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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eh Sep 07. 2022

21.8평 컨테이너

컨테이너에서 시작한 육아

제주도 전통 가옥 구조에 안거리 밖거리가 있다. 부모가 안거리에서 살다가 아들이 결혼을 하면 아들 내외에게 안거리를 내어 주고 부모는 밖거리로 옮긴다. 같은 집이지만 살림은 모두 따로다.


임신 4개월에 내려와 산 집은, 남편이 싱글일 때 세를 주고 얻은 집, 밖거리였다. 난방 시설이 없는 방 하나에, 주방이라고 할 수 없는 싱크대만 놓인 공간과 욕실이라고 할 수 없는 수도꼭지 하나만 놓인 공간이 다였다. 게다가 화장실은 마당을 가로질러야 했다. 21세기에 이런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옛 집에 새것이라고는 남편이 구입한 퀸 사이즈 침대와 내가 사 온 이불이 다였다. 딱 200☓150cm만 새것이었다.     


즉, 이 이야기의 결론은 ‘이런 환경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였다. 우리는 중년의 나이였지만 경제적으로 빈약했다. 둘일 때는 남편의 불편한 자취 집도 살려면 살아진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꾸준히 집이나 땅을 보러 다녔다. 경매에도 참여해 보고 부동산도 여러 곳 가봤다. 경제적 형편에 맞추려니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남편 지인을 통해 300평 남짓한 시골마을 땅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평당 30만 원.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우리는, 아니 남편은, 은행과 지인의 도움으로 그 땅을 구입했다. 다음은 집을 지어야 한다. 그것도 하루빨리. 집은 그냥 지어지는 게 아니다.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집을 연세(제주는 월세보다 연세 개념이다)로 얻어 살다가, 차차 땅도 알아보고 거기에 집도 시간을 두고 짓자는 게 내 의견이었으나, 남의 말 귀 담아 듣기를 똥으로 아는 남편은, 본인의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그다음 남편은,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콘크리트 집이나 목조주택이 아닌 컨테이너로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이 땅을 알선해 준 지인도 ‘컨테이너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니 차라리 일반 콘크리트 집을 지어라’고 말렸다. 그러나 남편은 이 의견도 바로 패스했다. 어찌 되었건 집의 형태가 컨테이너로 계획되었으니, 그다음 절차는 돈이다. 흔히 할 수 있는 절차로 갔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출과 퇴직금 땡기기 그리고 저축성 보험 해지 등.     

우리가, 아니 남편이 구입한 땅

이제부터 남편의 밤낮 없는 생활이 시작됐다. 남의 말을 똥으로 여겼으니,  혹독한 노동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컨테이너 집을 짓는데 인건비는 거의 들지 않았다. 남편이 손수  했다. 목수로 일하시는 교회 집사님이 쉬시는  잠깐씩 오셔서 함께   며칠과 시간이 촉박해 화장실 타일공사 빼고는 남편이 오롯이  했다(당연히 컨테이너는 컨테이너 제작회사에서). 기초부터 전기배선 설계  설치, 단열, 마감, 보일러 설치, 화장실 변기  세면대 설치, 외관 페이팅 . 12월에 시작해 3  입주할 때까지  4개월간의 컨테이너 프로젝트는 입주와 함께 우선 일단락되었다.  4개월 동안 남편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퇴근  집짓기, 쉬는  집짓기, 야간일 하는  아침에 퇴근해서   짓기를 반복한 생활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못할 짓이다. 나는 점점 배가 불러오고 예정일은 다가오고, 산부인과에서 예정일보다 일찍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까지 들어서, 부랴부랴 어쩔  없이 준공허가  입주를 강행했다.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입주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들로만 채워졌다. 방은 달랑 침대 하나,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만, 거실은 건축자재와 도구들로 가득했다. 그래도  일은   있고 샤워도   있고 난방도 되고 따듯한 물도 나오고 주방엔 싱크대가 놓여있으니 일단 이거면 되었다. 그렇게 입주   일주일 만에 아이가 태어났다.     

2015년 3월~4월 입주 당시 모습

아이가 태어나 하루하루  가는 동안 남편은 현관을 마무리했고, 데크를 만들었으며, 2층에 컨테이너를  올렸고, 창고를 만들어( 역시 컨테이너) 거실에 있던 건축 지재들은 창고로 안착되었으며, 마당에 잔디를 깔기 시작했고  들어오는 올레길에 돌을 깔았고(현재도 진행 ), 우영팟(텃밭) 만들어 좋아하는 과실류를 심었다. 그러면서 컨테이너만 올렸던 2 내부 공사를 4년에 걸쳐 일단락 지었다. 8년이  되는 지금도 완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  많이 올라 좋겠네라고. 그러나 그건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다. 세금만  낼뿐이다. 비록 컨테이너지만 남편은 생전 처음으로  ,  땅을 마련했고, 50 바라보는 나이에 마누라도 얻고 아들도 얻었으니  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어느  하나 본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내가 가끔 농담으로 ‘  팔고 우리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 갈까?’ 하면,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은 ‘NO'.

2022년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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