성이다. 그럴 리가. 내가 코를 덜 쑤셨나? 미안한 얘기지만(국가 예산을 함부로 쓴 것 같은 느낌) 바로 다시 검사를 했다. 이번엔 코가 얼얼할 정도로 확실히 쑤셨다. 에이! 이번엔 양성 나오겠지. 헐! 그런데 또 음성이다. 이럴 리가…
일단 집으로 왔다. 확진자 가족은 신속항원검사 결과 없이도 PCR 검사가 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다음날 PCR 검사를 받고 나도 당연히 - 이제 당연한 일이다 - 양성 확진자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확진된 이틀 후 남편도 확진되었다. 잠잘 때도 마스크를 써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자가격리하고 난 후… 그러니까 후유증은 세 식구 중 내가 제일 많았다. 나는 목부터 시작해 몸살끼가 좀 심했고 그렇게 이틀을 앓은 후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가래 발생 그리고 이틀 후 기침 시작. 가래 시작점은 정말 최악이었다. 목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가래는 헛구역질을 연발하게 했고 뱉어보고자 노력했을 때는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가래와 기침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큰 것(후유증)이 왔다. 그래도 식구 밥은 차려줘야 했기에 하루는 데쳐놓은 브로콜리 상태가 괜찮은지 한쪽 끝을 살짝 뜯어 맛을 봤다. 앗!!!!!! 맛이 안 난다. 미각상실. 그리고 몸이 군데군데 가렵다. 가래와 기침이 계속되니 두통도 생겼다.
증상 발현 3주째인 지금은 가래는 많이 좋아졌다. 가끔 기침 나고 두통 조금 있는 정도다. 그러나 아직 미각은 돌아올 줄 모른다. 그래도 지훈이는 열 내린 후 다른 후유증은 없어 보이고 남편도 약 잘 챙겨 먹어서 그런지 나보다 회복이 빨랐다. 샤프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봄비가 내리더니 꽃이 사라졌다. 매년 봄 샤프란이 다시 피면 오미크론이 우리 가족에게 한 짓이 떠오르겠지!
추신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첫 글을 오미크론 이야기로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8년 전, 임신 4개월 때 제주도로 입도한 이주민입니다. 네, 오미코론에 걸린 초등학교 1학년생 지훈이가 제 뱃속에 있었을 때죠. 제주에서의 출산과 육아 그리고 살면서 느끼고 배운 제주 문화와 역사를 다음 글부터 차곡차곡 써 내려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